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뷤(anawim)의 영성 -본질에 충실한 삶; 가난,겸손,순종-2020.12.15.대림 제3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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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대림 제3주간 화요일                                                      스바3,1-2.9-13 마태21,28-32

 

 

 

아나뷤(anawim)의 영성

-본질에 충실한 삶; 가난,겸손,순종-

 

 

 

대림시기, 원천의 순수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입니다. 참으로 본질에 충실해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흡사 현재의 인류의 교만과 탐욕을, 문명을 비웃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같기도 합니다.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백신에 희망을 걸지만 이 또한 확실한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언론 매체가 온통 코로나19에 대해 보도하지만 답은 없습니다. 거리두기, 마스크하기 밖에는 별 대책이 없습니다. 이래저래 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근본적인 생태적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살아갈수록 더 복잡하고 바쁘고 힘들어지고 욕심도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여 노추란 말도 생긴 듯 합니다. 이래서 자신을 늘 새롭게 추스르는 회개가 필수입니다. 혼자서의 삶이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욱 연결과 연대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삶은 홀로의 여정이 아니라 도반과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어디선가 ‘삶의 40%는 돌봄’이란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자서의 삶인 듯 하지만 돌봄의 산물이라라는 것입니다. 저를 보니 40%가 아니라 100% 돌봄 같습니다. 제 손으로 구입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먹고 있는 음식들, 집무실의 책에서부터, 옷장의 옷, 지금 현재 입고 있는 옷, 구두, 모자, 전부가 따뜻한 수도공동체와 이웃들의 사랑의 선물들입니다. 얼마나 이웃과 세상에 긴밀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습니다.

 

이를 정말 깨달을 때 저절로 감사와 겸손입니다. 참으로 한없이 많은 하느님과 이웃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9월29일 고속도로에서의 대형교통 사고시에도 하느님은 저를 감쪽같이 기적적으로 살려 주셨으니 생명의 빚 또 얼마나 큰지요! 하여 이런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매일 이른 새벽 일어나 강론을 씁니다.

 

연결되어 이어지면 살고 단절되어 끊어지면 죽습니다. 참으로 고독과 침묵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연대와 일치에 목적이 있습니다. 더욱 깊은 연대와 일치를 위해 홀로와 함께는 균형과 조화는 필수입니다. 특히 가난한 자들의 연대는 필수입니다. 코로나19와의 지루한 전쟁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도서출판 도반’이란 출판사 명이 이채로웠습니다. 장애인들이지만 영롱한 시들이 순수한 영혼들임을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순종의 사람들입니다. 최명숙 시인의 '심검당 살구꽃' 끝연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답고 은은하던지요!

 

-“스님은 어디 가셨는지 살구꽃이 져서/심검당 뜰이 온통 하얀데

바람은 꽃잎을 떨구고 어디로 갔나/꽃은 지는데 아무도 없다.”-

 

참으로 가난하고 순수한 영혼만이 쓸수 있는 시같습니다. 참으로 오늘 지금 깨어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할 대림시기에 요즘 너무 마음 바쁘게 엄벙덤벙 살아왔음을 반성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평생 매일이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날들입니다. 시집의 서문 스님의 축하글 일부도 마음에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이 부처님께 ‘도반道伴과 수행의 관계’에 대해 묻자, 부처님께서는 ‘도반은 수행의 전부’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시작을 통해 고난의 시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데 작가님들은 좋은 도반입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건 주인공으로 살면 바로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진실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하루하루 즐겁고 기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될 것입니다.”

 

그대로 우리 마음이 가난한 도반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아나뷤의 영성입니다. 아나뷤은 바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로 온통 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걸었던 사람들이요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사람들입니다. 어제 성 요셉, 바로 하늘이 신뢰했던 사람이란 글을 읽었는데 하느님도 참으로 신뢰했던 아나뷤들입니다. 무엇보다 큰 기쁨이자 행복은 하느님께 신뢰와 사랑을 받을 때 일 것입니다.

 

코로나로 외롭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아나뷤의 영성입니다. 하느님과 가난하고 착한 이웃 도반들에게 깊이 연대의 뿌리를 내리고 일일시호일 매일 좋은 날을 살아가는 아나뷤들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스바니야서가 아나뷤을 소개합니다.

 

“나는 네 한 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가난한 아나뷤 도반 공동체에 대한 묘사입니다. 바로 이런 아나뷤의 후예가 수도자들이자 신자들입니다. 사실 시편은 가난한 아나뷤들의 묘사입니다. 화답송 후렴은 그대로 가난한 아나뷤의 기도입니다.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하느님 친히 당신께 전적 희망과 신뢰와 사랑을 두고 살아가는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면서 당신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친히 보호하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맏아들이 상징하는 바 이런 아나뷤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아들로 상징되는 지도층에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이 비유를 들려 줍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행입니다. 처음에는 “싫습니다.” 거절했지만 회개로 생각을 바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밭에간 맏아들입니다. 바로 맏아들이 상징하는 바, 당대 소외와 가난의 삶을 살았던 아나뷤의 후예와 같은 세리와 창녀들이요, 이들이 실은 내적으로는 가난하고 겸손하고 순수했던 아나뷤의 영성을 지닌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은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나는 과연 어느 편에 속하는 지요. 그대로 두 부류의 신자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가난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가난한 자들, 아나뷤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등하게 가난한 빈 손으로 성체를 모시러 줄을 섰을 때 먹을 성체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가난한 거지, 아나뷤의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적입니다. 바로 영성체전 이 장면은 가난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아나뷤 도반 공동체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마지막 경고같은 코로나 19팬데믹이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 본질적 삶을 살도록, 바로 하느님의 가난하고 겸손한 아나뷤의 영성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아나뷤의 영성을, 바로 가난과 겸손과 순종, 그리고 신뢰와 희망과 사랑의 영성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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