질그릇에 담긴 보물 -예수님의 생명-2020.7.25.토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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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5.토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4,7-15 마태20,20-28

 

 

 

질그릇에 담긴 보물

-예수님의 생명-

 

 

 

오랜만에 들어보는 장마후 계곡물 맑게 흐르는 소리입니다. 늘 들어도 좋은 소리가 비내리는 소리요, 시냇물 흐르는 소리고, 늘 봐도 좋은 게 맑게 흐르는 시냇물 흐르는 모습입니다. 어제 쓴 글입니다.

 

-“참 오랜만에 듣는 

계곡물 찬미노래 소리

저런게 혁명이라면 가끔 있었으면 좋겠다

 

온종일 내린 하늘비에

바짝 말랐던 계곡이

맑게 흐르는 물로 가득하다

 

아, 하늘비 내려야

맑게 흐르는 계곡물인가

비오든 안오든 장마든 가뭄이든

 

늘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이고 싶다.”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 사도는 물론 모든 성인들이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늘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이에 앞서 잠시 야고보 사도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형제 세 사도는 예수님의 최측근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 중대한 일이 있을 때 반드시 동반했던 복음에 자주 나오는 세 사도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신뢰와 사랑을, 특별한 총애를 받았던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그리고 베드로 사도입니다.

 

그 실례로 예수님의 변모시, 베드로의 장모 치유시,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살릴 때, 최후 만찬후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꼭 함께 했던 세 사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가 2014년 안식년중 다녀온 순례길 산티아고도 성 야고보 사도로부터 유래합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를 뜻한 스페인어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는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건립한 뒤 팔레스티나로 돌아갔다가 44년경 순교함으로 사도중 첫 순교자가 됩니다. 제자들은 야고보의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겼다가 800년경 콤포스텔라로 이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해가 바다에 빠졌는데 가리비(조개) 떼가 달라 붙어 보호해 주면서, 가리비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이 됐습니다. 

 

이후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과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셋을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하면서 산티아고는 천 년을 이어오는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베데오의 두 아들이자 예수님의 최측근 사도들인 야고보, 요한 형제 덕분에 참 귀한 진리를 배웁니다. 자신의 두 아들들을 예수님의 나라가 도래했을 때 양 옆에 있게 해달라는 두 아들의 어머니의 청원을 들은 열 제자들은 몹시 불쾌해 합니다. 내심 자신들도 그 자리를 탐냈던 것 같습니다. 

 

참 동상이몽의 제자공동체임을 봅니다. 바로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 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했어도 참 고독했을 예수님의 처지가 눈에 선합니다. 즉시 제자들의 내적 현실을 직시하신 예수님은 이들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우선적으로 섬김의 삶에 충실하라는 당부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즉 위에서 군림하고 세도를 부려서는 안된다 못을 박은 다음 섬김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소위 갑질이나 텃세가, 혐오와 차별이 얼마나 제자들의 삶에 부적절한 일이 지 깨닫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새삼 우리의 영성은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의 섬김, 겸손의 섬김입니다. 분도 성인 역시 당신의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합니다. 평생 주님을, 형제들을 섬기는 배움터에서 졸업이 없는 평생 배워야 하는 섬김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섬김의 사랑'이 질그릇같은 허약한 우리 안에 담겨진 보물입니다. 이런 섬김의 거룩한 욕망이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을 살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살아 약동하는 하느님의 힘, 예수님의 생명이란 보물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고 부유하게 하며, 섬김의 삶에 항구하게 합니다.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늘 새로운 시작’의 정주의 삶을 살게 합니다. 다음 말씀은 언제 들어도 힘이 납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딛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정말 오뚜기처럼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이런 이들이 약한 듯 하나 실상 외유내강의 강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이란 보물이 이런 백절불굴, 칠전팔기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의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모두 섬김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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