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충실한 아름다운 삶 -경청, 성전인 몸, 스승- 2021.1.17.연중 제2주일 ​​​​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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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7.연중 제2주일 

사무상3,3ㄴ-10.19 1코린6,13ㄷ-15ㄱ.17-20 요한1,35-42

 

 

 

성소에 충실한 아름다운 삶

-경청, 성전인 몸, 스승-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불림받은 유일무이한 성소자들이요 하느님의 선물들입니다. 모두가 고유의 사명을 지니고 세상에 파견된 우리들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에 대한 답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참으로 불림받은 성소에 충실할 때 아름답고 멋진 삶입니다.

 

어떻게 성소에 충실한 아름다운 삶을 살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참으로 부르심에 충실한 아름다운 모범적 성소자들을 봅니다.

 

첫째, 늘 경청(傾聽,敬聽)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건한 자세입니다. 바로 제1독서 사무엘이 경청의 모범입니다. 겸손의 표현이, 깨어있음의 표현이 경청입니다. 기도의 출발점이, 소통의 대화와 기도의 출발점이 경청입니다. 제자로서의 참된 자세가 경청입니다. 잘 경청하기 위한 침묵이요, 경청이 생활화될 때 겸손이요 순종입니다.

 

어린 사무엘의 경청과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종의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잠들어 있지만 동시에 깨어있던 경청의 사람, 기도의 사람 사무엘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깨어 경청하다가 즉시 응답하는 사무엘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스승 엘리아의 부르심으로 착각한 사무엘과 스승 엘리의 대화가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여라.”

 

세 번째 주님의 부르심에 이어 네 번째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부르시자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요. “너 어디 있느냐?” 부르실 때 숨었던 아담과는 달리, 사무엘처럼 제자리에서 매 번 깨어 경청하다가 “예,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대답한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성소자의 삶이 겠는지요! 이어지는 말씀이 사무엘이 얼마나 한결같은 경청에 순종의 삶이 었는지 입증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화두같이 마음에 남는 말입니다. 불필요한 쓰레기 같은 말은 하지 않고 꼭 필요한 할말만 했다는 것이며 그대로 경청과 순종의 결과임을 봅니다. 사랑의 침묵에서 나온 생명과 빛의 참말만 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침묵과 경청의 사람, 사무엘과 함께 하시며 그를 지켜줬음이 분명합니다.

 

둘째, 늘 성전인 몸의 관리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몸이 있어야 기도도 하고 일도 하고, 몸이 있어야 찬미와 감사도 하고 경청도 하고 사랑도 합니다. 사실 이런 일을 하라 있는 하느님의 선물인 몸입니다. 몸의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니라 주님의 성전으로서 몸을 정결히 잘 관리하는 것은 기본적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각자 불림 받은 우리 성소자들은 주님의 성전인 제 몸을 정결하게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니 우리의 스승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새삼 몸의 신비, 몸의 의미, 몸의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형제 여러분,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불륜을 멀리 하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륜으로 무너지는 부부관계가, 가정이 많은지요. 나라든 가정이든 외적요인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부패와 성적문란과 타락, 그리고 내적 분열’의 내적 요인으로 망했습니다.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이기에 불륜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몸의 신비가 환히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령의 성전이 몸이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 주님의 성전인 우리 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소자들인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결론같은 다음 말씀이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성전인 우리 몸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셋째, 늘 삶의 중심에 스승을, 무엇보다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스승없는 제자는 없습니다. 오늘 날 교육현장의 비극이자 불행은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다는 것이며,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평생 보고 배워야 할 스승이, 어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장 과정의 필수 요인이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습니까? 학교에서의 스승만 아니라 부모도 이웃 어른도, 심지어 친구도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없는 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제자가 겸손하지 않으면 스승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겸손히 찾을 때 참 스승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교만으로 가려져 있어 참 스승을 발견하지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엘리와 사무엘, 요한과 그 제자들 참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 관계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참으로 천복을 지닌 스승이요 제자들입니다. 엘리 스승이, 요한 스승이 참 아름답습니다. 참 겸손한 스승들입니다. 참으로 진짜 스승인 주님을 스승으로 모실 때 진정한 스승입니다. 주님이자 스승이신 하느님께 안내하는 자가 겸손한 스승입니다.

 

보십시오. 엘리는 사무엘 제자를 신속히 지혜롭게 주님께 안내하지 않습니까? 집착함이 없이 떠나 보내는 모습이 참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잠시 주님께서 위탁한 제자일뿐 때가 되면 주님께 인도되어야 할 제자요 이제 그 때가 엘리에게 도래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스승 엘리는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고 친절히 사무엘에게 조언합니다.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여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마침내 엘리의 스승 역할은 여기서 끝났음을 봅니다. 이제부터 하느님이 사무엘의 스승이자 주님이 되었습니다. 질투심없이 제자 사무엘을 주님께 인도하는 집착없는 초연한 엘리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참 스승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에게서도 아름다운 스승의 모습을 봅니다. 때가 되자 집착함이 없이, 질투심 없이 참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께 자기 제자들을 인계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제자들에 집착한 요한이라면 절대 이 말씀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비운 겸손하고 훌륭한 스승 요한이요 그 스승에 그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스승 요한을 모시면서도 마음속 깊이에서는 참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찾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자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인간적으로보면 참 섭섭하고 배신감에 질투심에 마음도 착잡했을 것입니다만 역시 요한은 겸손하고 진실한 진리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자기 역할이 끝났을 때 참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께 애제자들을 고스란히 인계하고 고요히 물러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깨끗한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인지요!

 

이제부터 요한의 제자들은 참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경우와 흡사합니다. 요한 제자들에 대한 물음은 그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해당됩니다. 요한 제자들의 갈망을 한 눈에 알아채신 주님이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궁극으로 찾을 분은 참 스승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묵으며 보고 배우고 싶어하는 요한 제자들의 열망을 감지하신 주님은 “와서 보아라.” 흔쾌히 자기 삶의 자리에 이들을 초대합니다. 

 

“와서 보아라.”

 

화두같은 늘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 사는 우리들은 과연 “와서 보아라.” 형제자매들을 수도원에 자신있게 초대할 수 있을런지요. 좌우간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묵으면서 예수님의 모두를 보고 들으면서 예수님을 깊이 체험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안드레아는 주님과의 만남을 감격스럽게 고백하며 형 시몬을 주님께 인도하고 주님은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말씀하시며 시몬을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불림 받은 아름다운 성소자들입니다. 한결같이 성소에 충실하기 위해 경청의 자세로 사는 것과 성령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을 잘 관리하며 참 스승이신 주님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본질적이요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105세까지 사셨던, 많은 사막 수도승들의 스승이었던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실 때 참 스승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엘리와 요한, 안토니오 모두 참 스승이신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충실히 다리 역할을, 안내 역할을 했음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와서 보아라.” 당신의 초대에 응답한 우리 모두가 당신 부르심의 성소에 한결같이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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