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주님께 보답해야 되나?" -회개, 겸손, 자비-2021.1.10.주일 주님 세례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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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주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마르1,7-11

 

 

 

"어떻게 주님께 보답해야 되나?"

-회개, 겸손, 자비-

 

 

 

새벽 교황님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한 눈에 들어 온 메시지가 강렬했습니다. 미국 수도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에 대한 난동에 대한 교황님의 메시지입니다. 민주주의의 초강대국 미국의 추한 민낯을 보여준 참 실망스런 사상 초유의 충격적 사건입니다.

 

“폭력을 거부하라. 치유의 시간이다(Reject violence. It’s time for healing)”

 

역시 세계의 크 어른다운 말씀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야만적 폭력의 언행은 합리화할 수 없으며 강력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좌우간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오늘로서 성탄시기는 끝나고 내일부터는 다시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세 번째 주님의 위대한 공현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주님 공현 대축일 저녁성무일도시 흥겹게 불렀던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이를 입증합니다.

 

“1.오늘 별이 박사들을 구유에로 인도하였고, 2.오늘 혼인 잔치에서 물이 술로 변하였으며, 3.오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도다. 알렐루야.”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의 ‘오늘’이 대림이요 성탄이요 공현이요 세례 축일입니다. 마침 얼마전 입양된 수도원의 반려견 ‘성탄’이 생각납니다. 반려견들을 돌보는 자매들이 지어준 기발한 이름인데 기존의 ‘대림’ 반려견과 좋은 짝을 이루는 거룩한 이름에 저절로 미소짓게 됩니다. 참 복도 많은 개팔자입니다.

 

어제 주님 세례 축일 전날 저는 한없이 기분 밝아지는 참 좋은 선물 셋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비신자지만 사랑하는 사촌형님으로부터 생신을 맞이하여 가족이 함께 찍은 다복한 사진을 받은 것이며, 하나는 전남 영광에 사시는 생면부지의 자매로부터 제 매일 강론에 감사하며 선물한 영광굴비를 받은 것이고, 셋째는 참 고맙고 좋은 분이 박사논문 심사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받은 것입니다. 가톡 내용 그대로 소개합니다.

 

1.“아, 해철형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감사미사도 봉헌합니다. 참으로 성공인생 사셨으니 장하십니다! 우리 수도원의 예수님께서도 축하인사 드린답니다.”

“수철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도원 뜨락의 밝은 햇살이 광명光明입니다.”

 

축하메시지와 더불어 전송한 수도원 십자로 중앙의 ‘예수님 부활상’ 사진에 대한 감사의 답신입니다.

 

2.“송진여 데레사 자매님, 보내주신 사랑의 귀한 선물, 영광굴비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사님들 모두 기뻐합니다. 예수님 감사인사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안녕하세요. 매일 수사님 강론을 보면서 작게나마 감사인사드렸습니다. 맛있는 식사하시고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은총 가득한 날 되세요!”

 

역시 감사메시지와 더불어 전송한 예수님 부활상 사진에 대한 자매의 고맙고 반가운 답신입니다.

 

3.“논문심사 잘 다녀왔습니다. 부족한 부분 수정하는 조건으로 통과입니다. 신부님 덕분이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 자매님께 축하! 인사 드립니다. 누구보다 수도원의 예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자매님께도 격려 메시지와 더불어 역시 수도원 예수님 부활상 사진을 전송하니 저 또한 나를 듯 기뻤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당신 세례 축일 전날 참 좋은 선물 셋을 주신 것입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가니 몸 불편한 곳이 하나둘 생겨납니다. 분명한 깨달음이 마음 깊이 각인됩니다.

 

‘약藥은 은총恩寵을 상징한다. 이젠 말 그대로 은총으로 사는구나! 사랑의 빚으로 사는구나! 겸손하자! 약먹으면서, 은총으로 살면서, 사랑의 빚으로 살면서 절대 죄짓지 말자! 영혼 건강에 각별히 힘쓰자! 팬티천같은 육신이 좀 부실해도 팬티끈같은 주인인 영혼靈魂이 튼튼하면 부실한 종의 육신肉身도 잘 관리할 수 있다!’

 

이런 저런 감사와 깨달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자문自問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님께 보답해야 되나? 라는 물음이요, 그대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첫째, 회개입니다.

무엇보다 회개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을 향한 방향전환의 회개의 삶입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전적 전환입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검소한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생태적 회개까지 포함되는 내적혁명의 회개입니다. 값싼 회개가 아니라 늘 깨어있는 삶을 전제로 하는 회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의 선포의 핵심도 회개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는 단 하나,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선언입니다. 두분 다 평생 깨어 회개의 걸맞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두분의 삶에 우리 삶을 비추어 보면 저절로 부끄러움과 더불어 회개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검박儉朴한 외모와 삶이 그대로 회개의 표징처럼 감동을 줍니다. 말그대로 쓰레기를 전혀 내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무공해의 삶입니다. 정말 생태적 회개의 모범입니다. 요즘은 1회용 쓰레기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는지 먹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가죽띠를 둘렸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추상적이거나 애매한 마음의 회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참으로 절박한 회개의 실천이 요구됩니다. 서로 연대하여 삶의 방식의 전환을 통해 구체적으로 회개의 증거를 보여줘야 비로소 진정성있는 회개입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회개의 빛나는 표지요 열매가 겸손입니다. 참 멋지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인품이 겸손입니다. 겸자무적謙者無敵입니다. 악마가 다 흉내낼 수 있어도 겸손만은 흉내내지 못합니다. 회개 은총의 열매가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참영성, 참성덕의 표지가, 잣대가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에 나오는 다음 두분의 아름다운 겸손의 장면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어 자청하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빛나는 겸손을 만납니다. 바로 이런 겸손한 삶이 우리의 회개를 촉발시켜 겸손에 이르게 합니다. 회개의 열매가 겸손이요 겸손의 삶이 이웃을 회개에로 이끕니다. 선순환 관계에 있는 회개와 겸손의 삶이 점차 아름다운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셋째, 자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얼굴이 자비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뿐 아니라 세례받아 예수님과 하나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느님을 닮은 임마누엘 예수님의 자비행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느님의 사랑하는, 마음에 드는 자녀는 누구이겠습니까? 두 말할 것이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바로 이것이 우리의 평생과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유일한 소원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마땅한 성소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영원한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축복을 선언하는 이들은 바로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운 하느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들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얼마나 고무적인 말씀인지요! 기쁨과 감격에 벅차 소리치는 하느님의 음성처럼 들립니다. 이어 묘사되는 우리가 닮아야 할 섬세하고 조용하고 자비로운 종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모두가 그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얼마나 아름답고 깊고 감동스런 모습인지요! 바로 이것이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일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힘을 내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사야 말씀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의로움으로 부르시고 우리 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모든 이들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의 눈을 뜨게 하고, 영적으로 갇힌 이들을 자기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자기 감방에서 풀어 주게 하십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넘치는 은총입니다. 해마다 주님 세례 축일 미사때 마다 불렀던 화답송 후렴 노래가 참 그리운 오늘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시편29,11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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