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무엇인 될 것인가? -모두가 하느님 섭리안에 있다-2020.12.23.대림 제4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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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3.대림 제4주간 수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나는 대체 무엇인 될 것인가?"

-모두가 하느님 섭리안에 있다-

 

 

 

예수님 탄생에 앞둔 하느님의 준비가 참으로 치밀합니다. 아주 단계별로 절차를 밟아갑니다. 비약이나 도약이 없는 아주 디테일에 강한 하느님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어제는 사무엘 탄생의 기쁨을 노래한 사무엘의 모친 한나의 찬가와 더불어 예수님 잉태의 기쁨을 노래한 마리아의 찬가를 나눴습니다. 

 

오늘 대림2부 일곱째 날인 예수님 탄생이 임박한 12월23일 오늘 복음은 요한 세례자 출생에 대한 일화를 나눕니다. 오늘로 끝나는 임마누엘 주님 오심을 간청하는 ‘오 후렴’의 기도 역시 간절합니다.

 

“오 임마누엘 우리의 임금이시요, 입법자이시며 만민이 갈망하는 이요, 구속자이시니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 주 하느님!”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두 말마디가 한 눈에 반갑게 들어 왔습니다. “크리스마스2020: 희망의 빛이 어둠 속에서 가장 환히 빛난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구원받지 못한다.” 예수님 탄생의 큰 기쁨의 빛에 앞서 요한 세례자 출생의 빛도 주변을 환히 밝힙니다. 요한 세례자 탄생을 기뻐하는 이웃과 친척들입니다. 다음 평범한 말마디가 함께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값진지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혼자서의 기쁨보다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깨닫습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이요, 나눌수록 작아지는 슬픔이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한 사람의 탄생은 우주의 탄생과도 같은 큰 기쁨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우연한 출생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섭리 안에서 필연적 결과임을 깨닫는 다면 낙태는 상상치도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약과 계약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시며 성실히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미 요한 세례자 출생은 아주 오래 전, 제1독서 말라기에서 예언된 그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어 하늘 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회개를 선포한 요한 세례자를 당대 예수님과 제자들은 엘리아의 재림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새삼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 역시 회개의 시기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 출생후 작명과정에서 하느님 개입의 구원 신비를 깨닫습니다. 잠시의 불신으로 벙어리가 되어 흡사 대 침묵 피정같은 기간을 지낸 즈카르야도 요한 세례자 아들의 진상眞相을 깊이 깨달았음이 분명합니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부르려 하는 순간 엘리사벳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하자 즉시 판을 달라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니, 모두는 놀라고 일거에 분위기는 반전되고 안정됩니다. 즈카르야는 그 순간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화두같은 물음은 바로 주님의 손길이 아기 요한을 보살피고 계심을 깨달았던 이웃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우연한 존재가 아닌 하느님이 뜻하신 사명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 요한을 깨달았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생각하는 바 우리 각자의 인생입니다. 

 

요한 세례자에 대한 물음은 우리에 대한 물음이 됩니다. “나는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대체 이대로 살아도 되나?” 바로 우리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대로’란 말마디와 더불어 어제 25년 만에 고백성사차 온 수녀님의 한마디 ‘그대로’란 반가운 말마디가 떠오릅니다. 아마 당시 수녀님은 수련자였을 것입니다. 

 

“신부님, 그대로네요!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이대로’가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그대로’의 영원한 삶, 행복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우리 역시 우연한 인생이 아닐 것이며 분명코 우리 하나하나 주어진 주님의 뜻이, 사명이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 이를 깨달아 사는 것이 바로 구원이요 대림시기 과제이겠습니다. 하여 오늘 화답송 다음 시편의 고백 기도가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의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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