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내적 혁명가의 삶 -회개하여라, 위로하여라, 주님의 길을 내어라-2020.12.6.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6,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12.6.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이사40,1-5.9-11 2베드3,8-14 마르1,1-8

 

 

 

사랑의 내적 혁명가의 삶

-회개하여라, 위로하여라, 주님의 길을 내어라-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자 제39회 인권주일이고, 10회 사회교리주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일 담화를 통해 “가장 가난하고 멸시 받는 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 모습이 새겨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인권을 강조한바 있습니다. 인권을 수호하고 사회교리를 배우고 익혀 시대의 징표를 예민하게 읽고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신앙인의 의무입니다.

 

또 특기할 것은 지난 11월29일 대림 제1주일부터 내년 대림 제1주일 전날(2021.11.27.)까지 한국 천주교회는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란 주제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게 됩니다. 가톨릭 평화방송(CBPC) 캠페인 월별 주제중 내년 희년이 끝나는 달에 이어 12월 마무리 주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예,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내년까지 갈 것 없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묻는 다면 지체없이 “예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대답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천주교인답게 살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사랑의 내적 혁명가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하루하루 늘 새롭게 시작하는 한결같은 삶입니다. 

 

‘사랑의 내적 혁명가’의 삶은 바로 오늘 대림 2주일 강론 주제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삶, 위로하는 삶,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삶이 되겠습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후렴의 가난하고 겸손한 간절한 기도가 심금을 울립니다. 이 기도에 응답해 주님은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첫째, “회개하여라.”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한두번 회개가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회개하는 ‘회개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입니다. 이래야 늘 맑게 흐르는 삷입니다. 결코 감상적 회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방향을 바로 잡는 삶의 방식을 개선하는 회개입니다. 늘 하느님 안 제자리에 돌아와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을 다하며 사는 회개입니다. 내적혁명의 삶, 바로 끊임없는 회개의 삶임을 뜻합니다. 내가 문제요 결국 변화해야 할 것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내가 회개를 통해 변하면 주변은 저절로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고질적 마음의 병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병입니다. 회개를 통해 겸손해 질 때 비로소 자기를 아는 지혜요 무지의 병도 치유됩니다. 무지의 병에 최고의 특효약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설교 주제가 일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위한 세례를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 역시 회개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다음 세례자 요한의 단순소박한 삶과 말씀도 그대로 그의 겸손을 반영합니다.

 

‘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쓰레기를 전혀 내지 않는 무공해의 가난하고 겸손한 자연인 요한입니다. 그의 말씀 또한 그대로 겸손의 표현입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회개의 귀한 열매가 자기를 아는 겸손입니다. 회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회개의 진정성은 겸손을 통해 드러납니다. 회개를 통해 주님을 알수록 나를 알게 되어 겸손인 것입니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박상훈 신부의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바 역시 겸손이었습니다.

 

“연대의 다른 말은 겸손입니다. 연대는 결국 겸손해지는 것이며 교회는 겸손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된 겸손의 마르지 않는 샘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주님께 대해 언급합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유일한 소원도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마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장되는 날들은 회개하라 주어지는 은총의 날들입니다. 살았을 때 회개이지 죽으면 회개도 없습니다. 회개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분발을 촉구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참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없고 흠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결국 회개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로 겸손해진 이들에게 활짝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의 희망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위로하여라.”입니다.

내적혁명의 회개로 겸손해진 이들은 주님을 닮아 위로의 사람이 됩니다.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 제2부 시작으로 ‘위로의 책’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참으로 하느님을 닮은 겸손한 사람은 위로의 사람입니다. 위로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위로로 구원 받은 시온이,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바로 위로와 격려의 주님을 반갑게 환대하는 은총의 대림시기이자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예언자 이사야는 위로와 연민, 사랑의 하느님의 모습을 참 다정하고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분께서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참으로 이런 다정한 착한 목자 하느님을 닮을수록 위로의 사람이 됩니다. 얼마나 위로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인지요. 충고나 조언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경청과 위로, 격려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궁극으로 슬퍼하는 우리를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바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는, 또 기쁨과 평화를 선물 받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 모두 위로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으로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2코린1,3-4).

 

셋째,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입니다.

위로에 이어 회개의 구체적 실천입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사랑의 내적혁명을 통해 가까이 나부터 바꾸려는 노력이 우선입니다. 오늘 복음의 셰례자 요한은 이사야로부터 영감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말씀대로 자기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에 돌입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사야 말씀은 더 구체적으로 우리 마음에 와 닿습니다. 대림시기를 맞이한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우리를 고무하고 용기를 줍니다. 사랑의 내적혁명가가 되어 살게 합니다. 인권주일을 맞이하여 불평등이, 차별과 혐오가 만연된 광야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적절한 깨우침과 도움이 됩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라.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사랑의 내적 혁명가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꿈이 펼쳐진 유토피아 지상천국의 실현입니다. 바로 대림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개척, 개선의 노력을 다해 길을 닦을 때 바로 그 길로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마침내 주님과의 감격적 구원의 상봉이 이뤄집니다.

 

인생 광야와 사막에 사랑의 길을 내는 것입니다. 교만의 높은 산과 언덕을 겸손으로 깎아 내려 낮추고, 골짜기의 차별과 혐오는 정의와 사랑으로 메꾸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험한 곳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평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우주이자 세상이요 광야입니다. 바로 오늘 이사야 말씀은 우리의 참 거칠고 험한 내적 광야를 상징합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겸손, 주님의 위로와 치유, 기쁨과 평화의 은총으로 내적 정화와 혁명이 이 은총의 대림시기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숙제로 제시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의 내적혁명가 되어 회개의 삶, 위로의 삶,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삶에 한결같이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Articles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