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기쁨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2020.11.5.연중 제31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5,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11.5.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필리3,3-8ㄱ 루카15,1-10

 

 

 

하느님의 기쁨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오늘 복음의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앞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고, 반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투덜 거리는 장면의 배경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이 아닌 자칭 의인들이라 칭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지만 반면 ‘사람을, 죄인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죄인을 찾는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양 99마리를 두고 잃은 양 죄인 하나를 끝까지 찾아 나서는 참으로 집요한 사랑의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99명의 의인 보다는 잃은 양 하나에 있으며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잃은 양 하나는 우리 모두의 가능성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늘 생각해야 할 바는 우리 하나하나를 찾는 하느님입니다. 수도자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 하는데 이에 앞서 우리 하나하나 ‘사람을, 죄인을 찾으시는 하느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득 창세기 3장 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숨은 아담을 찾는 하느님의 물음입니다. 그대로 죄인을 찾아나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너 어디있느냐?”

 

바로 아담이 회개할 순간인데 아담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상기해야할 바 ‘너 어디 있느냐?’ 물음이요 즉각 하느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실천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에 이은 되찾은 은전의 비유 역시 대동소이합니다. 되찾은 양을 찾고 기뻐하는 목자는,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자,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역시 잃은 은전 한 닢을 끝까지 집요히 찾아 나선 부인의 모습은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자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너무 실감있게 와닿은 예수님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을 표현하는 다음 말마디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양을 찾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그대로 죄인 한 사람을 찾아 구원했을 때의 예수님의 기쁨, 하느님의 기쁨을 반영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기쁨에 참여하라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뿐 아니라 각자 잃은 양같은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는 나는 아닌지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유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하느님의 기쁨-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기쁨, 예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주님과 함께 길잃어 방황하는 무지의 사람들을 찾아 구원에로 이끄는 일입니다. 잃은 양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지요! 잃은 양 하나가 아니라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잃은 양들처럼 생각됩니다.

 

새삼 ‘회개의 시스템’같은 수도원의 일과표가 고맙습니다. 공동전례기도와 공부와 일이 조화된 균형잡힌 일과표가 ‘회개의 일상화’를, ‘회개의 생활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찾아 성전에 들어올 때 마다 이뤄지는 회개이니 비단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중에 자주 성당을 찾아 회개의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비록 성전에 자주 못가더라도 잠시 멈추어 하느님을 생각하며 깨어 회개의 기도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구원의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회개가 늘 주님과 함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복음이 환히 이해됩니다. 주님의 참 자유로운 제자가 되려면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철저한 회개의 열매가 1.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고, 2.제 십자가를 지게 하고, 3.세상것들의 집착에서의 이탈로 주님의 참제자되어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은 주님의 참제자가 되기 위한 필수전제조건임을 깨닫습니다.

 

철저한 회개가 무지의 어리석음이나 탐욕에서, 또 허영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본질을 직시하게 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기본에 충실한 본질적 삶을 살게 합니다. 무지의 근원적 마음의 병의 치유에도 결정적인 약이자 답은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I was wrong!(내가 잘못했다!)”의 명수 였다는 인도의 성자, 간디가 생각납니다. 바로 늘 깨어 있었던 회개의 명수 간디였음을 입증합니다. 예언자 나탄의 지적에 “내가 죄를 지었소!” 솔직히 죄를 고백하던 다윗이 생각납니다. ‘고맙다’, ‘감사하다’ 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잘못했다’ ‘미안하다’ 잘못을 고백하는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 회개의 모범을 오늘 제1독서 필리비서의 바오로에게서 봅니다. 참으로 세상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 아름다운 영혼 바오로입니다. 무지의 탐욕과 어리석음의 어둡고 짙은 구름이 완전히 걷힌 푸른 하늘의 마음같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의 회개의 자유로움, 회개의 아름다움임을 깨닫습니다. 두 대목이 회개의 참 열매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참으로 부단한 회개와 더불어 예수님 공부, 예수님 살기, 예수님 닮기에 전념했던 바오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바오로에게 늘 ‘회개하는 죄인 한사람’이 되어 하느님께 기쁨을 선사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 모두 회개한 죄인 한 사람이 되어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 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시편105,2-3). 아멘.

 


Articles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