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협력자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사랑의 환대-2020.11.14.연중 제3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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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연중 제32주간 토요일                                                                3요한5-8 루카18,1-8

 

 

 

진리의 협력자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사랑의 환대-

 

 

 

근래 가톨릭 교회는 참 복이 많습니다. 성덕이 출중한 성인같은 교황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명실공히 성인입니다. 참으로 이 두분뿐 아니라 저는 주변에서 성인으로, 성녀로 부르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저는 이런 경우 성인이라, 성녀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듣는 이도 격려와 위로가 되어 행복하고 저 또한 힘을 받고 행복해 집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인터뷰중 다음 진솔한 내용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교황님의 묘비에 무엇이 새겨지기를 바라나요?”-

“(활짝 웃으며)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이름만 있으면 됩니다.”

-“교황님이 주교가 되었을 때 사목표어, ‘진리의 협력자’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이런 표어를 정하게 되었나요?”-

“70년대에 어느날 문득 제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행하는가?’그러기에 진리는 반드시 제대로 다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에겐 진리가 있고, 그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진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진리의 협력자’라는 말은 요한의 셋째 서간 1장8절의 말씀입니다. 진리는 인격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에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감동하여 더욱 진리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진리에 봉사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며, 그 진리를 위해 협력할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협력자’, 이것을 교황님의 묘비에 새기면 좋을 듯 합니다.”-

“그렇군요. 그것이 제 삶의 지표라면, 묘비에 새길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마디가 진리의 협력자입니다. 진리의 연인이라 칭했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생각납니다. 진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진리에 몸바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예수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진리에의 헌신이 자기 삶의 목표라 하셨던 성철 큰 스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언제 들어도 마음 설레게 하는 진리라는 말마디입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 진리를 찾는 열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늘 푸른 영혼의 청춘을 살게 합니다. 오늘 요한 3서의 진리의 협력자라 칭송 받는 가이오는 순회 선교사들을 따뜻이 사랑으로 환대했던 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이런 환대의 형제애가 참 진리임을, 참으로 환대의 사람들이 진리의 협력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환대하듯 이웃 형제들을 환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교회 봉사에 힘쓰는 사람들 역시 참 아름다운 진리의 협력자들입니다. 진리의 협력자들 바로 이런 이들이 성인성녀입니다.

 

어떻게 하면 참 좋은 진리의 협력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진리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과 열정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열정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로 표현됩니다. 참으로 진리의 협력자들은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과부의 간청을 들어 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 그 과부가 이런 기도의 모범입니다.

 

과부는 힘도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달랐습니다. 할 것이라곤 기도뿐이 없었고 끝까지 기도하듯 재판관에게 매달렸습니다. 삶과 기도가 하나인 과부였습니다. 과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종신불퇴의 자세로 항구하고 집요했으며 마침내 불의한 재판관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 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 거리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에 간절하고 항구한 믿음입니다. 과연 이런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주님은 묻습니다.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의 협력자로서 필수적 자질이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입니다. 기도와 회개는,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기도할수록 하느님께 가까이 갑니다. 

 

기도하면서 점차 우리가 청하는 것도 변화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 하나는 우리의 생각이, 꿈이, 야망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과 일치되는 것이요, 하느님이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재미난 복음 해석을 소개합니다. 원래의 비유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은 재판관이고 우리는 과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가 채워질 때까지 기도에 항구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재판관일 수 있고 하느님은 과부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재판관처럼 우리는 기본적으로 불의합니다. 우리는 때로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변 이웃들의 호소도 완강히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항구한 과부처럼 결코 포기하여 떠나는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올바른 판결을 내릴 때까지, 우리가 선으로 판단할 때까지, 우리가 사랑하기를 배울 때까지 항구히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듣습니다. 하여 우리의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항구하신 분, 우리를 더욱 당신처럼 만드소서!”

(Dear God, Persevering One, make us more like you!)

 

얼마나 참신한 해석인지요! 누가 무슨 재미로,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사느냐 묻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진리의 협력자로 사는 재미로, 맛으로, 기쁨으로 산다 말하고 싶습니다. 날마다의 강론도 진리의 협력자로서의 일입니다. 

 

“날마다의 강론은 내 사랑이자 운명이요, 구원이자 유언이다.”


어제 게시판에 다시 각오를 새로이 하며 써 붙여 놓은 말마디입니다. 진리를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는 진리의 연인, 진리의 협력자 되어 사는 맛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맛으로 사막같은 광야인생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진리의 협력자가 되어 참으로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화답송 시편은 어제에 이어 하느님을 경외하며 진리의 협력자로 사는 참행복을 말해 줍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시편11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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