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나? -회개, 만남, 사랑, 증인-2021.4.18.부활 제3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8,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4.18.부활 제3주일                                             사도3,13-15.17-19 1요한2,1-5ㄱ 루카24,35-48

 

 

 

어떻게 살아야 하나?

-회개, 만남, 사랑, 증인-

 

 

 

“수도자는 누구인가?” 날마다 묻는 자가 수도자라 합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누구나 참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날마다 “나는 누구인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이 아니라 참으로 행복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나 이제나 자주 튀어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답할 때 절로 나오는 질문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30년전 왜관 수도원 종신 서원 미사때 강론 제목이었고 얼마전 강론 제목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문기사를 보면 여러 필자들이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에 대해 제각기 답을 말합니다만, 결국 각자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수녀원 피정지도시 수녀님들 감사인사에 대한 제 답변이 생각납니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로 피정이 끝났네요. 끝은 시작입니다. 그러나 끝은 없고 늘 새로운 시작이 있을뿐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 두 경우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줍니다. 한 자매의 질문입니다. 

“남편은 저에게 진실된 삶을 살라합니다. 어떻게 진실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자매님은 진실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진실은 사랑입니다. 가까이에서부터 사랑하며 사시면 바로 진실한 삶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농장 수사님과의 대화도 잊지 못합니다.

“무릎 불편한데 농장 일할 수 있습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합니까? 해야죠.”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이 되겠습니다.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구체적으로 제자리에서 제몫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진실이자 사랑이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나라 안팎이 코로나로 인해 뒤숭숭한 시절입니다. 16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 19 누적 사망자는 300만명, 확진자는 1억4천만명을 돌파했다 합니다. 웬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이 미세먼지처럼 마음을 어둡고 우울하게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절실한 물음의 현실입니다. 답은 가까이 있습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답을 주십니다. 신록의 아름다움 눈부신 파스카의 4월 축제시기, 바로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평화, 파스카의 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첫째, 회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최상의 응답이 회개입니다. 날마다 평생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로 돌아가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입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정주에,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을 살게 해주는 수행이 바로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인간 마음의 고질병인 무지에 대한 유일한 처방도 참된 회개뿐입니다. 회개를 통한 진실과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하는 사도행전의 베드로 사도가 강조하는 바 역시 회개입니다. 마치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사실 예나 이제나 변함 없는 인간의 부정적 성향입니다.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회개하고 돌아와 우리의 죄가 지워지게 하는 은총의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도와 일이 잘 조화된 일과표가 고맙습니다. 

 

둘째, 만남입니다.

무엇보다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파스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만남의 은총입니다. 회개를 통해 만나는 주님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준비되어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순전히 주도적인 주님의 은총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만남의 체험담을 나누며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는 결정적 순간에 주님은 제자들의 공동체에 나타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 자체가 평화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평화와 기쁨이 영육의 건강에 최고의 백신이자 선물입니다.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평화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습니다.  참으로 이런 평화와 기쁨을 지닌 자가 내적부자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참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이 부활하신 주님은 똑같은 영혼과 육신을 지니셨으면서도 자유로우시고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는 벽이 없고 온통 문이며 어디에나 현존하십니다. 어제 복음의 참 고마운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I AM)’는 바로 탈출기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는(I AM for you)’ 하느님인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나다’ 바로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하느님의 현존임을 말해 줍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파스카의 주님의 평화와 기쁨이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고, 인간 영혼의 고질적 질병인 무지와 허무를 치유합니다. 그러나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그러니 평소 아프기전 건강할 때 파스카의 기쁨과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영육의 건강에는 제일입니다. 

 

셋째, 사랑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만남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사랑은 무사한 이타적 아가페 사랑입니다. 우리의 형제적 사랑은 이런 깨끗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변호자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감동적인 모습에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라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지킬 것이고 형제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요한 사도의 말씀에 그대로 공감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사랑의 계명입니다. 사랑의 말씀입니다. 사랑의 진리입니다. 사랑이 빠진 삶, 그대로 유령같은 헛것의 삶입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의 삶입니다. 늘 허기虛氣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새삼 미사시 형제자매들이 가난한 빈 손으로 주님 성체를 모실 때의 아름다운 장면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겸손한,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을 세상 어디서 볼 수 있겠는지요! 성찬전례가 없는 말씀전례뿐의 미사라면 그 영혼들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바로 주님의 성체를 모실 때, 우리는 그대로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평화가,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생명이 됨을, 주님과 하나됨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넷째, 증인입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회개, 만남, 사랑은 복음 선포의 열매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파스카의 주님을 닮아 하나가 되어갈 때 최고의 복음 선포요 주님 증인의 삶입니다. 부활하신 제자들에게 주는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일의 증인이다.”

 

사도들처럼 죄의 용서을 위한 회개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에 부단히 선포될 수 있도록 우리 또한 한결같이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 부활의 증인의 삶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과 하나될수록 우리는 주님의 충실한 증인이 되고 복음선포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각자 제 삶의 자리에서 부단한 회개와 만남, 사랑과 선포의 삶을 통해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 파스카의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의 파스카 삶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시편4,7ㄷ). 아멘.

 


Articles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