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 중심의 균형과 조화, 일치의 공동체(삶)-2021.4.17.부활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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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17.부활 제2주간 토요일                                                                       사도6,1-7 요한6,16-21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 중심의 균형과 조화, 일치의 공동체(삶)-

 

 

 

어제는 신록의 아름다움 눈부신 날이었지만 하루 종일 찌푸듯한 날씨에 몸도 마음도 아팠던 간간히 비뿌리는 음울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세월호 참사 7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는 주님 수난을 기리기 시작한 성주간 수요일이었지만 지금은 부활2주간 부활시기입니다. 지금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304명 희생자들 모두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리라 믿습니다. 문득 오래전 위령성월 11월에 썼던 ‘죽음’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환이다, 해후다, 화해다, 구원이다

‘수고하였다.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음성”-1998.11.10.

 

참 요즘은 지인들이 곳곳에서 소리없이 여러분이 떠났습니다. 엊그제도 부음을 들었습니다. 45년전 초등학교 재직시 사랑했던 제자의 어머니, 김명숙 로사 자매님이 선종했다는 소식이었고 어제 아침 연미사도 봉헌했습니다. 참으로 신심깊고 착한 분으로 제 모친의 초록색 털조끼를 손수 짜주었고, 제 왜관수도원 종신서원식때도 찾아 주셨던 분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뵈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삼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수녀원 피정지도를 끝내고 10일만에 귀원하니 온통 신록의 바다가 된 수도원 풍경입니다. 흡사 신록의 바다 한 복판에 떠있는 섬처럼 보이는 수도원입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밖을 향할 때는 라일락 그윽한 향기와 더불어 별세계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나를 기쁘게 하시니, 손수 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시편92,5), 시편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정말 깨달아 눈이 열리면 하루하루가 새하늘과 새땅의 하늘 나라일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수도원 십자로의 예수님 성심 부활상 아래 바위판 정면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 구절입니다. 측면에서 바라볼 때 기도하다가 바위가 된 사람의 모습은 여전한 감동이었습니다. 신록의 단풍나무와 빨간 철쭉꽃 배경의 예수님 부활상과 기도하다가 된 바위가 된 사람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기도하다 바위가 된 사람! 그 자체가 영원이네요!”

 

사진과 더불어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예수님 부재시의 내 자신이나 공동체가 내외적으로 얼마나 위태한지 상징적으로 참 잘 보여줍니다. 한 밤중 격랑에 휘둘리는 공동체라는 배가 흡사 때로 불안과 두려움에 크게 휘둘리는 각자의 내면을, 공동체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아니 기후위기와 코로나와 온갖 사유들로 혼란중에 있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국내 상황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위기상태의 현실이 풍전등화, 일엽편주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이 때 우리에게 들려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배안에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우리 공동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균형과 조화, 일치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성공적 광야 인생 항해 순례 여정을 마칠 수 있음을 봅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 모습이 그대로 복음의 항해여정중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 배를 상징합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내부의 분열로 파선의 위기에 봉착한 참 위태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소위 이상적 유토피아 사도행전 공동체에도 갑질의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갑질, 재벌, 내로남불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 용어로 외국어 번역시는 한글 발음 그대로 사용한다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된 사도들은 영적본능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고 기민하게 대처합니다. 이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분별력의 지혜와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역할 분담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균형과 조화, 일치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사도들의 분별력의 지혜와 사랑의 은총이 놀랍습니다. 예전 장상의 불교 사찰의 방장과 주지, 이판승과 사판승의 제도를 부러워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영성과 수행에만 전념하는 방장과 이판승, 사찰의 재정과 관리, 사무에만 전념하는 주지와 사판승의 역할 분담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성과 재무 관리의 CEO 역할 둘 다하기에는 수도원 원장의 직무가 너무 벅차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영적봉사와 식탁봉사의 역할 분담이 주는 가르침이, 깨우침이 참으로 고맙고 교회 공동체 생활에 깊이 고려할 사항이겠습니다. 새삼 교회(수도)공동체 재무(당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다(I AM)’ 바로 하느님 이름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I AM for you)’,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I AM with you)’임을 암시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강론을 쓰면서 하루하루 ‘살아 있음’을 확인합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날마다 강론 쓰는 것이 단 하나의 간절한 제 소원입니다. 참으로 예수님 중심의 균형과 조화, 일치의 아름다운 공동체 건설에 온힘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런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수시로 주님께 다음 감사 고백 기도를 바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중심,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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