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비움의 여정 -사랑과 지혜, 겸손과 자유-2020.11.3.연중 제31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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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연중 제31주간 화요일                                                            필리2,5-11 루카14,15-24

 

 

 

자기 비움의 여정

-사랑과 지혜, 겸손과 자유-

 

 

 

22년전 1998년 이때쯤 강론에 인용했던 구절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하다.”

 

풍성한 수확이 끝난 아름다운 단풍의 텅빈 배밭은 ‘텅빈 허무’가 아닌 ‘텅빈 충만’의 기쁨처럼 느껴집니다. 참 홀가분하고 자유로워보이는 배나무들입니다. 이런 노년의 가을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어느 스님과 그 스님의 제자와의 대화중 다음 대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스님, 저 깨달았습니다.”

“하하, 그래? 그런데 어쩌나. 나는 깨닫지 못해서 점검을 못해 주겠다. 네 스스로 잘 살펴봐라. 스승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다.”-

 

참 솔직하고 겸손한, 자기를 비운 스승입니다. 평범한 말마디지만 이런 겸손이 역설적으로 깨달은 분임을 입증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자기를 비워가면서 자기를 알아가는 겸손이니, 결국은 종파를 초월하여 우리의 영적 삶은 깨달음의 여정, 비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영적 여정을 통해 자기를 알아감으로 비로소 무지로부터 벗어나 참자유인이 됨을 깨닫습니다.

 

‘스승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다’, 불교 선승의 대답이지만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통하니 바로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참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이 스승 스님이 떠나기 전 유언같이 남긴 열반송 같은 짧은 메모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온갖 있는 것 비우기를 소원할지언정 없는 것을 채우지는 말아야 한다.

잘 계시라. 세간은 모두가 메아리와 그림자 같다.”-

 

참으로 세상 것들의 집착에서 이탈해 초연한 자유를 누리는 선승입니다. 참으로 무지의 사람들이 세상 것들에 집착해 어리석은 탐욕의 삶을 삽니다. ‘자기비움self-emptying’이 아닌 ‘자기이익self-interest’을 위한 삶입니다. 무지의 인간, 바로 인간의 본질같기도 합니다. 참 강론중 많이도 나눴던 인간의 고질적 마음의 병, 무지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큰 잔치 비유에 나오는 초대 받은 이들이 바로 무지한 인간의 전형이자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참으로 자기이익에 눈이 가려 절호의 하늘 나라 잔치의 초대에 응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참 행복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세 사람들의 구구한 변명입니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하고 말하며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둘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대답하고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말하며 역시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뭣이 중요한지 영적 삶의 우선순위를 잊은 본말전도의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대부분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정말 깨달아 자기를 비운 믿는 자들이라면 우선 미사잔치의 초대에 응답할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한 탐욕의 사람들은 부단히 모으고 쌓고 채우는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발심을 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죽어서 하늘 나라 잔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 잔치를 미리 맛보는 사람들이 진정 자기를 비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이미 이 거룩한 미사잔치를 통해 하늘 나라 잔치를 미리 맛보는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모으고 쌓고 채우는 자기 중심의 무지한 탐욕과 집착의 삶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비움의 여정에 오를 수 있을까요? 주님 사랑입니다. 주님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 사랑에 의한 비움이요 깨달음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비우기 마련이요 더불어 무지로부터 벗어나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니 ‘주님 사랑-비움-겸손-지혜-자유’가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초대를 거절한 ‘자기이익’만 챙기는 무지한 사람들과 결정적으로대조되는 분이 제1독서 필리비서 그리스도 찬가에 나오는 ‘자기비움’의 모범인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우리 안에 간직하라 하시니 바로 자기비움의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을 닮은 자기비움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무지라는 마음의 병의 치유에 자기비움만이 약이자 답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수록 자기를 깨달아 알아가면서 자기비움의 지혜와 겸손,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필리비서 2.6-11까지는 참으로 아름답고 깊은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성무일도 매주일 토요일 제1저녁기도때 마다 바치는 그리스도 찬가로 초대교회 전례 때부터 불렸던 찬가입니다. 특히 이 찬가중 8-11절은 성주간 전례 성무일도에서 주도곡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바로 ‘비우다-낮추다-순종하다’로 요약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기비움의 겸손한 마음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할 때 이런 자발적 자기비움의 겸손한 삶, 지혜로운 삶,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찬가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어 비우시는 하강과정(6-8절)과 하느님에 의하여 주님으로 승격되는 상승과정(9-11)으로 양분됩니다. 자기비움의 결과 역설적으로 자기충만에 이르는 상승과정은 얼마나 우리에게 신선한 영적 충격을 주는 지요. 텅빈허무가 아닌 텅빈충만의 삶은 바로 자기비움의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마음 속 깊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릴 때,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할 때, 우리들은 더욱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함으로 파스카의 주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하늘 나라 미사잔치의 초대에 응답한 우리 모두에게 비움의 여정에 한결같이 충실할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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