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주님의 구원 은총 -회개, 가난, 겸손-2020.8.18.연중 제20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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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8.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에제28,1-10 마태19,23-30

 

 

 

파스카 주님의 구원 은총

-회개, 가난, 겸손-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들입니다. 어제는 우리 수도원의 고 정훈만 세례자 요한 수사의 7주년 기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배밭 노동중 불의의 사고로 44세로 선종한 수사입니다. 문보물 수사의 고마운 권유에 화답해 아침 배밭 선종터에서 간단히 기도를 바쳤습니다. 또 힘든 중에도 성가정을 이루어 사는 가족이 예뻐 사진도 찍어 드렸습니다. 이 두 경우 저에겐 생생한 회개의 표지, 구원의 표지가 됩니다.

 

어제는 제 수도사제로서의 삶에 대한 묵상중 새삼스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은 분명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고 이런 회개와도 같은 깨달음을 통해 점차 가난하고 겸손한 내적 삶으로 변모될 때 바로 이것이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우리 나이로 41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사제 서품후 거의 매일 미사를 봉헌했고 강론을 썼습니다. 때로 강론이 잘 생각이 안나서 옛 강론을 사용할 까 하는 유혹에 옛 강론들을 들춰 봤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활용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에너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흡사 40대 강론들이 봄철 같다면, 50대 강론들은 여름철 같고, 60대 강론은 가을철 같고, 지금 70대에 들어선 강론은 겨울철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 40-50대의 강론들은 에너지가 충만하기에 도저히 지금 기력으로는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내외적 변화와 더불어 총체적 가난 체험에 이어 겸손해지는 마음입니다. 사실 숱한 병고와 죽음을 통해 체험하는 가난한 인간 존재입니다. 참으로 예외 없이 가난한 존재, 연민의 대상인 인간입니다.

 

어제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산더미 같던 쓰레기들이 잘 정리, 정돈되어 있었고, 그 비밀을 알고 수도형제에게 찬탄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들을 말끔히 보기 좋게 분류하여 정리 정돈한 것을 보니 정말 ‘정리의 달인!’ ‘정리의 천재!’입니다. 디테일에 참 강합니다. 장상은 숲도 보고 나무들도 보고,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고 하지요.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가난한 작은 숨겨진 노동이 마치 숨겨진 보물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 정돈에 남달리 희열과 재미, 행복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은사, 은총의 선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어제 저녁기도시 계속된 후렴,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라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바로 모두가 하느님 자비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구원이 아니라 은총으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새벽에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떠오른 파스카 주님의 은총이었고, 구원의 은총 제목에다 파스카 주님을 앞에 추가하여, ‘파스카 주님의 구원 은총-회개, 가난, 겸손-’으로 정했습니다. 참으로 파스카 은총의 십자가의 주님이 구원의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주제도 참 중요하고 우리 영성생활에 직결됩니다. 모든 인간의 불행과 재앙, 비극은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 자비의 은총의 빛만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무엇이 무지입니까? 바로 인간의 탐욕과 교만입니다. 아무리 공부많이 하고 학식 풍부해도 탐욕과 교만의 무지에 눈멀면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살 집 하나면 되는데 무지의 탐욕으로 다주택을 보유한 자들이 문제가 아닙니까?

 

오늘 복음 말씀 소주제는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와 ‘추종과 보상’이고, 제1독서 에제키엘 서는 ‘티로 임금에게 내리는 심판’입니다. 복음은 탐욕의 무지를 제시하고, 제1독서는 교만의 무지를 제시합니다.

 

어제 부자 청년 일화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기준에 미달된 부자청년은 바로 탐욕에 소유되어 있었기 때문임을 봅니다. 부유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탐욕의 발동으로 탐욕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힘들다는 것입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정말 탐욕의 부富의 위험은 우리를 내적으로 부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광신狂信도 약이 없지만 탐욕貪慾의 부富로 인한 내적 부패도 답이 없습니다. 인류역사를 봐도 외적의 침입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내부의 부패와 분열, 성적 타락으로 망한 나라들입니다. 이 또한 뿌리에는 무지가 또아리 틀고 있음을 봅니다. 하여 수도생활의 개혁은 늘 물질적 부유함에서 사막의 가난으로, 세속화에서 사막의 고독으로, 바로 철저한 회개의 삶을 통해 원천의 순수로 향했던 것입니다. 복음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거듭 반복하면서 부자의 탐욕이 구원의 결정적 걸림돌임을 천명하십니다. 말씀대로 라면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쉽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원망, 탐욕으로 찌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라 하여 다 구원문 통과가 힘든 것만도 아닐 것입니다. 회개의 파스카 은총으로 소유물의 주인이 되어 자선과 선행의 나눔의 착한 부자로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쉽지 않습니다. 소유가, 자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따라, 소유에 따라 돌변하고 변질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하느님 은총에 깨어 있는 자만이 소유로부터, 자리로부터 자유로운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은총에 의해 참으로 내적으로 가난해지고 겸손해 질 때 구원이니 그대로 파스카 신비 은총의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자는 구원 불가하다는 말씀에 놀란 제자들에게 주님의 다음 말씀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파스카 주님의 무상 은총으로 깨달아 회개하여 내적 가난과 겸손의 순수를 회복할 때 비로소 부자든, 빈자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구원 은총이 무지에 대한 결정적 답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주님은 구원 은총에 버림으로 응답하여 당신을 추종한 이들에게 내세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마지막 말씀이 정신 번쩍 나게 합니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 끝까지 방심해선 안된다는 경고입니다. 마지막 순간의 방심으로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패가망신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주변에서 종종 보지 않습니까.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도처에 널린 악의 덫의 유혹들입니다. 제3차 대전은 나라 간 무기 대결이 아닌 코로나 19 팬데믹 감염병과 시작된 듯합니다. 전인류의 회개와 연대가 절실한 현실입니다. 노심초사 코로나 19와의 전쟁에 최선을 다하는 정은경 중앙방역대책 본부장의 호소가 참 간절했습니다.

 

"코로나19는 전파 속도가 워낙 빠르고 감염력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한 번 감염원에 노출되면 대규모의 환자가 발생하는 데다, n차 전파로 이어질 경우 마치 둑이 무너지듯 방역이나 의료 대응에 한계가 올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감염이 될 수 있다는 게 참 무서운 말인 것 같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염을 시킬 수 있고 (감염 사실을) 본인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과 예방수칙을 지키는 것만이 최상의 예방법이라고 거듭 당부드린다.”

 

코로나19도 어찌 보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교만으로 자초한 재앙처럼 생각됩니다. 오늘 제1독서 티로 임금은 그 좋은 지혜와 부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교만으로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있다. 너는 신이 아닌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에 비긴다.”

 

마침내 그 좋고 많은 지혜와 재산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교만으로 이방인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비참한 죽음의 종말을 맞이한 티로 임금입니다. 인간의 근원적 무지의 탐욕과 교만에 답은 파스카 주님의 구원 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 끊임없는 회개와 가난과 겸손으로 살아갈 때 무지의 치유와 더불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의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구원을 선사하시어 회개와 가난, 겸손의 삶에 항구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2코린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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