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된 복음 선포자의 삶 -선물, 비전, 믿음, 환대, 활동-2020.9.23.수요일 피에트첼치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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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3.수요일 피에트첼치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잠언30,5-9 루카9,1-6

 

 

파견된 복음 선포자의 삶

-선물, 비전, 믿음, 환대, 활동-

 

 

오늘은 ‘오상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진 성 비오 사제 축일입니다. 카프친회 수도사제로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지니고 고통중에도 불구하고 만81세 선종시까지 기쁨과 겸손의 삶으로 파견된 복음 선포자의 사명에 충실했던 참 아름다운 성인입니다. 

 

어제 오랜만의 예수성심자매회 모임시 미사전례가 참 은혜로웠습니다. 흡사 파견받아 현장에서 충실히 복음 선포의 사명을 다하고 온 듯, 참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좋아 사진에 담아 “사진처럼 멋지고 예쁘고 아름답게 사세요!” 메시지와 함께 전송해 나눴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지니고 파견된 삶을 살아가는 제자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변함 없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삶에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지내던 제자들이 모두 파견을 받습니다. 복음 선포의 현장으로 파견됩니다. 흡사 매일 미사후 파견되는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명심해야 몇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께로부터 참 좋은 선물인 힘과 권한을 받았음에 감사하십시오.

복음 선포를 위한 파견에 앞서 제자들을 준비시키셨던 주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힘과 권한의 선물을 주십니다. 주님은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참으로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복음 선포는 바로 이런 주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선물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참 좋은 선물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마귀들은 축출되고 질병은 치유될 것입니다. 이런 주님과 일치가 깊어지면서 영육의 건강입니다.

 

둘째,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현실화하십시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삶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병자들의 치유입니다. 바로 우리의 궁극의 비전이자 희망이, 꿈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에 앞서 끊임없는 말씀 공부가 우선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자에게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분의 말씀에 아무 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바로 오늘 잠언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을 생생하게 지니고 살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맛들이고 실행하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영혼과 말씀의 일치와 더불어 실현되기 시작하는 하느님의 나라요 이런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와 더불어 치유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셋째,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전적으로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삶입니다.  마지막 믿음의 결정적 시험이 죽음입니다. 참으로 준비하여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믿음이라면 참 좋은 믿음일 것입니다. 믿음과 더불어 소유의 삶에서 존재로의 삶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참으로 최고의 보물인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믿음과 더불어 홀가분한 이탈의 자유로운 삶입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 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소유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셨는데 무엇을 염려합니까?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말씀도 생각납니다. 소유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우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전적으로 희망과 믿음을 둘 때 이런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삶입니다. 이런 이들이 정말 영적 부자입니다. 필요로 하는 소유가 적을수록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기도가 우리 제자들의 삶에 참 적절한 도움이 됩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참 꼭 필요한 청원입니다. 배부른 뒤엔 주님을 잊는 불신자가 될 수 있고 너무 가난하면 품위없는 삶으로 주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미학의 정수를 표현한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나 사치롭지 아니하다’는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런 품위있는 자발적 가난한 삶이겠습니다.

 

넷째, ‘환대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환대, 사랑의 환대 역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소유의 삶중에 복음 선포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음은 곳곳에 산재한 환대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고대 중동의 사람들에게 환대는 보편적 실행의 가치였다 합니다. 이런 환대의 배경이 없었다면 복음 선포의 사명 수행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환대하는 분들에 대한 배려이니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하라는 것입니다. 환대 영성은 여기 정주의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라는 말씀이 이미 규칙에도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많은 방문자들이 영혼의 고향집에 온 듯 수도원의 환대에 고마워합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겸손, 환대의 아름다움입니다. 하여 수도원은 ‘환대의 집’, 수도자는 ‘환대의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환대를 반영하는 우리들의 환대입니다. 철학자 데리다는 ‘환대는 시적인 행위’라 환대를 극찬했으며,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에 대한 환대’라는 말로 우리들 인간의 존재 양식을 요약합니다. 종교를 떠나 환대의 사랑은 참으로 인간의 고결한 행위임을 깨닫습니다.

 

다섯째, 본질적 활동에 충실하십시오.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에 본질적 활동을 요약합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참 투명하게 드러나는 제자들의 참 아름다운 본질적 삶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르침과 치유가 한 세트입니다. 

 

복음선포와 더불어 일어나는 치유의 은총입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복음 선포을 통해 우리는 물론 이웃들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기쁨과 평화, 위로와 치유의 선물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코로나 19로 팬데믹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들 역시 주님을 만날 때 치유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복음 선포에 충실한 참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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