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4.연중25주간 목요일 코헬1,2-11 루카9,7-9
충만한 삶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제1독서는 코헬렛입니다. 읽을 때 마다 충격입니다. 공감하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오늘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해 봅니다.
-“2.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태양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8.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11.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아주 예전 피정지도시 묘비명을 써보라 했을 때 한 수도형제의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글을 읽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허무와 무지 역시 인간의 본질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떠났을 때 귀착점은 허무와 무지입니다. 영혼의 고질적 질병같은 허무와 무지의 어둠입니다.
윗 내용을 보십시오, 온통 회색빛 우울한 분위기 아닙니까? 결국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지혜로운듯 하나 어릭석은 무지의 코헬렛입니다. 제가 볼 때 코헬렛은 하느님 체험이 참 희박해 보입니다. 철인이지 신자는 아닌듯 싶습니다. 도대체 새로움, 놀라움이 없습니다. 삶에 감동도 감격도 감탄도 없습니다. 전례공동체도 은총도 회개도 겸손도 기도도 사랑도 찬미도 감사도 기쁨도 평화도 행복도 자유도 희망도 믿음도 성령도 위로도 격려도 치유도 구원도 분별도 없어 보입니다. 삶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도 없습니다. 빛이 아니라 온통 어둠으로 가득한, 흡사 태양이 진 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그런 회색빛 분위기입니다.
보이는 현실뿐이요 현실 넘어 영원한 세상에 대한 초월적 비전도 꿈도 없습니다. 완전히 현실의 감옥에 갇힌 영적 수인같고 숙명의 노예같습니다. 병도 보통 병이 아닙니다. 너무 부정적이요 비관적입니다. 도대체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하느님 없이 이 거칠고 험한 인생 광야 여정,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우울증에 급기야는 자살에 이를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코헬렛이 성서에 편입될 수 있음은 큰 축복입니다. 역설적으로 하느님 체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론시 참 많이 썼던 제목이 ‘여정’이란 말마디입니다. 삶은 여정이요, 믿음의 여정, 순종의 여정, 회개의 여정, 순례의 여정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체험을 바탕으로 강조한 ‘1.목적지;하느님, 2.이정표, 3.도반, 4.기도’라는 인생 순례 여정의 네요소도 생각납니다.
결국은 하느님을 향한 여정인데 하느님이 빠졌으니 코헬렛의 허무한 인생에는 이런 ‘여정’을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디에 가든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바로 삶의 중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코헬렛에는 하느님이 빠져 있기에 삶의 중심도, 삶의 의미도, 삶의 목표도, 삶의 방향도 없습니다. 말그대로 허무와 무지의 어둠 가득한 현장입니다.
어떻게 삶의 목표도 방향도 중심도 의미도 없는 이런 무지와 허무의 분위기속에서 무미건조의 반복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말그대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느님 아닌 그 누구가 그 무엇이 이 자리에 올 수 있겠는지요?
오늘 복음의 헤로데가 우리에겐 반면교사가 됩니다. 헤로데처럼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자 삶의 의미인 하느님이 빠진 허무한 삶, 헛된 삶의 전형이 헤로데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불안과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는 헤로데의 참 허약한 모습입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바로 내면의 불안을 반영합니다. 하느님이 그 삶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면 세례자 요한을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런 내적 불안이나 두려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중심에 없기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며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지와 허무의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헤로데 임금입니다.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허무와 무지의 어둠에 대한 궁극의 답은 태양같으신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이, 파스카의 예수님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을 때, 우리 삶의 더불어 여정에 목표이자 동반자가 되실 때, 허무한 삶은 충만한 삶으로 변합니다. 인생고해는 인생축제가 됩니다. 코헬렛의 허무에 대한 참으로 멋진 최고의 응답이 바로 이런 좋으신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4.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