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부 -주님 중심의 사랑 공동체-2020.7.29.수요일 주님의 손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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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9.수요일 

주님의 손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1요한4,17-16 요한11,19-27

 

 

 

평생 공부

-주님 중심의 사랑 공동체-

 

 

 

우리 필생의 평생공부가 뭔지 아십니까? 너무나 잘 잊고 지내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공부입니다. 정말 중요한 평생공부는 사랑뿐이 없습니다. 평생 사랑을 배워 실천해야 하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사랑 공부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기도처럼, 사랑에도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물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포함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랑입니다.

 

사랑-삶-사람, 같은 어원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는 길도, 행복도 사랑뿐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보고 배워 실천하라고 주님 중심의 사랑 공동체입니다. 사랑도 보고 배워야 합니다. 혼자 사랑은 환상이고 착각이요 불가능합니다. 하여 인생은 '사랑의 학교'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학교에 평생 재학중인 우리들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 사랑의 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정말 공동체가 모든 것을 다 갖췄는데 사랑이, 기쁨이, 평화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허전하겠는지요. 삶의 무지와 무의미와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도 결국은 사랑을 잘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랑의 관상, 사랑의 신비, 사랑의 수행, 사랑의 성사, 사랑의 기적, 사랑의 겸손, 사랑의 순종, 사랑의 섬김, 사랑의 환대, 사랑의 찬미, 사랑의 분별, 사랑의 지혜, 사랑의 순수등 끝이 없습니다. 율법의 완성도 사랑이요 분별의 잣대도 사랑입니다. 도대체 사랑이 들어가지 않는 덕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지막 하느님 최후 심판의 잣대도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난 하느님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요한1서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의 작품입니다. 역시 강조하는바 사랑입니다. 요한1서에 사랑이란 단어가 대충 헤아리니 18회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듯이 사랑이 빠지면 인생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 속에 잠겨 버립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사랑의 빛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며,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부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릅니다. 헛공부, 헛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사랑의 미사은총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통해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불러 주신 공동체의 형제들입니다. 사랑의 학교 공동체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공동체의 모범이 바로 오늘 복음의 베타니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병자로 앓다가 죽었다가 예수님을 만나 살아 난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삼남매의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여기에 근거해 인접해 있는 라자로의 집, 마리아의 집, 마르타의 집 우리 수도원 피정집들입니다. 

 

예수님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 마다 참 편하게 수시로 찾아 머물렀던 베타니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대로 예수님 중심의 사랑의 환대 공동체로 우리 수도공동체의 모델입니다. 오늘 복음 분위기를 통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 삼남매요 삼남매를 사랑한 주님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삼남매 간의 형제애의 사랑도 얼마나 깊은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조화로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공동체의 풍요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병자였던 라자로, 관상가 마리아. 활동가 마르타가 조화를 이룬 다양성의 일치를 이룬 공동체의 모습임을 이미 성 벨라도가 언급했습니다. 관상가 마리아와 활동가 마르타는 우열의 관계이기 보다는 상호보완의 관계입니다. 관상도 활동도 결국은 각자의 은사요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일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삼남매는 제가 보기엔 우리 수도공동체 형제들처럼 사랑의 대가요 달인입니다. 

 

우리 수도공동체나 어제 모임을 가졌던 예수 성심 자매회 역시 다양함이 공동체의 풍요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보물 사진을 찍겠습니다.”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지난 주일 참보물이란 강론을 한 후로는 형제자매들이 진짜 하느님의 선물이자 보물임을 깨닫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향기와 맛을 더해가는 술처럼, 하느님 사랑의 살아있는 참보물인 형제자매들입니다. 

 

정말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자 참 보물이 형제자매들입니다. 어제도 공동체 형제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체험했던 날입니다. 제가 기계에는 참 약한 편입니다. 토마스 머튼도 거의 기계치에 속했고 삽질하나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상에는 강했지만 현실에는 약했던 토마스 머튼입니다. 프린터기를 손봐 고쳐준 수도형제와 주고 받은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수사님! 전번 휴대폰에 이어 프린터기도 고쳐 주었네요. 수사님이 나에겐 천사요 보물입니다. 달맞이꽃 청초한 사랑! 축복인사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 꽃처럼 저도 주님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수도승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마르타의 사랑의 환대에 감격하신 주님은 마르타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참 귀한 진리를 알려 주시며 묻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는 물론 우리 모두에 대한 물음이며 우리 또한 마르타와 같이 대답합시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베드로를 능가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런 주님을 모심으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저절로 솟아나는 주님 찬미입니다.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시편34,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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