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여정 -하느님 공부, 삶의 공부-2021.3.11.사순 제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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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1.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예레7,23-28 루카11,14-23

 

 

 

배움의 여정

-하느님 공부, 삶의 공부-

 

 

 

요즘 전개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갖는 느낌은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인간의 부정적 본질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고귀한 품위의 아름다운 인간이지만 동시에 참으로 끝없는 탐욕의 추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사상누각砂上樓閣의 오늘 날의 문명처럼, 참으로 스승을, 중심을, 방향을, 전통을, 영혼을, 길을 잃고 욕망의 사람들만 득실 거리는 혼란의 디지털 시대같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잃은 시대같습니다. 참으로 결정적 마음의 병이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無知;ignorance)입니다. 무지로부터 시작된 마음의 병은 하느님을 잊은 망각, 마음의 완고함, 눈멈, 오염, 무분별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이나 제1독서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이들 역시 무지에 눈먼 완고한 사람들이요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인간의 부정적 본질같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 분도수도자의 특성을 요약한 참 제가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비단 분도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본질적 열망을 대변하는 말마디로 이 또한 인간의 긍정적 본질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위대한 생태사상가인 김종철 선생을 잃었고, 올해는 위대한 통일운동가인 백기완 선생을 잃었습니다. 어제는 제가 애독하는 녹색평론에서 김종철 선생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읽었고 나누고 싶습니다. 

 

2015년.10월 25일 법정 스님이 창건한 길상사의 ‘맑고 향기롭게’의 일요특강 “공희供犧, 생태문명의 원리’ 주제하에 시공을 초월하여 실감나게 전달되는 내용중 쌀과 쌀밥에 관한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기를 제물로 하여 바친다’는 불교 용어인 공양供養의 원래 뜻인 공희供犧는 그대로 우리의 성체성사의 핵심을 표현하는 말마디입니다. 

 

공희供犧의 표현이 주님의 성체요, 우리 또한 공희가 되어 복음적 섬김의 삶을 살아갑니다. 잡곡밥이 좋다 하지만, 여전히 쌀밥에 끌립니다. 어제는 모처럼 저녁 쌀밥에 나중에는 반찬없이 꼭꼭 음미하며 씹어 먹었습니다만 역시 뒷맛이 좋았습니다.

 

“지금 우리 쌀이 왜 남아돌아가고 있습니까? 쌀을 안 먹고 엉뚱한 것 많이 먹기 때문이잖아요. 예전에 이렇게 밀가루를 많이 먹었습니까?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었습니까? 지금 쌀을 안 먹잖습니까. 밥을 안 먹잖아요.

 

쌀이라는 것은 밀하고 달라서, 밀 먹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서 영양 균형을 맞춰야 하지만 쌀은 완전식품이라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품성에도 관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사람들보다 동양 사람들이 대체로 정서가 좀 정적이잖아요. 저는 이것이 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디도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명상생활을 하는 동안에 채식만 하다가 우유를 몇 잔 먹으니까 자꾸 잡념이 생기고 마음이 가라앉질 않더라는 거예요.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이렇게 음식이 굉장히 중요해요. 음식이 우리 세포를 만듭니다. 우리를 만들어요.

 

저는 아이들이 된장도 안 먹고 김치도 안 먹고 쌀도 안 먹고 가공식품과 고기만 먹다가 이상하게 되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집집마다 요즘 아이들이 다 자기 부모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잖아요, 그렇지만 등산이라도 같이 해보면 굉장히 약해요. 지구력도 없고 강인하지 못해요.

 

저는 밥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 밥을 지키기 위해서 농민들이 어떻게 고생하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비가 땀과 결합헤서 종합 예술품으로서 쌀이 나오는 거잖아요. 

 

일찍이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알면 만사를 안다했는데, 하나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압축하고 있는 말이 공양인 거예요. 아, 하늘과 농부와 별과 바람과 비가 결합해서 하나의 제물이 되어서 나를 모시는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밥 먹는 시간이 한없이 거룩해집니다. 쌀 한 알 씹으면 희열이 생깁니다. 나한테 희생되겠다고 온 거잖아요.

 

해월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그랬습니다. 만물의 관계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한 ‘하늘’은 모든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하늘의 도움없이는, 하늘의 정기없이는 어떤 생명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없어요.“

 

그대로 성체성사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하늘인 우리가 하늘이신 성체의 주님을 모시는 미사시간이 아닙니까?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식사하는 시간은 참으로 겸허와 감사로 하늘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우리 또한 하늘이 되는 거룩한 미사시간의 연장인 겁니다. 그러니 하늘을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들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이런 밥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합니다. 정말 심각한 병은 육신의 잡다한 병에 앞선 마음의 병은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의 병, 완고함의 병, 탐욕의 병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끈질기고 심각한 무지의 바이러스입니다. 이런 마음의 병들이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입니다. 영육의 모든 잡다한 병들의 뿌리에는 하느님을 모르는, 하느님을 잊은 무지의 병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그리도 많은 병에 죄요, 병자와 죄인들 세상인것입니다. 병자들과 죄인들로 차고 넘치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참으로 영육의 건강에 하느님을 아는 하느님 평생 공부가 얼마나 결정적이요 본질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자승자박自繩自縛 제꾀에 제가 넘어간, 오늘날 영리한 듯 하지만 참 어리석은 무지의 현대인들입니다. 보십시오, 예레미아가 탄식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대로 오늘의 부정적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여전히 반복되는 오늘날의 인간현실이 아닙니까!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광야인생 여정중 세 유형의 인간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성인, 하느님을 떠난 폐인이나 괴물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지만 잘못 중독되거나 미치면 폐인이요 괴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세요, 무지의 완고함에 눈먼 군중들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기적을 몰라보고 곡해하여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중상 모략하며, 예수님 자체가 하늘의 표징인데 한 술 더 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일갈이 이들을 잠잠케 합니다. 예나 이제나 예수님이야 말로 모든 마귀魔鬼와 악귀惡鬼들을 제압하는 가장 힘센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양자택일 둘 중 하나입니다. 주님 편에 서서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 것인가, 또는 주님 편에 서지 않고 주님과 떨어져 무지의 눈먼 어리석은 삶을 살 것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새삼 우리 삶의 여정은 평생 배움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아는 공부와 우리를 알아가는 삶의 공부가 평생공부임을 깨닫습니다. 

 

매일미사보다 평생 하느님 공부와 삶의 공부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공부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육의 건강을 선물하시며 배움의 여정에 한결같이 겸손하고 검소하고 근면한 평생 학인으로 살게 하십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시편95,7ㄹ과 8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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