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여정 -시련, 인내, 겸손, 배움-2021.2.3.연중 제4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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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3.연중 제4주간 수요일                                                            히브12,4-7.11-15 마르6,1-6

 

 

 

배움의 여정

-시련, 인내, 겸손, 배움-

 

 

 

제 좋아하는 순수한 우리말중 하나가 '배움'입니다. 분도수도원은 '주님을 섬기는 학원'이라 정의하는데 '학원'보다는 순우리말 '배움터'라는 말을 더 좋아하며 더불어 '샘터', '쉼터'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참 아름답고 정다운 순우리말입니다. 사실 마산 트라피스트 수녀원 입구 정문에도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란 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배움터인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평생 학인인 우리 분도수도자들입니다. 

 

또 잊지 못할 좋아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책 제목이자 분도수도자들의 특징을 지적한 말입니다. “배움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갈망(The love of learning and the desire of God)”입니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배움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동서고금 모든 구도자들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대신 진리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배움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갈망, 바로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분이 공자요 한국 5천년사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일 것입니다.

 

공자가 특히 좋아하는 말마디가 호학好學입니다. 곳곳에서 호학이라는 말마디가 나오는데 세상 누구도 자기보다 호학하는,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하곤 합니다. 이런 진리에 대한,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배움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이 있어 한결같은 삶에 영원한 청춘의 영혼이겠습니다. 아주 예전에 불암산을 보며 써놓은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흘러도 봄마다 신록의 생명 가득한 산, 꿈꾸는 산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세월도 비켜가나 보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은 산이다.”-2006

 

어제 저녁식탁에서 나눈 재미있는 화제거리가 생각납니다. 왜관수도공동체에는 여러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하기에 여기 요셉수도공동체는 예수파, 요셉파, 베데딕도파가 있을뿐이라 하며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흔히 대학생들에게는 학구파, 인생파, 정의파. 낭만파. 출세파 다섯이 있다 하는데 우리 분도 수도자들은 ‘예수파’에다 배움을 사랑하는 ‘학구파’ 하나만 있다함이 맞을 것입니다. 얼마전 헌신적으로 예수성심자매회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분에게 전한 기분 좋은 덕담도 생각납니다.

 

“영원한 청춘이예요! 언제나 멋지고 예뻐요! 늘 이렇게 사세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참으로 영원한 청춘의 한결같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죽을 때까지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며 충실하는 것뿐이겠습니다.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배움의 열정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공부와 배움의 대상이요 삶의 스승입니다. 그러니 개방과 겸손의 믿음은 배움의 여정에 필수 조건임을 깨닫습니다. 마음을 열고 겸손히 배우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배움 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일상의 모든 시련을 인내하며 배움의 계기로 삼으라는 오늘 히브리서 저자의 충고와 격려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지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불신의 고향 사람들은 그대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부정적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에 놀랄뿐 마음을 열지 않는, 참으로 겸손한 배움의 자세가 결여된 사람들입니다. 하여 예수님은 이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랐다 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선입견과 편견의 불신으로 인해 주님을 만나 배울수 있는, 치유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얼마나 많이 잃었겠는지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

 

예언자의 운명이요, 인간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 회개를 촉구하는 충격요법의 화두말씀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즉 선입견과 편견으로 닫힌 마음을 부단히 열고 겸손히 배우는 믿음의 자세를 지니라는 훈육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에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새롭게 배움의 여정에 오르라 격려하십니다.

 

“맥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 가십시오. 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히브12,12-15ㄱ)

 

참 적절하고 고마운 주님의 격려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당신의 평생학인인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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