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인생 -지상에서 천국을 삽시다-2020.12.2.대림 제1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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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대림 제1주간 수요일                                                      이사25,6-10ㄱ 마태15,29-37

 

 

 

축제인생

-지상에서 천국을 삽시다-

 

 

 

아마 예수님은 예언자들중 이사야를 가장 좋아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사야 예언서로부터 많은 영감과 삶의 지침도 배웠으리라 봅니다. 바로 이런 점을 교회는 전례에 결정적으로 참고한 듯 합니다.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첫째 부분이 끝나는 날 12월16일까지 계속 이어지는 제1독서는 이사야서입니다.

 

모두 대림시기 하느님의 꿈인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하느님의 꿈은 복음의 예수님뿐 아니라 대림시기 오늘의 우리를 통해서도 실현됨을 봅니다. 이사야가 꿈꾸는 하느님의 꿈은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요! 

 

분명 이사야가 살았던 현실은 엄혹한 연옥같은, 지옥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나 이런 현실에서도 하느님을 꿈꾸며 천국을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말그대로 이런 생생한 하느님의 꿈이, 비전이 있을 때 절망적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지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을 것이며 역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참으로 연옥같은 현실에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위태위태하게 하루하루 외롭고 힘겹게 살아갑니다. 하여 휴가를 간다해도 참 마땅한 거처 찾기가 힘든 것이지요. 이런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성령의 힘으로 지상에서 천국을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요 모든 성인성녀들이었음을 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 역시 그 좋은 증거입니다. ‘기뻐하라’고 많이도 강조한 것도 그의 옥중서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하느님의 꿈, 이사야의 영감에 넘친 시는 얼마나 원대하고 깊은지 놓치고 싶지 않아 전반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풀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주목되는 말마디가 ‘모든 민족들’, ‘모든 겨레’로 종파를 초월하여 온 인류가 하느님의 구원 대상임을 알려 줍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소망을, 꿈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이사야 예언자요, 그 꿈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또 지금 거행하는 미사잔치를 통해서 서서히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사야의 하느님 꿈을 실현하여 사시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요,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하느님의 꿈을 앞당겨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하느님의 꿈, 궁극의 미래는 얼마나 고무적이고 아름다운지요. 하느님의 완전 승리로 이룩하신 우리의 영원한 천상 본향인 진짜 천국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이미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은연중 감지되는 천국의 현실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도 분명 여기서 영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역시 전 인류의 구원이 하느님의 목적임은 ‘모든 사람’, ‘온 세상’이라는 말마디에서 드러납니다. 이런 현실을 앞당겨 체험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은 미사잔치를 통해 우리의 무지와 병고의 너울과 덮개를 없애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우리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하느님의 소망과 꿈은 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신바람나게 실현됩니다. 역시 산에 오르시어 자리를 잡고 연옥같은 지상 한복판에서 천국을 체험토록 하십니다. 불암산을 배경한 우리에게는 더욱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1부는 영육의 치유요, 2부는 영육을 배불리시는 내용입니다. ‘고쳐 주시고 먹이심’으로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 지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은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제1독서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마치 이들을 구속했던 무지와 병고의 너울과 덮개를 거두시어 자유롭게 하시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지와 병고의 너울과 덮개에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지요. 하여 복음에서와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무지와 병고의 너울과 덮개를 없애 주시지만, 궁극의 온전한 자유는 천상 잔치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주님의 사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은 그대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의 반영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미사잔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군중에게 나눠줍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합니다.

 

그대로 풍성한 미사은총을, 지상에서의 천국 체험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주목할바는 예수님이 아닌 제자들이 군중에게 빵을 나눠줬고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기적에 대한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에 감동한 군중들이 숨겨 가진 것들을 다 내놓고 나누니 부족함이 없었다는 해석은 이미 고인이 되신 성자라 일컫는 무위당 장일순 님의 해석이자 어제 읽은 주석의 내용입니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기적에 대한 풀이입니다. 군중을 감동시켜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다 나누니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선 지구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위해선 지구가 서너 개 있어도 모자란다.”는 20세기 초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의 말도 생각이 납니다. 하느님께 청하기 전 받은 것에 감사하며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삶이 더 우선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대림시기,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사야의 하느님의 꿈을 실현하여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지상에서 천국을 살게 하십니다. 이사야서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바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이 불암산 위에 머무르신다.”(이사25,9-10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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