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신 주님과 일치의 여정 -기도, 회개, 겸손(자기인식)-2021.3.9.사순 제3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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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9.사순 제3주간 화요일                                                          다니3,25.34-43 마태18,21-35

 

 

 

자비하신 주님과 일치의 여정

-기도, 회개, 겸손(자기인식)-

 

 

 

교황님이 3박4일 이라크 사목 방문 여정(3.5-8)을 무사히 마치고 로마로 귀환하셨습니다. 교황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말씀이 감동이요 영감입니다. 떠나실 때와 똑같이 로마 성 마리아 성전 경당에서 성모님 이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사귀환을 감사하시는 모습이 효자孝子 아드님을 연상케 하니 이 또한 감동이요 영감입니다.

 

“애덕, 사랑과 형제애는 앞으로의 길이다(Charity, love and fraternity is the way forward).”

 

비행기내에서 귀환도중 언론인들과의 풍부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 또한 감동이요 영감이었습니다. 더욱 강조되어야할 인종을 초월한 전인류 가족의 형제애입니다. 지난 이라크에서의 주일 강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세계는 힘이 아닌 산상수훈에 의해 변화될 것이다(World is changed by Beatitudes, not power).”

 

제하의 강론중 특히 감명깊었던 내용은 “사랑은 인내다(Love is patient:1코린13,4ㄱ)” 제하의 인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교황님의 인내에 관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무엇보다 성서는 계속 똑같은 죄에 떨어지는 불신의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인내를 말한다. 그렇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시고 용서하시며 새롭게 시작하신다. 매번 새롭게 시작하시는 이런 인내는 사랑의 첫째번 자질이다. 그 인내는 결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항복하지도 않고 언제나 창조적으로 머물고 악에는 선으로 응답한다. 이런 하느님의 증거는 수동적이거나 숙명적이 아니며 언제나 희망적이다.

역경중에는 언제나 두 유혹이 있다. 하나는 도주하거나 거리를 두고 냉담하는 것, 또 하나는 분노와 힘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게세마니에서 많은 제자들이 도주하고 베드로가 칼을 빼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도주나 칼은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 않았다. 반면 예수님은 사랑의 겸허한 힘으로, 그분의 인내의 증거로 역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이렇게 하도록 불림받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는 방법이다.“

 

하느님의 인내는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직결됩니다. 말그대로 인내의 사랑입니다. 새삼 인내는 침묵이요 기도요 겸손이요 사랑이요 믿음이요 희망이요 영성생활의 모두임을 깨닫게 되며 어제 많은 시간 묵상했습니다. 어제 여러분들과 나눈 예수님 성심상아래 기도하는 모습의 바위 형상 사진에 대한 나눔입니다.

 

-“여전히 기도하다가 바위가 된 모습같지요?”

 

“정말 신기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늘 절규하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그렇네요!”

“예수성심상 앞에서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청을 바위가 알아들었나 봅니다.ㅎㅎ”

“세상에 기도해 드려야 할 사람이 많다는 표징이 아닐까 합니다.^^^^”-

 

형제자매들도 적극 공감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바위가 된 사람’, 이 또한 기도는 인내요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흡사 기도하다가 인내와 사랑의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참으로 항구히 기도할 때 자비하신 하느님, 인내하시는 하느님을 닮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숨쉬듯이, 밥먹듯이 용서하라는, 하느님처럼 무한히 인내하며 자비로우라는 말씀입니다. 우선 내가 먼저 살기위해서라도 용서는 필수입니다. 이어지는 ‘매정한 종의 비유’에서 참으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임금에 대한 만 탈렌트 탕감받은 종의 처사는 얼마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는 지요! 

 

만탈렌트 탕감받은 자가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대한 태도가 너무 모질고 잔혹합니다. 만탈렌트 탕감 받고도 이를 까맣게 잊고 몰인정하게 대하는 모습은 그대로 우리의 무자비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말 자기를, 얼마나 하느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지를 모르는 참 무지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결론 같은 엄중한 말씀이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 강론 제목은 ‘자비하신 주님과 일치의 여정-기도, 회개, 겸손(자기인식)-’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자비하신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대한 답을 제1독서 다니엘서가 줍니다. 화덕속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기도하는 아자르야의 모습은 물론 기도내용도 구구절절 감동이요 영감이 됩니다. 

 

참 아름답고 진실하고 깊은 기도입니다. 회개의 기도의 전범을 보여줍니다. 이런 항구하고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통해 비로소 무지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자비하신 주님을 닮게 되고 참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와 회개의 열매가 바로 자비와 지혜의 겸손이요, 이런 겸손이 바로 자기인식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참나를 알게되는 겸손입니다. 자비와 지혜를 함축한 겸손입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답은 겸손임을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구구절절 감동스런 기도라 어느 하나 생략하기가 아깝지만, 더 감동적인 마지막 부분만 인용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십니다.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사순시기 주님께서 주시는 참 좋은 기도문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기도와 회개의 여정, 자비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함으로 겸손하시고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 ‘참나(眞我)’가 되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4-5ㄱ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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