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예닮 여정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2020.9.10.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9.10.연중 제23주간 목요일                                                1코린8,1ㄷ-7.11-13 루카6,27-38

 

 

 

사랑의 예닮 여정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

 

 

 

평생 공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생 학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생 여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답은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의 공부요 사랑의 학교요 사랑의 여정입니다. 사랑이 모두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라는 자각아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사랑 공부입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무엇인가 행해야 하는 동사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랑입니다. 눈만 열리면 주변에 널려 있는 사랑 실천의 기회들입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사랑 실천입니다. 사랑은 지혜요 삶의 의미이자 삶의 모두입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근원적 처방도 사랑뿐입니다.

 

아주 오래전 선물받은 무성한 식물이 담겨 있는 조그만 화분에 글귀를 지금에야 확인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늘 사랑합니다.” 어제 지인과 카톡을 통해 나눈 메시지입니다.

 

-“신부님, 우리 집 아파트에 희망과 축복의 무지개가 떳어요. 하늘길이 활짝 열렸어요.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아,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한마디가 빠졌네요. 사랑하는 자매님!”

“ㅎㅎ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사랑은 평생 의무입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 성덕의 잣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엔 일체의 변명이나 핑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사랑의 수행이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삶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설교도, 제1독서의 바오로 설교의 주제도 사랑입니다. 참 최고 최상의 강론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의 화신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평생 배워 실천해야 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이런 평생사랑의 학인의 모범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도의 코린토 전서 13장, 사랑의 헌장을 능가하는 가르침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바오로 사도를 통해 참으로 하느님 사랑 공부에 평생 매진해야 할 것을 배웁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 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열쇠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수록 자기를 알고 무지와 허무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가는 것 역시 평생 여정입니다. 우상이란 없습니다. 태양앞에 어둠이 사라져 본 모습 그대로 드러나듯 하느님 사랑의 빛으로 무지의 어둠이 걷힐 때 헛것들로 드러나는 온갖 우상들입니다. 

 

하느님은 한분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우리 삶의 존재이유인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 사랑에 정통한 바오로는 음식문제에 대해 분분한 의견들을 사랑으로 단칼에 정리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모두에, 특히 약한 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바오로의 깊고 섬세한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사랑의 화신과도 같은 예수님의 전무후무한 사랑에 대한 설교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설교를 능가할 설교는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 사랑은 무사한 사랑,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웃 형제들 모두가 잘되길 바라는 존중과 배려, 연민의 사랑이요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밑빠진 독에 물붓듯 하는 일방적 사랑입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다 새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바로 아가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눈에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서서히 영적으로 성장 성숙시키는 사랑입니다.

 

세상 모두에 차별없이 쏟아지는 햇빛같은 사랑이요 단비같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좋고 싫음의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모두에게 선사되는 무사無私한 사랑입니다. 대자대비, 공평무사한 사랑입니다. 몰라서, 무지로 인한 원수요 미움이요 저주요 학대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단, 끊어버리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최고의 보복이 사랑이요, 악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의 잘해 줌, 사랑의 축복, 사랑의 기도로 응답할 때 무지의 악순환은 끝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랑은 모두 일방적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군말 없이 대가를 기대함 없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라 합니다. 완전히 무사한 사랑, 무아의 사랑입니다.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대로 남에게 해주는 사랑, 바로 황금률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습니다. 사랑만이 무지와 허무에 대한 근원적 처방의 특효약입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의 편협한 사랑, 갑질의 행위, 다 어리석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몰라서 무지로 인해 심판이요 단죄요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알면 알수록 겸손과 지혜요, “그럴 수도 있지”, 또는 “그게 현실이지” 하며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참으로 너그럽고 자비로운 아가페 사랑 실천에 항구할 때 우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결국은 사랑 결핍으로 인한 내 문제요 내 탓입니다. 아무도, 하느님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사랑의 힘을 키우는 노력이요 이런 은총을 청하는 것뿐입니다. 무지와 허무와의 싸움은 사랑이 아니곤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작은 하나의 촛불의 빛이 방의 어둠을 밝히듯, 밤의 어둠을 몰아내며 떠오르는 동녘의 태양처럼 사랑의 빛 앞에 저절로 흔적없이 사라지는 무지와 허무의 어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 지칠줄 모르는 사랑의 평생학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다음 한마디 복음 말씀이 오늘 강론의 결론이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평생과제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아멘.

 


Articles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