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아마추어’가 아닌 ‘삶의 프로’가 됩시다. -한결같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의 프로’-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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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화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묵시14,14-19 루카21,5-11

 

 

‘삶의 아마추어’가 아닌 ‘삶의 프로’가 됩시다.

-한결같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의 프로, 삶의 성인’-

 

 

“만추晩秋의 수도원 아름다운 하늘길 축복 선물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자매님(형제님)!”

 

어제 여러분들에게 보냈던 메시지와 더불어 황홀한 아름다움의 만추의 하늘길 사진입니다. 보이는 세상이 이렇듯 아름답다면 보이지 않는 우리 궁극의 미래인 하느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겠는지요! 오늘도 피정중이지만 시간을 내어 못보낸 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할 작정입니다. 

 

‘곱게 늙기’는 피정 주제인데 참으로 곱게 늙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만추의 아름다운 수도원 하늘길 풍경입니다. 빛과 단풍의 절묘한 조화가 빚은 하느님의 살아 있는 작품처럼, 우리 인생도 은총의 빛과 순리대로의 한결같은 삶이 조화를 이룰 때 ‘곱게 살고 곱게 늙다가 곱게 죽기’의 아름답고 고운 삶과 죽음의 인생이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삶의 아마추어가 아닌 삶의 프로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베트남의 순교자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를 포함한 117명 동료 순교성인들의 기념일입니다. 순교성인 현황은 베트남인 96명(사제37, 평신도 59), 외국인 21명(스페인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 주교6, 사제5, 프랑스 외방 선교회 주교2, 사제8)입니다. 참으로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의 박해 역사와 흡사한 역사를 가진 베트남입니다. 17세기에서 19세기 까지 3세기에 걸쳐 1만여명이 순교자들을 배출한 베트남 가톨릭 교회입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잔혹한 갖가지 고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죽음을 맞이했는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민주화 역사의 빛나는 성취로 이런 일체의 고문이 없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어느 순교한 베트남 신학생이 쓴 감동적인 편지중 끝부분만 인용합니다.

 

“만일 우리가 현세에서 다시 못 본다해도, 내세에서 우리가 흠없는 어린양의 옥좌 앞에 서 있을 때 이것은 우리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승리의 기쁨에 환호하며 그분께 한 목소리로 찬미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 엄혹한 순교 상황에서도 승리의 기쁨을 앞당겨 살며 곱고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한 젊은 순교 신학생입니다. 오늘 복음이나 제1독서의 묵시록은 종말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두가 의도하는 바는 결코 우리에게 공포의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하루하루 종말론적 삶을 살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언젠가의 심판이 아니라 오늘이 바로 심판의 날이자 구원의 날인 것처럼 생각하여, 하루하루 한결같이 깨어 곱게 살다가 곱게 늙어 곱게 죽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재는 내일의 미래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 깨어 곱게 살면 내일의 미래는 전혀 걱정 안해도 됩니다. 내일은 내일이 잘 해결해 줄 것이니 바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의 때가 왔습니다.”

 

언젠가의 죽음으로 인생 수확의 때가 이르기 전 우리가 할 일은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하루하루 내적성장과 성숙의 여정에 충실하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일체의 유혹에 휘말리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워하지 말고 제 삶의 자리에서 충실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결코 부화뇌동, 경거망동 하지 말고 제 삶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며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은 하루하루가 종말이요 그 종말은 어둠이 아니라 희망의 빛, 구원의 빛으로 활짝 열린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짙은 구름속에서 배어 나오는 태양빛이요, 밤의 어둠이 깊어갈수록 가까워지는 일출의 빛나는 태양입니다. 희망과 기쁨의 구원을 상징하는 태양입니다. 이런 태양같은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때 일희일비함이 없이 깨어 한결같이 곱게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삽화가의 잔잔한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노력으로 자기 경지에 이른 분입니다. 정말 아름답고 한결같은 삶의 프로입니다. 저절로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지만 남들의 속도에 더는 흔들리지 않아요. 자기 증명에 대한 강박에서도 놓여나고요.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노력의 시간이 가져다 준 결과예요. 스스로 설득이 되는 지점까지 노력해본 자가 가질 수 있는 고요이지요. 자기를 끝까지 소진하면 오히려 결과에 겸허해져요. 더 할 수 있는 노력이 없을 때까지 해보면 남들이 뭐라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요.

 

저의 눈에 반짝이는 작가들이 보여요. 자유롭고 거침없이 그리는 작가들이요. 배가 아프죠. 샘도 나요. 그런데 그게 전부예요. 며칠 질투하다 제자리로 돌아와요. 정보의 이해를 돕는 데에 최적화된 저의 그림체는 오랫동안 평범하다는 평을 들어요. 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예요. 삽화가로 부단히 애쓴 10년이 만들어준 소중한 내 것이죠.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처럼 일필휘지로 그리지 못하지만, 제 책이 자랑스러워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이것이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상의 것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우리는 여전히 자기 자신밖에 되지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 볼 필요가 있어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확인하기 위해서요. ‘여기까지가 한계이고, 너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자신이 설득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경계에 울타리를 세우면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보이는 소중함이 있어요.“

(한겨레;11월21일 ‘돌파하는 힘-유설화 삽화가)

 

이렇게 긴 개인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기는 처음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프로의 삶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제크기, 제모습, 제색깔, 제향기로 참나를 살 때 비로소 주님을 닮아 삶의 프로요 삶의 성인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한결같고 아름다운 삶의 프로, 삶의 성인이 되어 곱게 살다 곱게 늙다가 곱게 죽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루하루 한결같고 아름다운 삶의 프로, 삶의 성인이 되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우리를 다스리러 오신다. 그분은 우리를 의롭게, 진리로 다스리신다.”(시편96,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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