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奉獻의 축복 -봉헌 에찬禮讚- ​​2021.2.2.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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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화요일 주님 봉헌 축일                                                                 말라3,1-4 루카2,22-40

 

 

 

봉헌奉獻의 축복

-봉헌 에찬禮讚-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특별히 하느님께 봉헌된 우리 수도자들을 위한 축성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선물이요 매일매일이 봉헌 축일입니다.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응답이 봉헌이요, 봉헌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축복입니다. 아니 봉헌생활 자체가 축복입니다.

 

봉헌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말마디도 없을 것입니다. 봉헌의 사랑, 봉헌의 기쁨, 봉헌의 행복, 봉헌의 축복, 봉헌의 아름다움. 봉헌의 겸손, 봉헌의 지혜, 봉헌의 죽음등 끝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봉헌의 삶입니다. 이런 봉헌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이들이라면 결코 함부로 막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성전에서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를 드리는 우리의 삶은 그대로 봉헌 축복의 표현입니다. 가난, 정결, 순종, 정주등 모든 수행들 또한 봉헌의 표현입니다. 이런 열정과 순결의 봉헌 수행 생활을 통해 마음의 순수와 더불어 내외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이요 더욱 섬김의 삶에 깊이 투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중심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봉헌은 우리 삶의 의미이자 우리 삶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봉헌임을 깨닫습니다. 

 

어둠을 환히 밝히는 영롱한 봉헌초처럼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밝히는 봉헌생활의 빛입니다. 봉헌초보다 봉헌의 축복과 희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봉헌이 없는 삶,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하겠는지요! 봉헌의 삶이 참으로 우리 삶을 고귀하고 품위있게 합니다.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의 표현이 봉헌의 삶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봉헌이란 말마디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봉헌이란 말뜻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하느님을 몰라, 하느님을 믿지 못해 봉헌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대로 본능의 욕망따라 허무하게 인생 마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회개, 겸손, 봉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회개, 겸손, 봉헌의 삶에 날로 깊이 투신하게 됩니다. 봉헌의 삶을 통해 점차 또렷해 지는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우리의 신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는 예수님 부모의 평범하고 차분한 모습이 참 경건하고 아름답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참으로 봉헌의 삶에 충실했던 요셉 마리아 부부임을 깨닫게 됩니다. 평생 의롭고 독실하게 살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 시메온이야 말로 봉헌생활의 모범입니다. 마침내 말라기의 예언은 오늘 복음에서 실현됨을 봅니다.

 

“보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마침내 봉헌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던 시메온이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니 그대로 봉헌의 축복입니다. 시메온에 이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에서 떠나는 일 없이 단식과 기도로 주님을 섬기며 봉헌생활에 항구하던 한나도 넘치는 축복을 받습니다. 말그대로 봉헌의 축복입니다.

 

시메온의 아름다운 고백의 찬가는 우리가 끝기도때마다 부르고 잠자리에 드는 찬가입니다. 이 시메온 찬가의 은총이 참 평화로운 단잠을 자게 합니다. 비단 끝기도뿐 아니라 미사때 주님을 만나고 파견될 때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어 시메온은 예수님 부모를 축복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예언이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 축복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고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처럼 축복과 더불어 고통도 많이 받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봉헌생활 중에 겪는 이런저런 병으로 인한 고통들 봉헌 축복과 더불어 잘 받아들여야 함을 배웁니다. 말 그대로 고통의 신비입니다. 사실 주변에서 노후에 극심한 병고중 임종을 맞이한 신자분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평소 봉헌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다 보면 주님은 이런 고통도 잘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건강이 자랑이 아니라 고통을 잘 받아들여 견뎌냄이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욥의 감동적 고백이 생각납니다.

 

"알몸에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1,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헌의 축복이 고통을 압도합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봉헌의 축복-봉헌 예찬-”으로 정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아기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봉헌 축복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보여줍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아기 예수님뿐 아니라 봉헌의 삶에 충실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영육의 건강과 지혜, 주님의 총애를 상징하며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주님 봉헌 축일이자 우리 봉헌 축일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크고 작은 다양한 사랑의 봉헌들로 이루어진 삶입니다. 매일 한결같은 일상화된 봉헌의 삶이 마침내 마지막 아름다운 봉헌의 죽음으로 끝을 맺게 할 것입니다. 

 

끝으로 성공적인 봉헌생활을 위해 참 좋은 명약名藥, 말씀 처방전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 때 말그대로 봉헌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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