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크고 깊고 고요한 분; 성 요셉 -정주, 경청, 순종-2021.3.19.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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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9.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2사무7,4-5ㄴ.12-14ㄱ.16 로마4,13.16-18.22 마태1,16.18-21.24ㄱ

 

 

 

참 크고 깊고 고요한 분; 성 요셉

-정주, 경청, 순종-

 

 

 

오늘은 우리 수도원의 주보 성인인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해마다 광야의 사순시기에 맞이하는 성 요셉 대축일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수도자들은 참 행복합니다. 참 좋은 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불암산 배경이 자랑스럽습니다. 흡사 불암산의 두 봉우리가 우리 수도원의 두 수호성인인 성 요셉과 성 베네딕도 배경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마치 성 요셉이 형님같고 성 베네딕도가 아우같습니다. 아주 예전 어스름한 저녁에 불암산을 보며 써놨던 시가 생각납니다.

 

-참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얼마전 쓴 글중 서두말이 생각납니다. “성 베네딕도 규칙서는 고전이다. 규칙서의 저자인 성 베네딕도 역시 고전같은 분이다. 아무리 세월 흘러도 ‘늘 옛스럽고,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고전같은 분이다.” 어찌 성 베네딕도뿐이겠습니까! 성 요셉 역시 늘 옛스럽고 늘 새로운 고전같은 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레 3월21일은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입니다만 주일이라 다음 월요일인 3월22일로 이동하여 축일로 지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 요셉에 대한 애모愛慕의 정은 참 각별합니다. 아니 성 요셉의 부성을 흠모했던 역대 교황님들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교황님은 성 요셉의 보편교회 수호자 선포 15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올해 12월8일 까지 성 요셉의 해로 정해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 라는 교황 교서의 내용이 참 풍부하고 깊고 아름다워 참 좋은 영적 묵상 자료가 됩니다. 여기에서 밝힌 성 요셉의 인품이 정말 매력적이요 닮고 싶은 의욕이 샘솟습니다.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을 대변합니다.

 

“1.사랑받는 아버지, 2.온유하고 다정한 아버지, 3.순종하는 아버지, 4.수용하는 아버지, 5.창의적 용기를 지닌 아버지, 6.노동하는 아버지, 7.그림자 속에 있는 배경같은 아버지”

 

일곱의 특성으로 요약한 성 요셉의 고전같은 인품입니다. 또 어제 교황님께서 사제학생들에게 주신 메시지도 깊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사목자들의 모델인 성 요셉은 ‘환영하는 아버지’, ‘보호자 아버지’, ‘꿈꾸는 사람’이었다.”로 요약했습니다. 주목되는 말마디가 ‘꿈꾸는 사람(Dreamer)’, 성 요셉입니다. 그대로 창세기의 꿈쟁이 요셉이 연상되었고, 평생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살았던 꿈의 사람,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 예수님이 연상되었습니다. 

 

분명 양부인 아버지 성 요셉의 꿈도 보고 배운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영원히 하느님을.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 영원한 청춘에 늘 옛스럽고 늘 새로운 고전같은 삶이겠습니다. 흡사 강론이 성 요셉 예찬禮讚처럼 되었습니다. 성 요셉의 특징을 셋으로 나눠 살펴 봅니다. 성 베네딕도에게도 그대로 해당되겠습니다.

 

첫째, 성 요셉은 ‘정주定住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은, 진실함은 정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정주의 산처럼, 그러나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하느님 향해 맑게 흐르는 강처럼 사셨던 정주의 사람이자 신망애信望愛중 ‘신信의 사람’, 진선미眞善美중 ‘진眞의 사람’, 참 큰 산같은 성 요셉이었습니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는 뜻의 ‘산숭해심(山崇海深)’의 성 요셉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싶지 않았으므로, 남 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배려와 존중, 연민의 사랑이 정주의 큰 산을 연상케 합니다. 참으로 정주의 모범, 신信의 모범, 진眞의 모범이되는 큰 산 같은 성 요셉입니다.

 

둘째, 성 요셉은 ‘경청(傾聽, 敬聽)의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귀기울여 듣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대화와 기도의 기초가 되는 경청의 자세입니다. 잘 경청하기 위한 침묵이요, 잘 경청해야 겸손과 순종의 덕도 뒤따릅니다. 보십시오. 경청의 사람 요셉에게 하느님은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시며 요셉과 꿈중에 소통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요셉을 신뢰했던 하느님이신지 깨닫습니다.

 

불암산처럼 깊은 경청의 사람 성 요셉은 진선미중 두 번째 참 좋은 ‘선善의 사람’이자, 신망애중 두 번 째 ‘망望의 사람’ 즉 희망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좋은, 희망의 사람만이 경청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청과 희망의 참 좋은 모습은 그대로 제2독서의 아브라함을 닮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모습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흡사 성 요셉의 영원한 멘토 아브라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브라함처럼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하느님을 믿었던 요셉이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듯이 

하느님께서는 분명 깊고 깊은 경청의 사람, 

성 요셉의 믿음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을 것입니다.

 

셋째, 성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할 때 산같은 내적 고요입니다.

침묵, 경청, 겸손은 마침내 순종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 사랑과 신뢰의 순종입니다. 

이런 순종은 그대로 영성의 잣대가 됩니다. 

 

요셉의 지체없는 순종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까!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요셉의 지체없는 순종을 간명하게 요약합니다. 

참으로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자 신망애중 애의 사람, 진선미중 미의 사람, 

즉 사랑과 아름다움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사랑하면 아름다워지기 마련입니다. 

 

흡사 제1독서 사무엘하권의 예언이 

성 요셉과 예수님은 물론 

주님을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합니다. 

불암산처럼 우리의 참 좋은 배경이 되어 주시는 

크고 깊고 고요한 의롭기 한이 없는 성 요셉은 

정주의 사람, 경청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었고,

신망애의 사람, 진선미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저절로 참 좋은 선물인 성 요셉을 우리 교회에, 

우리 수도원에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평생 성 요셉의 덕을 사랑하고 공부하며 닮도록 도와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구세주의 보호자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여,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외아드님을 맡기셨고,

마리아께서는 당신을 신뢰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보호 속에서 성장하셨나이다.

 

복되신 요셉이시여,

저희에게도 아버지가 되시어

삶의 여정에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를 위하여 은총과 자비와 용기를 얻어 주시고

모든 악에서 저희를 지켜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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