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닮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속한 우리들-2020.12.17. 대림 제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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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7.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창세49,1-2.8-10 마태1,1-17

 

 

 

하느님을 닮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속한 우리들-

 

 

 

오늘 12월17일 부터 대림시기 둘째 부분이 시작됩니다. 우선 눈에 띠는 게 ‘오 후렴’에 예수님의 긴 족보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참 정밀하고 섬세한 전례 배치가 고맙습니다. 바로 교회는 디테일에 강한 하느님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안에 숨어 있다 합니다. 

 

'추秋의 시정치'라는 기사가 이색적이었습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16일 사의 표명 보도가 나온 직후에 페이스북에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을 인용했고, 전날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이었던 이 육사의 ‘절정’을 인용하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합니다. 역시 디테일에 강한 지도자의 면모를 봅니다. 나이 60대 중반(1958년생)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치열한 정신과 순수한 감성과 열정을 지닐 수 있는지 호불호를 떠나 참 감탄스럽습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詩는 그대로 구원救援임을 깨닫습니다.

 

디테일에 강하기론 하느님을 당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긴 족보에서도 디테일에 강한 하느님의 면모가 참 잘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닮은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끊임없는 강론과 메시지를 통한 교황님의 관심사를 통해 그분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깨어 있는 분이며 디테일에 강한 분인지 깨닫습니다.

 

“교육은 희망의 행위다(Education is an act of hope)”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메시지 제목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바로 교육은, 공부는 희망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희망이 왕성할수록 교육에, 공부에 항구하고 충실합니다. 무엇보다 희망의 원천이신 하느님 공부입니다. 평생공부인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가는 공부에 지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평생 하느님 공부에 충실할 때 하느님을 닮아가면서 비로소 무지의 병도 치유되어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림시기 둘째 부분의 첫날 12월17일 오 후렴이 참 좋습니다. 저녁 성무일도시 흥겹게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 후렴입니다.

 

“오 지혜 지극히 높으신 이의 말씀이여, 끝에서 끝까지 미치시며 권능과 자애로 다스리시는 이여, 오시어 우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

 

바로 지혜롭고 겸손하신 주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우리에게 슬기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참으로 오실(성실, 진실, 신실, 절실, 충실)의 하느님이시며 기다림과 인내의 대가大家인 하느님이시며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당신 섭리의 도구로 쓰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가 족보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존재 이유를 지닙니다. 아무도 쓸모없다 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적재적소에 활용하십니다. 궁극의 목표 지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비로소 하나하나가 존재 이유를 지닙니다. 여기서 평범한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닫습니다.

 

‘하나로 이어져 연결되어 있으면 살고, 끊어져 단절되어 있으면 죽는다.’

 

공동체의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살아 있으며 존재의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고립단절 무관계의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요. 다 제 몫의 자리와 역할에 충실한 모습들입니다. 

 

이런저런 사람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 활짝 열려 있는 오색찬란한 참 다양한 인물들이 족보에 등장하며 참으로 디테일에 강한 하느님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결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거룩한 족보가 아닙니다. 

 

특기할 것은 다섯의 기구한 여인들입니다. 가나안 원주민 출신 1.다말과 2.라합, 모압 출신 3.룻, 우리야의 아내였다가 다위의 아내가 된 4.바쎄바, 그리고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5.마리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시야가, 전능과 자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닫습니다.

 

하느님께도 도약이나 비약이 없음을 봅니다. 하루하루 끝없이 기다리고 인내하며 모두를 당신 구원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며 예수 탄생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고 이런 하느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오늘 제1독서에 야곱은 죽음이 다가오자 유다에게서 훗날 왕권을 차지할 후손이 생길 것을 예고합니다.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유다의 왕홀이, 지휘봉이 그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 계속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이어 면면히 이어지는 교회 역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예언입니다. 참으로 당신 예언대로 이루어가는, 한결같이 충실하신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사람눈에 우연이지 하느님 눈엔 필연의 섭리입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예수님 탄생하기 까지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의 기다림이 참 놀랍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며, 우리 또한 세례성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족보에 편입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맏형님으로 모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속한 한가족 교회 공동체인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속한 한가족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 이 시대에, 우리 교회 공동체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시편7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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