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여정 -텅빈 충만의 자유와 행복-2020.9.5.연중 제2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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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5.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코린4,6ㄴ-15 루카6,1-5

 

 

 

비움의 여정

-텅빈 충만의 자유와 행복-

 

 

 

어제 코이노니아 자매회 카톡방에서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오랜만에 전형적 가을 날씨의 청명한 아침, 밝은 햇살에 수도원 ‘회심정回心亭’ 정자의 텅빈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아 전송하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텅빈 충만의 축복인사 받으시고 늘 새롭고 행복하세요!”

“그곳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신부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오. 일일시호일”

“예, 텅빈 충만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텅빈 충만함은 제가 전시회하는 내내 느꼈던 마음입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야생화 들꽃의 영성이 바로 텅빈 충만의, 무아의 영성이지요! 역설적으로 무아가 진아요, 이의 결정적 모범이 비움의 영성을 사셨던 예수님, 성모님일 것입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 프란치스코 성인도 뒤를 잇고 있지요.”

“들꽃 영성의 행복한 삶의 네요소라 칭하는 4s가 생각납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부탄 사람들의 행복의 4s가 ‘1.작음small, 2.단순함simple, 3.느림slow. 4.미소smile’라 하네요.-

 

제1독서 코린토교회 신도들을 향한 바오로 고백이 감동스럽습니다. 비움 영성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당합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받으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 예전 별명이 ‘무공해’ 신부였는데 정말 바오로 일행들이 무공해의 삶입니다. 역설적으로 텅빈 충만의 무죄한 삶입니다. 이런 텅빈 충만의 비움 영성을 사는 이들이 있어 존속되는 세상입니다. 진짜 쓰레기 영성은 이런 것입니다.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는 쓰레기 영성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회개를 촉구하는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필립비서에서 바오로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찬가’ 중 일부가 생각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 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비움과 직결된 순종입니다. 주님을 닮은 비움의 여정은 바로 순종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역설적으로 비움의 충만이요, 비움의 사랑, 비움의 순수, 비움의 지혜, 비움의 자유, 비움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비울수록 파스카의 주님으로 충만한 무아의 삶이자 진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움의 영성은 오늘 복음의 주님에게서 잘 드러납니다. 사랑의 비움에서 무욕의 순수한 마음이요, 순수한 마음에서 샘솟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예수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며 먹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의 항의에서 시작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오?”

 

배곺은 현실의 사람이 판단 잣대가 아니라 안식일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러나 법의 잣대에 우선하는 예수님 사랑의 잣대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 빵을 먹었던 예를 들이대며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합니다. 이어 주시는 만고불변의 진리 말씀이 오늘 복음의 백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비움 영성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안식일 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분별의 잣대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분별의 잣대라는 것입니다. 분별이 힘들 때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숙고하면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 공부에, 비움의 여정에 항구할수록 주님을 닮아 올바른 분별의 지혜를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 대신 ‘사람’으로 바꾸어 “사람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법이, 돈이, 재물이 아닌 사람이 우선이요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람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면 답은 즉시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니 삶에서 오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비움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워가는 무아의 삶일수록 역설적으로 주님 사랑으로 충만한 진아의 삶이요 순수와 지혜, 참 자유와 행복도 선사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가는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시편145,17-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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