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 -경청敬聽, 환대歡待, 우정友情-2021.2.10.수요일 성녀 스콜라 스티카 동정(480-543)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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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0.수요일 성녀 스콜라 스티카 동정(480-543) 축일 

호세2,16.21-22 루카10.38-42

 

 

 

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

-경청敬聽, 환대歡待, 우정友情-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듯 생각되는, 영원히 우리 삶의 좌표가, 위로와 힘이 되어 주는 가톨릭 교회의 보물인 성인들입니다.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면서 주님 중심의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성인들입니다. 삶의 중심이자 방향인 주님을 잊어, 잃어 무지와 허무의 어둠 중에 방황하는, 길잃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절박한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참 매력적인 성녀 스콜라 스티카 동정 축일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쌍둥이 누이동생으로 오빠와 여동생의 우정이 참 신비롭고 전설적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와 같은 영적 우정을 연상케 합니다.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 33장과 34장에는 베네딕도와 스콜라 스티가 남매의 경청과 환대, 그리고 영적 우정이 참 아름답게 녹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라틴어로 하다가 지금은 우리말로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일화를 바탕한 복음전의 다음 부속가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영원 평화 안식이 성녀 스콜라 스티카에 담뿍 안겨졌도다

휴식소에 들어가 사랑하던 정배와 포근한 정 누리니

사랑하는 그이를 만나 얼마나 그리워해 열심히 찾았는고

 

눈물로써 하늘을 움직여 비오게해 오빠 맘 누그렸네

숭고하신 말씀이 천당복락에 대한 성베네딕도 말씀

갈망과 동경이며 동신이신 정배인 그를 일깨우셨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신부여 면류관을 받으라

백합중에서 살며 가득히 찬 행복속 맘껏 쉬고 취하리

강가에서 나아와 천당궁궐로 가는 동녀중의 비둘기

아름다운 향기로 우리 인도하여서 영생얻게 하소서”-

참 깊고 아름다운 내용이라 전문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두 남매 성인성녀간의 영적 우정에 앞서 두분의 주님과의 우정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영적 우정과 함께 가는 형제자매 도반과의 깨끗하고 아름답고 깊은 영적 우정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중심으로 경청과 환대, 우정의 삶을 살았던 성인성녀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과 마리아가 그 영적 우정의 모범입니다. 말씀의 경청으로 주님을 환대하는 사랑과 지혜를 겸비한 관상가 마리아입니다. 제 좋을대로의 환대가 아니라 영원한 스승이자 도반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의 환대입니다. 마르타의 환대는 이점에서 부족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 우선적인 것이 음식 접대가 아닌 말씀의 경청이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데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에 분주합니다. 이어지는 마르타와 주님과의 대화가 우리에겐 깊은 깨우침이 됩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경청의 환대와 우정이 참으로 본질적임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마르타의 항의에 주님은 애정을 가득 담아 마르타의 부족을 일깨우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타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로 잡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상 필요한 좋은 몫은 말씀의 경청, 경청의 환대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선이고 밥(빵)은 그 다음입니다. 기도가 우선이고 일은 그 다음입니다. 영혼이 우선이고 육신은 그 다음입니다. 하느님이 우선이고 돈은 그 다음입니다. 하여 미사구조도 말씀 전례후에 성찬전례이고 수도원의 일과표 구조도 말씀의 공동전례기도시간후에 식사시간입니다. 

 

복음에서 마르타의 반응은 없지만 내적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우정에 경청의 환대가 결정적임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말씀의 경청과 더불어 주님과의 우정은 물론 형제자매들과의 순수한 사랑의 우정도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뿐 아니라 주 예수님 중심의 수도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수도형제들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영원한 스승이자 도반이신 주님과 우정과 함께 가는 형제 도반들과의 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의 경청, 경청의 환대가 수도공동체삶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주님과의 관계를 제1독서에서 호세아가 상징적으로 참 깊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나 아내가 상징하는 바, 이스라엘 백성이요 광여인생여정중인 우리 각자입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자 연인이자 도반이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늘 한결같이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로써 우리를 대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이시요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 앎의 관계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깊어지는 일치의 영적 우정 관계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의미이자 전부임을 깨닫습니다. 삶의 허무와 무지, 무의미에 대한 답도 주님과의 영적 우정관계 하나뿐입니다. 

 

주님과 영적 우정 관계가 빠지면 평생을 살아도 헛된 유령같은 삶일 수 있습니다. 실제 무지의 탐욕으로 온갖 세상적인 것들에 중독되어 자기를 잃고 괴물이, 폐인이, 헛것이 되어 유령같이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중 말씀의 경청으로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와의 영적 우정은 물론 형제자매들과의 영적 우정도 날로 깊이해 주시어 ‘진짜’ 살게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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