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환대; 관상적 삶 -말씀, 경청, 회개, 겸손, 사랑, 환대-2020.10.6.연중 제27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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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6.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갈라1,13-24 루카10,38-42

 

 

 

참된 환대; 관상적 삶

-말씀, 경청, 회개, 겸손, 사랑, 환대-

 

 

 

올해의 요즘은 유난히 행복합니다. 죽었다 살아난 너무나 생생한 파스카 감사의 체험 때문일 것입니다. 제 머리 왼쪽 상처 부위의 흰 반창고는 '회개의 표지'이자 '감사의 표지'처럼 생각됩니다. 올해 제 영명축일 때는 사랑도, 선물도, 축하도 제 생애 중 가장 많이 받았던 해인 듯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이처럼 되는 가 봅니다. 요즘은 가끔 보고 싶은 분들도 있어 솔직하게 사진 좀 보내 달라 합니다. 요즘보다 사람 얼굴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인 적은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순수한 사랑의 환대의 표현이겠습니다. 오랜만에 어느 자매와 주고 받은 카톡 메시지입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카톡에 올리신 프로필 사진을 보고 뭔가에 이끌리듯 수도원에 갔습니다. 두 팔 벌려 ‘언제든 와라. 다 괜찮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아무 연락도 안드리고 무작정 갔다 왔습니다.”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예수님 축복 인사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해요. 신부님, 낮에 신부님 사진 떠올라 발길 머물렀던 ‘예수님 부활상’ 자리 바로 그 장소네요.”

“마리아죠? 보고 싶으니 셀프카 사진 찍어 보내 주세요.”

“지금 방금 찍은 따땃한 사진이예요.”

“편안하고 안정되 보여요! 주님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배밭에서 좋은 정기를 받고 와서 안정되어 보이나봐요. 실제로 마음도 안정되었고요. 신부님 뵙고 왔으면 더 환하고 예뻤을 텐데요. 일간 찾아 뵐께요. 신부님”-

 

아, 그러고 보니 수도원 십자로의 두 팔 벌리고 가슴 활짝 열린 파스카 예수님 상은 그대로 환대하는 예수님 모습입니다.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환대하는 불암산과 더불어 말입니다. 새삼 환대의 사랑, 환대의 수도원은 요셉 수도원의 정체성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분도 성인도 그의 규칙에서 다음처럼 아름답게 환대를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는 읽을 때 마다 감동이요 환대의 진가를 절감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도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환대’라 명명해도 참 좋은 절창의 시입니다. 일생의 역사가 담긴 주님의 현존인 각자 고유의 ‘살아있는 역사책’이, ‘살아있는 성경책’이 방문하는 것이니 사랑의 환대는 너무 당연하고 어마어마한 축복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베타니아 집을 자주 찾았던 예수님 같습니다. 누구나 피곤하고 삶에 지칠 때 눈감으면 떠오르는 찾고 싶은 곳을 헤아리기도 할 것입니다. 아마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삼남매들은 예수님을 온 마음, 온 사랑으로 환대했던 베타니아 ‘환대의 집’에 ‘환대의 사람들’같습니다. 그러나 참된 환대도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눈먼 사랑의 환대도 있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환대에도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환대는 그러합니다. 내 좋을 대로의 환대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상대방 좋을 대로의 환대가 참된 환대요 이점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심중을 꿰뚫어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음식을 잡수러 온 것이 아니라 우선 쉬면서 당신 말씀을 하고 싶어 방문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마리아, 바로 주님의 환대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흡사 미사전례시 말씀의 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식사하는 것이 올바른 주님 환대의 순서이며, 하여 미사전례도 말씀전례에 이어 성찬전례가 뒤를 잇습니다. 식사 준비에 분망하던 마르타 언니의 불편했을 심중이 그대로 예수님께 표출되었고 마르타를 향한 예수님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활동주의에 중독된 이들에 대한 금과옥조의 경계가 되는 말씀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우선 택할 것이 말씀이신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경청을 통한 예수님 환대가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눈먼 환대가 아닌 눈밝은 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마르타는 넘치는 사랑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심중을 헤아리지 않는 제 좋을 대로의 일방적 눈먼 사랑의 환대임을 봅니다.

 

말씀의 경청을 통한 주님 환대는 모든 사람 환대의 근본이 됩니다. 참으로 말씀에 깊이 맛들여 갈수록 주님 환대와 이웃 환대의 사랑도 깊어갈 것입니다. 새삼 환대에도 순서가 있음을 봅니다. 참된 환대는 그대로 참된 관상적 삶의 기초가 됨을 봅니다.

 

우선 주님의 환대는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말씀을 경청할 때 저절로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회개와 겸손이 뒤따르고 순수한 사랑, 아가페 사랑의 회복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으로 주님을, 이웃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참된 환대는 ‘말씀-경청-회개-겸손-사랑-환대’의 순서로 이뤄짐을 봅니다. 

 

바로 이런 주님 환대의 자세로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에 참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런 주님 환대와 더불어 날로 주님을 닮게 되고 이웃 사람에 대한 참된 환대의 사랑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참된 영성의 잣대는 참된 환대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참된 신자는 참된 환대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예수님을 닮아 환대의 성인들이었고 특히 이의 모범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오로가 사도로 부름 받은 경위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환대 은총을 통해 바오로 사도가 철저한 회개와 정화 과정을 겪는 과정의 묘사처럼 보입니다. 환대의 사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환대를 통한 철저한 회개와 겸손의 정화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중 당신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환대해 주시고 우리 모두 당신 ‘환대의 사도’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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