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임종어-2021.4.20.부활 제3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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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20.부활 제3주간 화요일                                                          사도7,51-8,1ㄱ 요한6,30-35

 

 

 

예닮의 여정

-임종어-

 

 

 

십여일간의 수녀원 피정지도를 마치며 깨달은 진리가 새롭습니다. ‘아, 일상의 평범한 삶이 그대로 피정 준비이구나!’하는 깨달음입니다. 별다른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하루하루 일상의 평범한 삶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피정준비라는 깨달음입니다. 죽음 역시 똑같습니다. 별다른 죽음 준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진실, 성실, 절실한 삶이 그대로 미래가 되고 죽음 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여 자주 좌우명처럼 되뇌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고백시의 마지막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이런 좌우명이 임종어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입니다. 참으로 가장 중요한 인생 최종 시험이 마지막 죽음일 것입니다. 또 좋은 선종보다 이웃에게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최종 시험 죽음 날자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여 분도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이렇게 살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겸손과 지혜의 하느님 선물이요, 흔적없이 사라지는 무지의 어둠입니다. 강조점은 ‘날마다’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환히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삶의 환상이나 허상이나 거품은 걷혀 하루하루 하느님의 선물같은 날에 감사하면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신록의 기쁨 가득한 파스카 부활시기에 배치된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스테파노의 순교장면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절로 스테파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파스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또 예수님 닮기를 소망하는 예닮의 여정중인 우리의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

 

이번 진천 ‘무아의 집’ 피정집 성전에 오르 내리며 날마다 봤던 계단 벽 액자안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대로 오늘 스테파노의 순교에서 입증되는 진리입니다. 새삼 순교적 삶과 죽음을 위해 매일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과의 일치를 체험하는 미사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다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미사때 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 구절을 되뇌이며 성체를 모실 때 참 좋은 삶이자 죽음의 준비일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주님 성체와의 결합인 순교적 삶만이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의 근원적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성체성사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의 일치의 여정, 예닮의 삶을 살았기에 스테파노의 거룩한 죽음이요 임종어입니다. 읽을 때 마다 늘 새로운 감동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7,59)

스테파노의 임종어는 다음 예수님의 임종어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23,46)

 

바로 우리가 날마다의 끝기도 독서후 바치는 “주님 손에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 응송도 위 말씀에 근거합니다. 이어 “전능하신 천주여,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장상의 강복을 받은 후 성모찬송가를 바친후 죽음과도 같은 잠자리에 듭니다. 

 

정말 하루하루 날마다 파스카의 신비를 살면서 하루의 끝무렵에 바치는 끝기도만 정성껏 바쳐도 선종의 은총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임종어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7,60)

스테파노의 이 임종어도 그대로 다음 예수님의 임종어를 닮았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새삼 제가 늘 강조하는 무지의 마음 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닫습니다. 적대자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순교 직전의 스테파노의 설교가 있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요 우이독경牛耳讀經입니다. 무지한 오늘날 사람들 모두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무지의 악순환의 질곡에서,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입니다. 참된 회개의 은총만이, 파스카 예수님의 미사은총만이, 성체와의 결합인 순교적 삶만이 인간의 치명적 고질적 마음의 병인 무지에 대한 근원적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참 감격하는 것이 하느님의 원대한 시야와 오묘한 섭리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믿음의 씨앗이다(The blood of martyrs is the seed of faith)’란 말도 있듯이 바로 순교의 죽음을 맞이하는 스테파노 곁에서 그대로 보고 배운 사울을, 장차의 바오로를 하느님은 예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닮의 여정, 그대로 스테파노의 삶의 여정이 그러합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평상시 예수님과 일치된 삶을 사셨기에 참된 제자로 참된 삶을 살다가 참된 죽음을 맞이한 우리들 삶과 죽음의 영원한 모델이된 성 스테파노 순교자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고 나누는 것이 예닮의 여정중 현재 우리 삶의 지점입니다.

 

일일일생, 하루로 내 삶을 압축할 때, 또 일년사계, 즉 봄-여름-가을-겨울로 압축했을 때 과연 나는 어느 지점에 와 있겠느냐에 대한 묵상입니다. 제 경우는 하루로 하면 오후 4시, 일년사계로 하면 초겨울 같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죽음이 있어 삶이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이 없다면 결코 삶이 선물임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아름답고 거룩한 예닮의 여정과 더불어 잘 살다가 잘 죽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도, 스테파노도 오늘 화답송 시편에서 임종어를 배웠음을 봅니다.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시편3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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