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순례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2021.1.3.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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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3.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60,1-6 에페3,2.3ㄴ.5-6 마태2,1-12

 

 

 

내적순례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원주교구 조규만 주교님이 수도형제들에게 보내 준 성탄카드 답신에 공감했습니다. 

“성탄카드 감사합니다. 올해 성탄은 쓸쓸했습니다. 첫 성탄처럼. 그래도 2021년 새해를 희망합시다. 희년이고 또 하느님이 우리의 희망이시니까요?”

올 성탄이 참으로 아쉬운 것은 성탄시기 성탄대축일 낮미사후 오늘 공현대추일 미사 때 마다 불렀던 그 좋은 손상오곡 화답송을 부르지 못한 것입니다. 짧은 기도로 바쳐도 얼마나 흥겨운 곡에 내용들인지요!

 

“땅끝마다 우리주의 구원을 모두가 우러러보았도다.”

“주님의 집에 사는자 얼마나 행복되리.”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그리고 오늘 공현대축일 화답송 후렴입니다.

“하느님 만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

 

새삼 찬미노래가 얼마나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지 깨닫습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은 동방박사들의 방문 이야기입니다. 어제 월피정 복음 나누기중 새롭게 떠오른 산티아고 순례여정의 그리운 추억이었고, 지체없이 강론 내용도 결정되었습니다. 매해 주님 공현 대축일 때마다 거의 반복되는 내적순례여정의 네 근본요소에 대한 강론이지만 할 때 마다 새로워 다시 삶을 추스르게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의 참 값진 깨달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는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느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후 참 많은 강론 주제중 하나가 ‘여정’입니다. 우리 인생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여정이라는 것이지요. 하여 늘 피정자들에게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일일일생, 여러분의 일생을 하루로 압축하면 하루중 어느 지점에 와있겠는지요. 여러분의 일생을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과연 어느 지점에 와있겠는지요.”

 

물으면 다들 숙연한 모습들입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여정을 점검하다보면 하루하루가 참 소중한 선물의 날들처럼 여겨집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그대로 우리의 내적순례여정을 상징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구도자와 순례자의 원형적 모범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 모두는 구도자요 순례자입니다. 오늘 내적순례여정의 네가지 근본요소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목표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목표는 베들레헴에 탄생한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 생장 포드에서 시작된 800km 순례여정의 최종 목표지점은 산티아고 대성전입니다. 베들레헴이나 산티아고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목표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으로 끝나는 우리 내적순례여정입니다. 이런 삶의 근본 목표인 하느님을 잊어버려, 잃어버려 표류요 방황이고 변질이요 타락입니다. 

 

그러니 늘 하느님 목표를 새로이 함이, 하느님을 잊지 않고 기억함이 우선입니다. 하느님을 잊으면 나를 잊게 되고 곧 무지의 어둠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하느님뿐이며 하느님께 대한 앎과 더불어 나에 대한 앎도 깊어집니다. 하느님 없이 나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여 하느님과 나에 대한 인식을 깊이하기 위해 늘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둘째, 이정표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빨리가든 늦게 가든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은 등수를 보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목표를 향해 완주했는가 봅니다. 여기서 참으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삶의 여정을 안내하는 가이드와 같은 이정표입니다.

 

산티아고 800km 긴 여정을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비결은 순전히 이정표 덕분입니다. 이정표는 생명과 같습니다. 길을 잃고 한참 방황하다 이정표을 발견했을 때는 얼마나 반갑던지요! 길을 잃고 방황할 때의 불안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던지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 따라 가야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삶의 여정에 결코 도약이나 비약은 없습니다. 우보천리 하루하루 이정표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이정표는 주님의 별이었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과연 여러분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는 주님의 별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자명히 드러나는 주님의 별이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처럼 깨어 찾는 순례자 누구에게나 계시되는 이정표 주님의 별입니다. 

 

마침내 주님의 별 이정표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한 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니 성공리에 끝난 순례여정입니다. 

 

셋째, 도반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혼자 떠다도 곳곳에서 함께 합류하는 도반들이 있어 순례 여정이 가능했습니다. 국적, 언어, 인종 모두 달라도 목표가 같기에 순수한 마음에 원활한 무언의 소통이요 평화의 일치였습니다. 만민의 보편언어가 순수한 마음임을 실감했습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혼자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더불어의 여정이요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끊어져 단절되면 죽고 이어져 연결되면 삽니다. 하여 수도공동체의 도반 형제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가스팔, 발타살, 멜키올 셋이었다 합니다. 만일 혼자라면 그 힘들고 험한 먼 순례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겠습니까! 익명의 그리스도인들 같은 동방 박사들 셋 사이의 우정도 참 깊었을 것이며 주님의 별을 통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우정도 꽤 깊었을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도반은 누구입니까? 사실 내적순례여정에 도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부부도 친구도 도반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수도형제가 도반입니다. 보이는 형제 도반과 더불어 평생 영원한 도반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형제 도반은 물론 영원한 도반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새벽에 감동적 인터넷 기사를 읽었습니다. 평생 부부 도반으로 살아 온 이들이 배우자를 떠나 보내는 인사는 다음과 같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여기서 더 이상 힘들게 있지 말고 어서 가.--- 사랑해.”

 

그런데 어디로 갑니까? 평생 오매불망 꿈에 그리며 사랑하던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는 희망과 믿음이 있다면 두려움과 불안은 기쁨과 설렘으로 바뀔수도 있을 것입니다. 

 

넷째, 기도입니다.

삶이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깨어 기도해야 목표인 하느님을 잊지 않습니다. 이정표를 발견합니다. 보이는 도반형제들은 물론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도 날로 깊어집니다. 제가 산티아고 순례중 가장 많이 한 것이 기도였습니다. 걷는 것은 기도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바로 이 짧은 시편기도를 바치며 샘솟는 힘에 갈수록 빨라져 나를 듯 걸어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짧고도 긴 삭막한 광야인생 기도없이, 주님없이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런지요. 노욕이나 노추가 아닌 품위있는 노년의 여정에 기도는 거의 절대적입니다. 오늘 복음의 끝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꿈에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대로 기도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기도할 때 분별의 지혜를 선물로 받습니다. 동방박사들 기도의 사람들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일단 순례여정의 최종 목적지에서 주님을 만난 이 체험이 동방박사들에겐 내적쇄신의 기회가 됐을 것이며 분명 예전의 동방박사들이 아닐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순례여정의 압축입니다. 매일 이 거룩한 성전 미사를 통해 신망애 향주삼덕을 예물로 바치며 미리 앞당겨 최종목표인 주님을 만난 우리들 역시 일일시호일, 날마다 새롭고 좋은 날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형제 도반들은 물론 영원한 도반이신 당신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해 주시며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60,1).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주님의 성탄이요 공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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