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 영성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2020.8.19.연중 제20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9,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8.19.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에제34,1-11 마태20,1-16

 

 

 

착한 목자 영성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어제는 제 사랑하는 도반, 요셉 수도원의 착한 목자 원장 수사가 육체노동을 하고 있어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아 격려 멧시지를 보냈습니다.

 

“요셉 수도원 주보 성인 노동자 성 요셉의 후예! 화이팅!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사진 인물, 자연 배경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시간되면 일 끝나고 갈 때, 두유 한잔+비타민1, 잡숫고 가세요!”

 

아마 150편의 주옥같은 시편중 가장 사랑받는 시편은 오늘 미사중 화답송 시편 23장일 것입니다. 화답송 후렴 시편 23장 1절은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영혼에 깊은 위로를 줍니다. 아주 오래 전 묘비명을 청하는 이에게 지체없이 추천한 성구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저는 말을 바꿔, ‘주님은 나의 목자 부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불안할 것 없어라’ 되뇌어 보기도 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있는 착한 목자 예수님 말씀입니다. 

 

아주 예전 아빠스님 충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상으로 생각지 말고 목자처럼 생각하라.’는 공동체 형제들을 ‘섬기고serve’ ‘보살피고care’ ‘떠받쳐주는support’ 일에 충실하라는 충고였습니다. 예전 교수 신부님의 ‘사제’나 ‘신부’ 명칭 보다는 개신교의 ‘목사’라는 명칭이 복음적이라는 언급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부단히 배워 닮아야 할 착한 목자 영성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통상 임금을 백성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서는 임금만이 아니라 다른 수장까지 포함됩니다. 오늘날로 하면 사회든 교회든 공동체의 크고 작은 모든 책임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착한 목자 영성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피를 토하는 듯한 말씀은 그대로 착한 목자 하느님의 심중을 반영합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양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떼를 돌보지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물론 각계 각층 모든 지도자들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참 목자의 진위를 가려내는 거울같은 말씀입니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떼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겠다. 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계속 반복되는 ‘내 양떼’라는 말마디입니다. 바로 착한 목자 주님의 양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목자들은 주님의 양떼를 잠정적으로 위임맡은 이들이고 원래의 소유주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목자들이 평생 배워 닮아 가야할 착한 목자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제가 요즈음 동요 부르는 행복에 살고 있습니다. 동요에 보면 유독 엄마라는 말마디가 많이 나옵니다. 착한 목자 주님의 마음에 가장 근접한 분이 엄마일 것입니다. 바로 ‘섬집아기’ 2절의 엄마의 마음은 그대로 착한 목자 주님의 마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착한 목자같은 엄마를 그리워 눈물짓게 하게 하는 동요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은 그대로 복음의 착한 목자 예수님을 통해, 또 곳곳에서 사목하는 착한 목자 주님의 종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착한 목자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임자와 같다.”

 

이런 착한 목자 주님의 영성을 사는 목자를 지닌 공동체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짧은 말마디에 착한 목자 주님을 그대로 닮은 포도밭 주인임을 깨닫습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기본 소득제’의 원조가 바로 착한 목자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기본소득제는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 등과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부의 인권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자유롭게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정의요 자비입니다. 그대로 자녀들에 대한 자비롭고 착한 어머니의 마음도 이러할 것입니다. 

 

이런 착한 목자 주님이기에 일한 시간과 양과는 무관하게 맨처음부터 있었던 자들은 물론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 다섯시 모든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제공합니다. 모두에게 최저 하루 생계비 임금을 똑같이 제공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착한 목자 주님의 정의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았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중국 백장선사의 가르침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도 나옵니다. 일하고 싶어도 다양한 사유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일에 관계없이 이유불문하고 이들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무위도식無爲徒食,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 먹기만 함에 빗댄 좀 모욕적인 말마디인데  착한 목자 예수님에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죄스러운 말마디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포도원 주인의 품삯을 제공하는 순서도 맨 끝에 온자로부터 시작하여 품삯도 똑같습니다. 맨먼저 온 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합니다. 인간의 상식적 분배정의의 측면에서 볼 때 너무 불평등하고 불합리합니다. 투덜대는 모습이 흡사 루가복음 15장 돌아 온 탕자 작은 아우를 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불평하는 큰 아들을 닮았습니다.

 

“맨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참으로 편협한 시야요 옹졸한 마음은 그대로 우리의 마음일 수 있습니다. 분명 외관상 충실한 당대의 기득권층들을 대변한 말마디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회개의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인 선한 포도밭 주인의 일화도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자비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친구여,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참 멋지고 매력적인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주제넘게 편협하고 옹졸한 세상 정의의 잣대로 주님의 자비를 재단하는 어리석은 일꾼입니다. 예수님의 ‘니가 뭔데, 니나 잘해’라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얼마나 섬세하고 자상한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인지요. 참으로 디테일에 강한 모습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기에 착한 목자 주님을 롤모델로 삼는 이들은 참으로 디테일에 강해야 할 것입니다. 비결은 단하나 형제자매들에 대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입니다.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입니다. 정말 가난한 이웃의 처지를 헤아렸다면 주님의 처사에 기뻐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당장의 일한 시간이나 양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총체적 딱한 내적 현실을 통찰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많은 식솔의 부양을 책임진 가장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착한 목자 영성을 지닌 이들이라면 모든 공동체 성원을 참으로 아끼고 돌볼 것이며 해고에도 신중에 신중을 다할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각계 각층 다양한 지도자들이 필히 배우고 실천해야 할 착한 목자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하나하나 모두가 존중받고 배려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엄한 품위의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소위 갑질이나 혐오와 차별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착한 목자 영성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착한 목자 당신을 닮아 자비롭고 너그러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안의 온갖 것도, 그 이름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

 


Articles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