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이들 삶의 등정登頂; 겸손과 사랑, 인내, 한결같음-2020.11.10.성 대 레오 교황 학자(400-461)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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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성 대 레오 교황 학자(400-461) 기념일 

티토2,1-8.11-14 루카17,7-10

 

 

 

믿는 이들 삶의 등정登頂

-겸손과 사랑, 인내, 한결같음-

 

 

 

하루하루가 넘어야 할 산입니다. 하루하루 올라가야 할 하느님 큰 산입니다. 지난 주일, 2020,11,8일 요셉 수도원에 정주한지 거의 30년만에 두 번째로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 등정에 올랐습니다. 오전 8;10분에 출발하여 산 정상에 올랐다가 10;40분에 귀원했으니 도합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그러니 매일 오전 1:30-4시까지 도합 2시간 30분 동안 영적 등정의 강론 시간과 흡사합니다. 하여 매일 영적 등정후 불암산 같은 강론 하나 써내게 되니 감사합니다.

 

불편한 몸이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때 참 적절한 기회다 싶어 단단히 준비하고 결행했습니다. 늘 바라보면서 흠모한 산이지만 오르면서 깨달음을 새로이 했습니다. 대부분 바위들로 이뤄진 바위산에 돌길이라 참 위험하고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첩첩산중, 매일 넘어야 하는 산들의 하루하루임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산이요, 끊임없이 하느님 산에 오르는 등정의 여정에 있는 우리 믿는 이들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만이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가 하나의 산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조심조심 깨어 한걸음, 한걸음 정상까지 올랐고 내려올때도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러이 깨어 긴장하며 걸었고 무사히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결코 삶은 비약이나 도약이 없다는 평범하고 귀한 진리를 확인했습니다. 우보천리, 참으로 겸손히 인내하면서 한결같이 조심조심 깨어 한걸음, 한걸음 끝까지 걸어야 하는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산앞에서는 한없이 겸허해야 합니다. 보이는 산들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이요, 이웃 형제들 하나하나입니다. 깊이 잘 들여다 보면 하느님만이 아니라, 예수님도 산이요, 교회도 산이요, 미사도 산이요 사람도 산입니다. 아무리 올라도 정상을 알 수 없는 높고 높은 산, 깊고 깊은 산입니다. 평생 하루하루 하느님 산에, 예수님 산에, 교회 산에, 미사 산에, 내 산에 오르는 여정중의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산 등정과 동시에 이뤄지는 내 산의 등정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높이에 하느님 산에 올랐으며 동시에 내 산에 올랐겠는지요? 

 

이웃 형제들 하나하나가 역시 산입니다. 크기와 높이와 모양이 다 다른 고유의  산같은 사람들이요 하느님만이 잘 아실 것입니다. 산에 오를 때 조심조심 한걸음, 한걸음 겸손히 인내하며 오르듯 형제들 산에 등정할 때도 그러해야 함을 배웁니다. 하느님 산만 경외할 것이 아니라 형제들 산도 경외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높이와 함께 가는 깊이입니다. 산은 ‘높이 위에로’ 오르지만 하느님 산은, 사람 산은 ‘깊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날로겸손과 사랑과 인내로 깊이 내려가는 깊이의 여정은 우리 믿는 이들의 여정입니다. 겸손으로 비우며 비우며 깊이 깊이 아래로 내려 가는 우리의 영적 삶입니다. 참으로 높이에서가 아닌 내적 산의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이요 참나요 이웃들임을 깨닫습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하느님 산, 내 산에의 깊이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러이 겸손과 사랑과 인내로 내려가는 깊이의 여정이 역설적으로 위로 위로 올라가는, 깊이 내려감과 동시에 높이 위로 올라가는 내적 등정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산같은 하느님을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이 이웃 하나하나가 산같은 외경畏敬스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마지막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내적 깊이를 통한 높이의 등정중인 우리의 영적 삶이며 계속 배워 습득해야 할 겸손과 사랑과 인내입니다. 

 

사람 산으로 하면 오늘 기념하는 대 레오 교황 역시 참 유일무이한 큰 산같은 교황입니다. 61년 평생동안 내적 등정의 여정중에 교회와 로마를 구했던 다방면에 능통한 천재였던 불가사의의 교황이었습니다. 위대한 행정가. 신앙의 보존자, 고대 교회의 초석을 놓은 하느님 비장의 무기같은 레오 교황입니다. 위대한 교황의 인품을 요약하면 지칠줄 모르는 열정, 관대함, 일관성, 그리고 의무에의 헌신, 즉 죽음을 불사한 책임감입니다.

 

또 반가운 큰 산같은 위인은 존 케네디 대통령 이후 이번 처음으로 미국의 46대 대통령이 된 우리 나이로 79세 고령의 가톨릭 신자 바이든입니다.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만성의 큰 산 같은 분입니다. 대선 승리를 공식으로 선언한, 가톨릭 정신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연설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미국이 다시 전 세계의 존경을 받게 하겠다. 힘이 아니라 모범을 보여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겠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대통령,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 인종이나 신념,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

 

참으로 크고 깊은 산은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을 닮은 각자 고유의 유일무이한 산같은 존재들 입니다. 결코 남의 산과 비교하여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 산의 존엄한 품위를 잘 보존하고, 끊임없이 한결같이 내적 등정에 충실함으로 참 나의 산을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과 종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앞선 깨어 있는 종들의 비유(루카12,35-40)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다음 대목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바로 주인이 상징하는 바 예수님입니다. 깨어 있던 종들의 시중을 드는 예수님의 겸손하고 친절한 모습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요. 바로 주인이 종을 섬기는 이런 예수님의 섬기는 겸손의 모습을 배워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주인과 종의 비유는 정 반대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해 줍니다. 역시 우리는 이 두면을 받아 들여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겸손한 섬기는 자세를, 하느님께는 종의 절대적 겸손한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겸손이기 보다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런 자세입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똑같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확실히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너희를 섬겼지만, 하느님의 종들인 너희들은 절대적 겸손으로 나처럼 하느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하는 일에 결코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한다해도 우리는 도저히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가 받은 것의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느님의 무궁한 자비를 생각하면 전적인 복종은 겸손이라 할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의무입니다. 무엇인가 요구하기에는 받은 것이 너무나 넘치고 많습니다. 이걸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감동적인 ‘연중 평일 감사송 4’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우리가 아쉽고 필요해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이지 하느님은 우리에게 아쉬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한량없는 은총을 베푸시어 우리 모두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티토2,12). 이와 더불어 우리 모두 하느님 산과 더불어 우리 각자 산의 내적 등정의 여정에 겸손히 인내하며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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