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회개와 겸손, 감사와 평화-2020.12.24.대림 제4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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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대림 제4주간 목요일                                      2사무7,1-5.9ㄷ-12.14ㄱ.16 루카1,67-79

 

 

 

하느님 중심의 삶

-회개와 겸손, 감사와 평화-

 

 

 

어제 세례자 요한의 출생에 이어, 주님 성탄절 바로 전날인 12월24일 오늘 복음은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마리아의 노래처럼 즈카르야의 노래 역시 아나뷤의 찬가, 가난한 이들의 노래입니다. 성서의 빈자의 영성이 잘 드러나는 역시 초대교회 가난한 신자들이 즈키르야의 입을 빌어 노래했던 즈카르야 찬가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끝무렵에 부르는 즈카르야 노래를 통해 우리 교회 역시 아나뷤의 후예들임을 입증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즈카르야가 대 침묵피정같은 분위기에서 벙어리로 지내다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성령으로 가득차 찬가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즈카르야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 왔다는 표지입니다. 보십시오. 완전히 즈카르야 찬가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온통 찬가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고 동사는 하느님이 하신 행위입니다.

 

회개의 표현이 하느님 중심의 겸손한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신 구원 역사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우리의 회개를 촉발하며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하느님 중심의 단순하고 진실하고 투명한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내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인지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잊을 때 혼란과 방황이요 세상 우상들의 노예가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로 시작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즈키르야 찬미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뛰노나니”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마리아의 찬가와 쌍벽을 이루는 즈카르야의 찬가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르야의 예언 찬가와 제1독서의 나탄의 예언 신탁이 참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나탄은 신탁의 예언을 통해 다윗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다는 다윗에게 하느님은 나탄을 통해 다윗을 위해 행하신 당신의 구원 업적을 열거하며 하느님 중심에의 삶으로 다윗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보십시오, 나탄의 예언 문장 역시 온통 주어는 하느님이고 동사는 하느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나탄의 예언은 먼 훗날에 있을 다윗의 자손 구원자 예수님의 도래까지 은연중 알려줍니다. 그대로 가톨릭 교회를 통해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예언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바로 성경의 이런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통해 우리 삶의 성서를 렉시오 디비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내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해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삶의 문장을 하느님을 주어로 하여 내 삶 전부를 렉시오 디비나 해보는 것입니다. 

 

요셉 수도원에 살기 까지 각자 삶의 궤적을 잘 들여다 볼 때 결코 우연이 아닌 ‘신의 한 수’와도 같은 하느님 섭리의 발자취를 발견할 것입니다. 때로 풍요로운 영적 삶을 위해 이렇게 하느님의 넓고 깊은 시야로 세상을, 사회를, 공동체를, 내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하며 하느님의 뜻을, 삶의 의미를 찾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찬미의 삶은 끊임없는 회개를 촉발하고 회개와 더불어 겸손을, 감사와 더불어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즈카르야의 성령 가득한 찬가를 통해 계시되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이요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참 고마운 은총의 선물입니다.

 

고맙게도 우리 수도승의 신원은 물론 믿는 이들의 신원도 뚜렷하게 계시됩니다. 바로 ‘한평생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주님을 섬기는 삶’이 우리 믿는 모든 이들의 신원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화답송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새삼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뷤들은 찬미의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고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으로 한평생 주님을 섬기는 우리 수도승들은 진정 아나뷤의 후예들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즈카르야 찬가를 통해 은혜로이 계시되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분명한 신원입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로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신원이자 사명입니다. 즈카르야의 렉시오 디비나의 풍요한 결실은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즈키르야의 예언 그대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우리를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당신의 가난한 아나뷤인 우리들을 당신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 기도가 우리의 심정을 그대로 잘 드러냅니다.

 

“떠오르는 별, 영원한 빛,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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