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으신 하느님을 닮읍시다 -사랑과 지혜-2021.2.9.연중 제5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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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9.연중 제5주간 화요일                                                          창세1,20-2,4ㄱ  마르7,1-13

 

 

 

참 좋으신 하느님을 닮읍시다

-사랑과 지혜-

 

 

 

어제에 이어 오늘 제1독서 창세기의 첫장, ‘천지창조’는 늘 읽어도 감동입니다. 참 아름다운 대 서사시 같고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이런 멋지고 좋으신 창조의 하느님을 닮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욕심도 듭니다.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 좋습니다. 개신교 형제들이 즐겨 부르는 성가 ‘참 아름다워라’ 유투브를 통해 들으니 더욱 실감났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천지창조’에 관한 독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성가입니다. 2절 마지막 ‘하나님’이란 말마디를 대하니 김수환 추기경님의 재치있는 유머에 감탄한 적이 생각납니다. 가수 인순이가 추기경님께 ‘하나님’과 ‘하느님’차이에 대해 물었다 합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가끔 ‘하나님’이라고 불러---”

짧은 한마디로 더 이상 논란을 중단시킨 진솔하고 겸손한, 재치있는 유머가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지요.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참으로 하느님을 많이 닮은 추기경님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참 멋지고 좋으신 하느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찬미와 감사의 삶과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깨어 온맘과 온몸으로 바치는 하느님 사랑의 찬미가, 감탄의 찬미가. 하느님 사랑의 감사가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하여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분도회 수도승들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인터뷰 기사중 “감사는 내 삶의 힘, 바다의 마음으로 주님 찬미하며 살 것”이라는 굵은 활자의 제목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감사와 찬미가 진짜 삶의 힘이요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어제에 이은 오늘 제1독서 창세기 ‘천지창조’ 내용 속속들이 스며 배어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 생명과 빛입니다. 지옥에는 탐욕처럼 한계가, 경계가 없다 합니다. 혼돈과 무질서의 한계없는 세상을 균형과 조화, 질서의 사랑으로 경계 지으시는 지혜로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정성과 사랑을 다해 하나하나마다 ‘제 종류’대로 온갖 동식물을 창조하십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보시며 동시에 하나하나의 디테일에도 강하십니다.

 

후렴처럼 참 기분좋게 반복되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말마디 마다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대로 진선미眞善美로 표현되는 참 사랑입니다. 마지막 창조가 끝낸후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말마디 안에 만족해 하시는 하느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천지창조의 활동을 끝내신후 복된 안식을 취하시는 하느님처럼 하루의 끝도, 인생 마지막의 끝도 이런 복된 안식의 사랑으로 끝맺을 수 있다면 이보다 큰 축복도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하루하루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창조의 절정은 인간의 창조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참 공존공생의 육식이 없고 채식만의 평화롭고 조화된 세상이요 세상 피조물의 사랑의 관리를 위임 받은 존엄한 품위의 사람들입니다. 끝없는 탐욕과 과도한 육식으로 고갈되어 가고 쓰레기장이 되어가는 지구요 마침내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입니다. 인간 무지와 탐욕의 자업자득의 결과입니다. 

 

순전히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그 책임을 망각한 업보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람 사랑에 이어 필히 피조물 사랑도 더해져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심이, 인간 중심에서 창조의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이 절박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본연의 우리 모습을 회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때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그 모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는 첩경은 예수님을 닮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눈, 하느님의 눈, 사랑의 눈으로 보면 당장 드러나는 우선순위의 분별입니다. 결코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일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조상들의 전통에 앞서는 분별의 잣대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그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하느님 마음을 반영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참으로 궁극의 분별의 잣대는 인간의 규범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에 많이 가까워진 이해인 수녀의 다음 인터뷰 대목입니다.

 

-“수도생활 50년을 하고 난 심정에 대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요?-

 “제 개인의 취향과 개성같은 것들이 두루뭉술해지더라고요. 보편적이라고 할까요. 인간관과 종교관 등 모두를 바라보는 시선이 순해지더군요.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미움이 없어지고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비심이랄까요? 그런 것을 물빛의 평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평상심’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매사에 흥분될 일이 거의 없고 모든 것에서 담백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오래전 저의 자작시입니다.

-“기쁨에 들뜨지 말고 슬픔에 빠지지 말고 평온히 바라보라

기쁨도 슬픔도 구름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1997.8.16

 

물빛의 평화, 담백한 사랑, 있는 그대로 보는 예수님의 시선이, 하느님의 시선이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품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물빛의 평화를, 담백하고 순수한 본질직시의 사랑을 선물하십니다. 끝으로 간절한 소망이 담긴 옛 제 자작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그리움이 깊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되었다

영원한 하늘이 되었다 

침묵의 하늘이 되었다

영원히 바라보는 눈빛이 되었다

하느님의 눈이 되었다

사랑이 되었다 

나는“-1997.11.27.-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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