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9.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더불어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
-예수님 중심의 삶-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 구원받지 못합니다.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잠시 수도원 집을 떠나니 집이 생각나고, 잠시 공동체를 떠나니 공동체가 생각납니다. 천국 입장도 개인입장이 아니라 단체입장이라 합니다. 여기 피정집에 왔을 때 수녀님의 물음에 잠깐 고민한 일이 있습니다.
“신부님, 식사는 저번때처럼 수녀님들과 함께 같이 식당에서 하시겠어요? 아니면 사제식당에서 따로 하시겠어요?”
40여년 수도공동생활을 해왔어도 혼자 조용히 있기를 좋아하는 은수자적 성향이 강한 저인지라 따로 할까 하는 유혹에 잠시 망서렸습니다만, 까칠하고 번거롭다 싶어 곧 결정해 연락드렸습니다.
“전번처럼 식당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먹겠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가 답입니다. 혼자와 함께의 균형이 답입니다. 혼자만 좋아하다보면 급기야 이상한 괴물이 될 수 있고, 폐인도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의 배려와 존중, 섬김의 삶중에 온전한 인격으로의 성장입니다. 공동전례기도인 미사와 성무일도시간만 빼고 온종일 혼자 있게 될 터인데 밥까지 혼자의 혼밥은 할 수 없다는 분별의 지혜였습니다.
더불어 생각난 것이 7년전 안식년중 미국에 있는 왜관수도원의 분원인 뉴튼수도원에서 3개월을 지낼 때였습니다. 사막같은 수도원에서 하루 종일 혼자 지내다 보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은 수도형제들과 함께 하는 공동전례기도시간과 공동식사시간뿐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성당에서의 공동전례기도시간이고, 육적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식당에서의 공동식사시간이었습니다. 성사聖事처럼 중요하기에 식사食事요 농사農事라 합니다. 왜관 수도원의 병실의 노수사님들에게도 흥미로운, 그러나 의미심장한 일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공동전례기도는 휠체어를 타고라도 필사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성전과 형제들을 살펴 보면서 소속감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또 ‘살기위해서’ 본능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장 공동체를 떠나면 신원의 위기를,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내에서의 각자의 구체적 제자리가 내 신원을, 정체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수도형제자매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영성을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제가 자주 강조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수도공동체는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이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나 성격, 취향이 맞아서 공동생활이 아니라 각자 바라보는 중심의 방향이 같기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기에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수도생활은 이렇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함께 사는 것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이런 함께 사는 것이며,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최고의 수행이자 도닦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갈 때, 영원한 도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우정도 깊어지면서 예수님을 닮아 둥글둥글 원숙圓熟하고 원만圓滿한 인격의 성장이요, 더불어 수도형제자매 도반들과도 깊어지는 우정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더불어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정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7년전 산티아고 800km 순례 체험의 은총입니다. 그대로 순례 여정을 압축한듯한 30여일의 순례기간이었고, 여기서 참 중요했던 요소가 바로 함께 하는 기도와 도반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늘 함께 하는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을, 또 눈에 보이는 형제들과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이 순례 여정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더불어 순례 여정중인 공동체의 모습은 오늘 복음과 제1독서 사도행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늘 보이게 함께 하는 분이 아니라 의기소침해있던 여섯 제자들은 공동체의 지도자인 베드로를 따라 쓸쓸히 옛 고기잡이 일터로 복귀합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인 그리스도께서 부재하실 때 별무소득, 허무만 가득한 삶임을 깨우쳐 줍니다. 이어지는 다음 묘사는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요!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신데 눈이 가려 못 알아보는 경우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흡사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한 예수님의 모습이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영혼의 태양으로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도 정겹기 한이 없습니다. 이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그물에 가득 고기를 잡았을 때 전광석화 눈이 열려 알아본 이는 예수님의 애제자 요한이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애제자의 탄성과 더불어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 듭니다. 애제자이자 관상가 요한과 수제자이자 활동가인 베드로가 환상의 콤비이자 도반임이 드러납니다. 둘 다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서로 이런 깊은 영적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파스카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함께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제자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를 닮았습니다. 이런 파스카의 예수님의 사랑의 기적 체험이 베드로를 참으로 담대한 주님의 용사로 만들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베드로 곁에는 그의 도반이자 절친인 요한이 늘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다시피 베드로의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고백은 얼마나 통쾌한지요!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대로 평생 화두로 삼고 싶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삶의 중심이자 영원한 도반이신 당신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하시며 더불어 순례 여정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