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중심中心의 삶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 잘못 미치면 폐인廢人-2021.1.23.연중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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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연중 제2주간 토요일                                                         히브9,2-3.11-14 마르3,20-21

 

 

 

주님 중심中心의 삶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 잘못 미치면 폐인廢人-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오늘 한 번 잘 살아보라고 하느님 주시는 특별 선물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오늘 하루 어떻게 사시나 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루를 보람있게 마치고 홀가분하게 잠자리에 드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과연 하루중 몇%를 살까요? 

 

마찬가지 한생애를 보람있게 마치고 홀가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과연 평생 몇%의 삶을 살고 갈까요? 아마 하루를, 한평생을 보람있게 홀가분하게 마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를, 평생을 살고 나도 남는 것은 늘 아쉬움 뿐일 것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의 중요성입니다. 하루하루 오늘의 삶에, 얼마전 강조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는 얼마나 중요한지요!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방황이요 표류요 서서히 무질서한 삶으로 안팎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늘 날마다 새롭게 확인해야 할 것은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입니다.

 

문득 어제 읽은 기사가 생각납니다. 14년째 파킨스병을 앓으면서도 건재한 68세 서울대 명예교수의 고백입니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지요.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힘은 의학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에서 나옵니다.” 좋은 말씀이지만 이런 삶의 엘리트들, 사유의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사유와 더불어 올바른 믿음, 희망, 사랑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좋은 글은 늘 읽어도 새롭고 영감과 감동, 힘을 줍니다.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신 주님을 새롭게 확인케 합니다. 언젠가 들었을 세 편의 글을 다시 나눕니다. 제일 먼저 나눌 시는 구상 선생의 널리 회자되고 있는 ‘오늘’ 이란 시입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어지는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는 22년전 씌어진 제 자작시는 16년전 2004년, 로마에서 ‘베네딕도회—시토회-트라피스트회 세계 양성장 모임 교육’시 제가 한글로 읽고 함께 참석했던 대구 분도회 수녀님이 영역英譯하여 읽었던 시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세 번째 인용되는 시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좌우명 애송시 마지막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오늘 복음은 단 두절, 참 짧아서 좋습니다. 강론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 중심의 삶-제대로 미치면 성인, 잘못 미치면 폐인-’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금언입니다. 미쳐야 어느 경지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 삶의 방향, 삶의 의미를 잃어 세상의 무엇에 중독되어 미치면 괴물이 될 수 있고, 폐인이 될 수 있으며 주변에서 무수히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술맛, 밥맛, 일맛 등 자칫하면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일중독, 알콜중독, 성중독, 도박중독, 인터넷 중독, TV중독, 휴대폰 중독, 쇼핑중독 정말 끝없는 중독이요 세상에 참 많은 것이 중독환자일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움과 불안의 사람들이요 미치기 쉬운 사람들이요 무엇엔가 미쳐야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칠 광狂자가 들어가는 말마디가 미치기 쉬운 인간의 경향을 말해 줍니다. 이데오르기나 잘못된 신념에 중독된 광인, 광신, 광분, 광란, 광기, 광증 등, 지식유무에 상관없이 광신狂信에는 약이, 답이 없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허무하고 덧없는 광야 인생 살아낼 수 없어 제대로 미쳐 성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어 잘못 미쳐, 삶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자들도 속출하는 현실입니다. 그야말로 영적전투 치열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주님 중심의 삶을 시스템화한, 삶의 중독을 막아주는 기도와 공부와 일이 균형잡힌 수도원 일과표의 평생 영적훈련이 얼마나 결정적인 영적 안전망이 되어 주는지 감사하게 됩니다. 이런 일과표의 영적 안전망이 없으면 삶은 무질서해져 곧장 깊이없는 무기력, 무의미, 무감각, 무의욕이란 ‘삶의 늪’에 빠져들어 갖가지 중독으로 괴물이, 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정말 제대로 미친 것입니다. 

 

‘그러자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은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가르치고 먹이시고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시고 섬김의 활동에 여념이 없으신 예수님은 사랑에 제대로 미친 것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사도들, 성인들, 우리 수도자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친 사람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미친 것이지요. 세상 곳곳에도 제대로 미친 무명의 성인들 참 많을 것입니다. 이런 제대로 미친 주님의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는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님 중심의 재대로 미친 삶보다 영육으로 건강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 수도원을 찾는 이들이 간혹 묻기도 합니다. 언제나 화두같이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물음입니다. “수도원에서 무슨 맛으로, 재미로, 기쁨으로 살아갑니까?” 저는 지체없이 “찬미의 맛, 주님의 맛”으로 살아간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주님 맛 아니면 무슨 맛으로 평생 정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는 시편 말씀이 진리입니다.

 

참으로 주님 맛이 영원하며 늘 새롭고 무궁무진합니다. 늘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게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대로 우리가 매일 새계약의 제사인 미사를 통해 모시는 파스카의 예수님과의 일치가, 평생 우정이 참으로 우리를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이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친히 새계약의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시며,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 중심의 제대로 미친 경천애인의 삶을, 성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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