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 -기쁨, 자유, 감사, 겸손-2020.12.13.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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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이사61,1-2ㄱ.10-11 1테살5,16-24 요한1,6-8.19-28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

-기쁨, 자유, 감사, 겸손-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자 자선주일입니다. 또 일명 ‘가우데테(기뻐하라)’ 주일로도 불립니다. 하여 제의 색깔도 기쁨을 상징하는 분홍의 장미색깔이요 장미주일로도 불립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대림초 3개가 주님께서 오심이 임박했음을 알려줍니다. 입당송과 화답송 후렴이 우리의 기쁨을 한껏 고무합니다.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

“내 영혼이 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네.”

 

코로나 19 블루의 우울증을 일거에 날려 버리는 대림의 기쁨입니다. 어제는 요셉 수도원을 사랑하는 예수성심형제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수성심자매회 모임은 다음 화요일에 있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에도 매달 한나절 모임을 가졌던 두 모임입니다. 어제 강의 중 나눴던 내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삶의 여정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삶의 시작과 끝의 여정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시작해서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중에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삶을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할 때 어느 지점에 와 있겠는지요. 아마 여러분은 대부분 가을 인생에, 하루중 오후 지금쯤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자각이 깨어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합니다.”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바로 우리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보면서 심기일전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교황님은 어제 UN 기후 정상회의에 비디오 메시지를 보냈는데 대림시기에도 적절한 주제입니다.

 

“지금은 방향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여정의 방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회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향해 날마다 평생 제대로 방향을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기뻐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십시오. 어둡고 무겁게 지내기엔 너무 짧은 아까운 인생입니다. 우울과 심각함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영성의 징표도 아닙니다. 기쁨과 유머가 참 영성의 징표입니다. 우울한 성인들은 진짜 성인이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중에도 기쁨의 꽃을 피워냈던 성인들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기뻐하십시오. 

 

참 좋은 주님의 선물이 기쁨입니다. 모든 것 다 지녔어도 기쁨이 없으면 너무 허전합니다. 진정 부자도 아닙니다. 참으로 기뻐할 때 행복한 부자입니다. 우리가 이웃에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도 기쁨입니다. 보십시오. 이사야도 대림시기를 맞는 우리의 기쁨을 고무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에서 의로움이 찬미가 기쁨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기쁨의 사도 바오로 역시 ‘언제나 기뻐하라!’는 간곡한 권고입니다.

 

둘째, “자유로워라!”입니다.

자유로우십시오. 주님과 함께 할 때 자유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점차 자유로워지는 자유의 여정입니다. 물론 끊임없는 기도는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성령의 자유입니다. 

 

바오로의 옥중 서간을 보면 사도가 얼마나 옥중에서도 참 자유를 누렸는지 알아 챌 수 있습니다. 주 하느님의 영에 자유로워진 이사야의 고백은 바로 예수님의 고배이자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날이 은혜의 해입니다. 미사후 파견에 앞서 가난한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우리의 부서진 마음들을 싸매주시고 내외적 억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유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고 성령의 도움으로 이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감사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감사에서 샘솟은 찬미요, 찬미가 우리의 눈을 열어 매사 감사하게 합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선물에 저절로 감사요 찬미입니다. 살 줄 몰라 불평이요 살줄 알면 감사입니다. 찾아 보세요. 감사할 일을! 그리고 감사의 목록을 적어 보세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기쁨과 더불어 감사도 참 영성의 표지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말씀하시며 감사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자들은 삼감의 삶을 즉, 감사와 감동과 감탄의 삶을 삽니다. 정말 감사의 삶을 사는 이들은 결코 원망, 절망, 실망의 삼망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넷째, “겸손하라!”

겸손의 모델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역시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셨습니다. 참 영성의 징표가 겸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난자들의 특징이 겸손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회개와 더불어 저절로 따르는 겸손입니다. 주님을 정말 만났는가는 겸손을 보면 압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에게 물었을 때 그의 대답에서 그의 겸손과 신원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 빛이신 주님을 증언하러 온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했던 참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주님 빛을 반사한 달같은 겸손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인 세례자 요한인지요! 겸손의 아름다움, 겸손의 매력입니다. 다음 고백에서 요한은 겸손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참으로 우리를 감동, 감격하게 하는 요한의 겸손, 겸허, 겸비입니다. 이런 삶 자체가 이웃을 감화하고 이웃에 감명을 줍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정확히 제 자리와 제분수를 알았던 세례자 요한입니다. 비상한 겸손이 아니라 주님 안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몫을 다하며 제대로 사는 이들이 진짜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을 원하십니까?

바오로 사도의 제2독서 말씀이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제가 고백성사시 보속으로 가장 많이 드리는 말씀 처방전이기도 합니다.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은총의 대림시기,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탄날 오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1테살5,23-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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