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고 충실한 주님의 집사-하늘의 시민 -2020.11.6.연중 제31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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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6.연중 제31주간 금요일                                                        필리3,17-4,1 루카16,1-8

 

 

 

슬기롭고 충실한 주님의 집사

-하늘의 시민-

 

 

 

오늘 복음의 ‘약은 집사의 비유’가 참 재미있습니다. 부정직한 집사의 미래에 대한 대비가 참 기민합니다. 자기의 소행을 부자 주인이 알아챘고 해고에 직면한 집사의 독백에 공감이 갑니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 들이게 하자.”

 

이어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지체함없이 빚을 탕감해 주는데 참 과감하고 신속합니다. 기름 백항아리 빚진자는 쉰으로, 밀 백섬 빚진자는 여든으로 빚문서를 적게 합니다. 생존을 위한 비상대책이 눈물겹습니다. 이를 알아 챈 주인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습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부자 주인에게서도 너그럽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차마 이렇게 하라고 말할 수는 없고 자기가 알아서 살길을 마련했으니 내심 고마웠을 것입니다. 부자에게는 이런 손해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만, 불의한 집사에겐 미래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에 부자 주인은 알아도 모른채 내심은 잘됐다 싶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총평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의 분발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불의한 집사는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사기꾼이요 절대 이런 행태를 칭찬하거나 본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의 미래를 위한 기민한 대처 자세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과연 빛의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기민한 대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누가 슬기롭고 충실한 주님의 집사이겠습니까? 지체없는 회개입니다. 당장 오늘 지금 여기서 탐욕과 무지, 거짓과 허영의 불투명하고 헛된 삶에서 벗어나, 사랑과 지혜, 진실과 겸손의 투명한 참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몫의 책임을 다하면서 제대로 반듯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는 연민과 정의를 실천하며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가 진정 빛의 자녀들이요 슬기롭고 충실한 주님의 집사입니다. 말그대로 모래위가 아닌 반석위에 내 인생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미완의 우리 인생집의 건설은 죽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충실히 한결같이 사는 것이 답입니다. 오늘이 미래입니다. 오늘 이렇게 충실하면 내일은 전혀 걱정안해도 내일은 내일대로 잘될 것입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든든한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미래가, 희망이 없다 비관할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4)

 

그러니 하루하루 충실히 한결같이 사는 것이 빛의 자녀들의 유일한 대책입니다. 이미 지난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하느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내적 힘을 받을 수 있을까요? 회개를 통해 천상 비전의 꿈을, 천상 희망의 꿈을 현실화하여 사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요즘 만추晩秋의 가을은 한국 어디나 아름답습니다. 지상의 삶이 이렇게 아름다우면 하느님 계신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상의 아름다움은 천국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상의 미사잔치가 이렇게 아름다우면 하늘 나라 잔치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런 아름다운 천국 비전을, 천상 잔치의 비전을 지닌자라면 세상 것들의 집착에서 이탈하여 저절로 초연한 자유와 지혜를 지닐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기쁨 충만하게 지낸 바오로가 그 모범입니다. 다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바오로의 초대에 응답하여 그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볼 때에 무지한 사람들의 행태는 얼마나 답답했겠는지요! 다음의 탄식이 이를 입증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잊을 때, 부단히 회개하지 않고 냉담할 때, 천상 비전과 희망의 꿈을 잃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세속의, 탐욕의 늪에, 수렁에 빠져 허덕이며 기쁨도 감사도 잃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전 어느 자매의 겸손이 무어냐는 물음에 ‘분수에 맞게, 기쁘고 감사하게 지족知足의 삶을 사는 것’이란 즉각적인 대답에 만족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회개한 깨끗한 영혼에게 드러나는 자신의 진짜 신원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상이요, 우리는 단지 세상의 나그네일뿐입니다. 바오로가 이점을 명확히 짚어 줍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고무적인 말씀인지요! 언젠가 그날이 아닌 오늘 지금 여기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 천상 희망의 꿈입니다. 참으로 하늘에 속한 하늘의 시민으로서, 주님의 슬기롭고 충실한 집사로서 우리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하는 미사시간이자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어가고 있는 우리를 감지感知하는 미사시간입니다. 다음 감미롭고 기분좋은 바오로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필립4,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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