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삶 -찬양, 종말, 이웃-2020.10.1.목요일 한가위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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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목요일 한가위                                       요엘2,22-24.26ㄱㄴㄷ 묵시14,13-16 루카12,15-21

 

 

지혜로운 삶

-찬양, 종말, 이웃-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두루두루 경사가 겹친 축복 충만한 날입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이자 전교의 달 첫날, 첫주일이자 성녀 소화 데레사 학자 기념일이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 추석입니다. 

 

제가 늘 감동하는 바는 가톨릭 교회 전례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전례의 아름다움이요, 전례의 은총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삶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한가위 하루를 활짝 연 성무일도시 새벽 초대송과 찬미가, 그리고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과 시편은 얼마나 한가위 축제에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지요!

 

-“한가위를 맞이하여 오곡백과를 지어내신 주님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올해도 우리일손 축복하여서 이모든 곡식들을 거두어들여

우리삶 이어가게 힘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리세

 

마음을 곱게곱게 가다듬어서 이세상 열매들을 추수하면서

천상의 주님잔치 참여하는날 고운옷 차려입게 보살피소서.”

 

-“오곡백과가 땅에서 났으니, 우리주 하느님이 복을 주심이로다.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그얼굴을 우리에게 돌이키소서. 창생이 하느님을 높여 기리게 하소서.”-

 

온통 찬미와 감사로 가득한 아름다운 축제일인 오늘 한가위 추석이 우리를 한껏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고무시킵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삶입니까? 지혜로운 삶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울 삶은 지혜로운 삶이자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과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 두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음 주님의 구체적인 말씀이 우리의 탐욕을 경계하게 하고 어리석음을 일깨워 줍니다. 역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오늘 복음의 예화가 꿈중에 이뤄진 일이라면 어리석은 부자는 꿈을 깨는 순간 회개하여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개방하여 나눴지 싶습니다. 문득 부자 스쿠르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스크루지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돈욕심이 아주 많은 고리대금업자로 남에게 늘 인색하게 굴었으나, 어느날 밤 죽은 친구의 유령과 함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본 뒤 깨달음을 얻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되는 인물입니다.

 

좌우간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는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역시 무지의 병, 무지의 죄를 깨닫습니다. 탐욕에 눈 먼 무지의 어리석은 부자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녹색평론 잡지 표지 그림 안에 글귀가 좋아 나눕니다.

 

“내 목소리부터 낮춰야 새들의 노래도, 벌레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야만 풀들의 웃음과 울음도 들리고, 세상이 진실로 풍요로워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 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세상 모두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관계속에 살아갑니다. 지옥은 장소 개념이기 보다는 관계 개념입니다. 연결되어 있지 않고 끊어져 있는 고립단절의 관계라면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바로 오늘 어리석은 부자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단절이요, 이웃으로부터의 단절이요, 참 자기로부터의 단절이요, 역사로부터의 단절입니다. 더불어가 아닌 혼자의 삶입니다. 완전히 이기적인 자기 안에 갇힌 수인의 삶같습니다.

 

저는 오늘 2개의 독서와 말씀을 묵상중 십자가 안의 원이 떠올랐습니다. 십자가 수직선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 찬양과 감사이고. 십자가 수평선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상징하며, 십자가의 중심을 에워싸고 있는 원은 오늘 지금 여기서 이웃과 더불어의 삶을 상징합니다. 바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 차원의 삶을 삽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의 삶입니다.

이런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십자가 형상으로 하면 하늘과 땅을 잇는 수직선입니다. 바로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하늘길이, 하늘문이 닫혔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가 전무합니다. 완전히 하느님과 연결이 끊긴 단절된 삶입니다. 하여 어리석은 부자는 하늘에 쌓아야 할 보물을 땅에 쌓고 독백합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겨라.”

 

완전히 육적인 삶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영적 삶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참 무지한 현실주의의 육적 만족의 탐욕의 삶입니다. 이렇게 산다면 참으로 인생 허무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지 않습니다. 제1독서 요엘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셨다.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바로 어릭석은 부자에겐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이 없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삶은 찬미와 감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과거와 현재, 미래의 종말을 아우르는 깊고 넓은 안목의 시야입니다.

이런 시야를 지닐 때 지혜로운 삶입니다. 십자가 형상으로 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수평선입니다. 복음의 탐욕에 눈먼 어리석은 부자는 완전히 이런 시야가 차단되어 있습니다. 

 

과거는 물론 미래도 없고 온통 현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종말 의식이 전무합니다. 언젠가 있을 죽음의 종말을, 심판과 죽음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땅에 재물을 쌓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묵시록이 우리의 종말의식을 일깨웁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 기록하여라.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천사의 보고후 사람의 아들이 수확하는 장면은 역시 그대로 최후심판의 상징입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언젠가 우리 삶을 수확하실 죽음의 종말입니다. 하여 깊고 넓은 영적 시야를 지닌 이런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의 조상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더불어 미래의 죽음의 종말을 생각하며 깨어 준비된 삶을 삽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종말을 두루 조망하는 넓고 깊은 영적 시야를 지닌 사람입니다. 부단히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면서 종말의 미래를 내다보며 하루하루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탐욕에 눈이 멀어 이런 영적 시야가 없습니다. 

 

셋째, 오늘 지금 이웃과 더불어의 삶입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십자가 중심을 에워싼 원의 형상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에게는 이웃이 없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을 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선과 나눔의 삶이 없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삶은 위로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삶이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삶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 함께 하는 삶입니다. 주고giving, 배려하고caring, 섬기고serving, 지지하고supporting, 나누는sharing 삶입니다. 여기에다 4s의 행복한 삶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작고small, 단순하고simple, 느리고slow, 미소짓는smile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면에서 우리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한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삶, 미래의 종말을 내다보는 영적 시야를 지닌 삶, 주변의 이웃과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선명히 드러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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