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미사가 답이다-2021.2.13.연중 제5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2.13.연중 제5주간 토요일                                                                 창세3,9-24 마르8,1-10

 

 

 

죄와 벌

-미사가 답이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 3장의 내용이 참 방대하고 깊습니다. 소제목이 ‘인간의 죄와 벌’이었고, 즉시 예전 러시아의 세계적 문호 도스토에프스키의 감명깊게 읽었던 ‘죄와 벌’이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이어 연상된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열지 말라는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재악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참 의미심장한 신화입니다.

 

흡사 오늘 창세기의 상황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죄와 벌로 인한 혼란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재앙과 질병, 죄악으로 넘치는 현 세상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둑이 터져 홍수로 범람하는 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같기도 합니다. 여기서 유래된 영국의 존 밀턴의 실낙원의 소설인지도 모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이란 죄의 결과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낙원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죄에 따른 벌이, 휴유증이 얼마나 큰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자업자득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자초한 실낙원의 현실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아담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예, 저 여기 있습니다!” 언제나 대답할 수 있도록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을 다해 살 수 있을 때 바로 거기가 지상 낙원입니다. 

 

불순종의 죄를 지은 아담은 죄를 고백했어야 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두려워 또 나체의 몸이 부끄러워 숨었습니다. 하느님과 관상의 친교 관계는 파괴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불행의 비극은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이 연쇄적으로 이어집니다. 모두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아담은 하느님과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마침내 아담의 하느님과의 관계, 하와와의 관계의 파괴에 이어 자연과의 관계도 파괴되니 인생 고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오늘의 현실같기도 합니다.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결국 산다는 것은 죄에 대한 보속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가죽옷을 지어 부부에게 입혀 줍니다. 가죽옷의 사실에서 이미 동물과 관계도 파괴되었음을 봅니다. 마지막 에덴동산에서 축출장면이 실낙원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였다.’

 

망연자실! 하느님의 실의에 빠진 아픈 마음이 눈에 선합니다. 실낙원이 복락원이 되기까지, 즉 파스카의 예수님이 나타나기 까지 하느님의 끝없는 인내의 기다림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침내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출현으로 실낙원은 복낙원으로 변모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바로 복낙원의 에덴동산이요 예수님 친히 생명나무가 되십니다.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 에덴동산에 이르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교회의 평생성사인 고백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바로 창세기 실낙원에 대한 답이, 결정적 치유제가 예수님의 성사입니다.

 

오늘 복음은 4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탈출기에 나오는 광야에서의 만나 기적을 연상케 합니다. 이어 교회의 미사를 통해 계속 실현되는 에덴동산의 복락원입니다.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신 똑같은 주님은 오늘도 사제의 손을 통해 당신 성체를 나눠주십니다. 저절로 영성체송 시편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시편107,8-9)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령이었다.’(마르8,8-9ㄱ). 일곱 개의 빵, 일곱 개의 바구니, 사천 명,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의 충만한 축복을 상징합니다. 예수님 생명나무의 열매가 바로 우리의 식이 되고 약이 되는 사랑의 성체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인 성체의 축복 은총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광야 세상에서 에덴동산의 복낙원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의 예수님의 깔끔하신 처신이 참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모두 돌려 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십니다. 업적이나 성과의 결과에, 대중의 환호에 집착 연연하지 않고 노자의 말씀대로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자취없이 초연히 떠나는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새삼 우리 삶은 하느님 계신 본향집을 향한 끊임없는 ‘떠남의 순례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천상 본향의 기쁨과 행복을 미리 맛보게 하시어, 결코 죄를 짓지 않고, 순결한 사랑의 몸과 맘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에덴동산의 복낙원, 천국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아멘.

 

 

 


Articles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