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있는 삶 -주님과 하나된 참나의 삶-2021.1.12.연중 제1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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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연중 제1주간 화요일                                                               히브2,5-12 마르1,21ㄴ-28

 

 

 

권위있는 삶

-주님과 하나된 참나의 삶-

 

 

 

참 권위는 좋을뿐더러 필수입니다. 권위주의는 배격해야하지만 참 권위는 장려해야 합니다. 불신불립不信不立, 신뢰를 잃으면 설 수 없듯이 권위를 잃어도 설 수 없습니다. 본인으로 보나 공동체로 보나 신뢰의 상실, 권위의 상실보다 큰 재앙은 없습니다. 한 번 잃은 신뢰나 권위의 회복은 불가능하다할 정도로 힘듭니다.

 

참다운 권위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노인은 많으나 어른은 없는 세상이라고,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는 세상이라고 개탄합니다.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권위가 아니라 아름드리 나무처럼 장시간에 걸쳐 한결같은 삶을 통해 형성되는 권위입니다.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 공든 탑이 무너지듯 순간적 실수로 무너질 수 있는 권위입니다.

 

주변에서 돈과 성性에 연루되어 허무하게 무너지는 권위를 무수히 보지 않습니까?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동료교사가 들려준 패가망신敗家亡身케하는 ‘세끝(혀끝, 손끝, 좃끝)’에 대한 설명에 공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으로 권위있는 어른들이, 지도자들이 많을수록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아주 예전 교대시절 ‘다운’ 이란 호를 가진 학장님이 생각납니다. 사람다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운이란 호를 선택했다 합니다.

 

부모다울 때, 어른다울 때, 스승다울 때, 제자 다울 때, 하느님의 자녀다울 때 비로소 권위있는 삶입니다. ‘사람답게’라는 말이 애매하다며 ‘하느님의 자녀답게’가 더 구체적이고 믿는 이들에 적합하다 강조하셨던, 지금은 고인이 된 옛 신학교 시절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문세화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권위하면 떠오르는 희랍어 ‘엑스오우시아(ex-ousia)’라는 권위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권위는 외부에서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존재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재산이 많아서, 지식이 많아서, 지위가 높아서, 외모가 출중해서, 의상이 화려해서 권위가 아니라 참으로 훌륭한 내적 인품과 기품에서 기인한 권위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바 권위있는 삶입니다. 권위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사랑의 권위, 겸손의 권위, 섬김의 권위, 진리의 권위입니다. 사랑을 많이 하고 많이 받을수록 분명해지는 정체성에 높아지는 자존감으로 인한 권위입니다. 결국은 권위의 원천이신 사랑이신, 진리이신, 섬김의 모범이신 하느님을 닮아갈 때 권위있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참 권위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과 일치될수록 참 권위있는 삶이요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으니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더러운 영의 고백 및 축출을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으로부터 기인됨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권위는 이런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의 일치의 관계와 더불어 함께 가는 권위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더러운 영의 축출을 통해 입증되는 예수님의 참 권위입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꾸짖음에 즉시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모두들 놀라 예수님의 권위를 고백합니다. 얼마나 통쾌한 장면에 예수님의 권위인지요!

“이게 어찌된 일이냐? 새롭고 놀라운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사실 참 권위에 저절로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사랑의 순종입니다. 복종하라, 순종하라 하지 않아도 참 권위에는 저절로 승복하여 자발적 사랑으로 복종합니다. 진리가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누구보다 참 권위이신 주님께, 주님의 진리 말씀에 순종할 때 참 자유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천진무구天眞無垢란 말도 있듯이 제1독서 시편의 고백대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의 진면목眞面目이 권위있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바로 시편 8장에서 묘사되는 존엄한 권위의 인간입니다. 바로 이런 권위의 원형을 보여 주는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의 고백이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 예수님을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주시는 예수님이나 거룩하게 된 우리들이나 모두 한 분 하느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도반이자 형제이신, 구원의 영도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되어 살 때 거룩한 삶에 참 권위의 회복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일치 관계가 깊어질수록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아 참 나의 실현이요 참 권위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참 권위의 거룩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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