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2021.3.15.사순 제4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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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5.사순 제4주간 월요일                                                     이사65,17-21 요한4,43-54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바로 이것이 정주생활의 은총이요 깨달음입니다. 안주가 아닌 늘 새로운 시작의 정주의 삶입니다.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같은 안주의 삶이 아니라 내적으로 하느님 향해 끊임없이 새롭게 맑게 흐르는 강물같은 정주의 삶입니다. 이를 요약한 ‘산과 강’이라는 시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못 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못 살면 언제 어디서도 못 삽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살아야 죽어서도 하늘 나라를 삽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디서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 에버랜드ever land는 용인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진정 에버랜드입니다. 33년 동안 수도사제로 요셉 수도원에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처럼 정주하며 매일미사에 강론을 하다 보니 하늘 아래 새것이 없음을 늘 새롭게 깨닫습니다. 늘 반복의 삶입니다. 사실 세상에 반복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제 강론도 잘 들여다보면 반복입니다. 반복이지만 그냥 기계적인 타성적인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깨달음의 반복, 거룩한 반복입니다. 외관상 단조로운 반복 같지만 내적으로는 날로 깊어지는,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내적 여정의 삶입니다. 

 

결코 생각없이 트랙을 도는 트랙경기같은 삶이 아닙니다. 아니 생각없이 트랙 10바퀴 도나 50바퀴 도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요. 많이 사는 ‘삶의 양’이 아니라 하루하루 깨어 사랑하며 사는 ‘삶의 질’이 삶의 핵심임을 깨닫습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경구警句입니다. 제대로 깨어 산다면 나이 70에 죽어 70에 묻혀야 할 것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중의 영원한 현역의 수도자들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결론이 정주의 수도자들 누구나 공감하는 제 좌우명 자작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입니다. 30년 이상 한 곳에서 수도사제로 살며 강론하다 보니 참 자주 많이 인용했던 예들이 생각납니다.

 

1.수도원에서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하느님 찾는 맛, 하느님 찬미하는 맛, 하느님 맛, 기도 맛, 말씀 맛으로 살아갑니다.”

 

2.그 긴 세월 수도원에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하며 늘 새롭게 시작하여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3.아 여기 수도원이 천국입니다.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하느님과의 관계, 너와 나의 관계, 나와 나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관계에 따라 천국같은 환경에서 지옥을, 지옥같은 환경에서 천국을 살 수 있습니다. 

 

환경을 바꿀 것이 아니라 늘 마음을 새롭게 바꿔야 합니다. 마음이 새로우면 환경도 늘 새롭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생생한 짧은 영어 말마디입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네 정도 만큼 세상도 그러하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느 수도자의 물음에 ‘훌륭한 수도자가 되라’ 답했다는 마더 데레사 성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4.삶은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사랑하면 선물이지만 사랑이 식으면 짐입니다.”

 

이밖에도 무수합니다면 우선 생각나는 예를 들었습니다.

 

5.제목은 모르지만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흥얼흥얼 즐겨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방후 유행했다는 노래 3절입니다.

 

“낙원이 어디냐고 묻지 말게나

심으면 웃는 얼굴 어화 낙원이로구나

내 가슴엔 비가 개어 하늘 푸르고

내 가슴엔 언제나 봄바람 분다

어화 어화디야 일터로 가자

이 나라의 주인이 너와 나로 구나”

 

6.자주 즐겨 되뇌는 행복기도 한 연도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참 장황하게 예를 많이도 들었습니다. 결국 이에 답은 기도뿐입니다. 간절하고 절실한 한결같은 기도뿐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오늘 지금 여기 깨어 하늘 나라를 살게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일하심을, 모두가 하느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우연은 없고 모두가 하느님 섭리의 손길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나중 남는 두 얼굴도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중 하나입니다. 기도와 삶이 함께 가듯 기도와 믿음도 함께 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이사야 예언자나 우리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을 살았던 분들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고무적인 말씀이 우리 가슴을 설렘의 기쁨으로 뛰게 합니다. 기도하는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새 하늘과 새땅입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니 하느님께서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선물에 우리의 은혜로운 이름은 ‘즐거움’이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우리가 하느님의 즐거움이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하느님 꿈이 정말 좋습니다. 하느님의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 꿈이 실현됨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 꿈의 현실화인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꿈이 예수님을 통해 현실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새로운 창조의 구원입니다. 한 번으로 끝난 창조가 아니라 매일 평생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치유의 구원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왕실 관리는 간절한 기도와 믿음 덕분에 주님을 만나 살아난 아들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두 번 째 창조의 표징입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간에 그의 아들을 살아났고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합니다. 왕실 관리의 간절한 기도와 믿음, 그리고 은총의 말씀과의 만남으로 이뤄진 치유의 구원이자 새로운 창조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늘 새롭게 창조하시며 치유의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화답송 후렴, 주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시편30,2ㄱㄴ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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