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제자되어 참으로 살기 -공동체 삶의 축복-2021.5.2.부활 제5주일(생명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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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2.부활 제5주일(생명주일)                                     사도9,26-31 1요한3,18-24 요한15,1-8

 

 

 

참 제자되어 참으로 살기

-공동체 삶의 축복-

 

 

 

한 번 뿐이 없는 유일회적 삶에 누구나의 소망은 참으로, 진짜 살기일 것입니다. 임종을 맞이하여 후회없는 만족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고백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께서 묻는 단 하나의 질문은 ‘행복하게 살았느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참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 신록의 계절 5월 성모성월에 계속되는 부활축제 시기요, 하느님 주신 생명의 선물에 감사하며 참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하는 참 좋은 부활 제5주일, 생명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예수님 말씀도 참 정답게 들립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참으로 농부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이들이 지상에서 농사에서 전념하는 농부들일 것입니다. 땅처럼 푸근하고 넉넉하고 한없는 인내심을 지니고 기다리며 때에 맞게 농사일에 전념하는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농부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믿는 이들은 '삶의 농부'라 해도 좋겠습니다. 엊그제 고추, 상추, 파, 오이, 가지, 토마토, 야콘 모종후 적기에 내려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신 단비를 통해 새삼 우리 하느님은 최고의 농부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채소 농장을 하는 농부 스테파노 수사님, 이런 농부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깨달으며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사는 분들이 참으로 사는 이들입니다. 어제 한 달에 한번 방문하여 성사를 보는 형제님과의 만남도 잊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기에 덥석 안으며,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하며 깨달았던 진리입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모르는 경우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바로 살아있는 형제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또 이 거룩한 성사를 통해서 만나는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어제는 미국 뉴튼 수도원에서 20년 동안 항구히 정주중인 반가운 손님 마티아 수사님이 방문하여 저녁 식사후 떠나니 이 또한 형제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겠습니다. 얼른 정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과 더불어, ‘뉴튼 수도원 마티아 사도 방문 축일 기념’이란 말마디를 전송하니 마음 흐뭇했습니다. 또 어제 명동성당에서는 참으로 주님의 종으로 사셨던 정 추기경님의 장례미사가 있었고,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소개된 ‘추기경의 묘비명’에 대한 일간신문 기사도 이채로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는 사목 표어이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와 평소 좋아한 성구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가 추모객을 맞이한다. 지난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의 묘비명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다. 실제 고인은 장기와 가진 것 모두를 내주고 떠났다.”(5.1경향22면)

 

참으로, 진짜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참 삶의 지표를 보여준 두 분의 추기경입니다. 과연 어떻게 각자 나름대로 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공동체와 더불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통해서입니다. 참 포도나무가 상징하는 바 공동체 예수님이요, 우리는 모두 그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공동체 삶의 축복입니다. 세 측면에 걸친 공동체 삶의 축복 원리를 소개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입니다.

너무 잘 잊고 지내는 하나라는 자각입니다. 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 구원받지 못합니다.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잘 깊이 들여다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고립단절은 스스로 자초한 지옥입니다. 함께 더불어의 삶이 바로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결국 하나가 지칭하는 바 주님입니다. 포도나무가 상징하는 하나인 주님입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주님 참 포도나무에 가지로 붙어 있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하나로 연결되어 붙어 있을 때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이요, 영이자 생명이신 말씀은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점차 주님을 닮아 참 나를 살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 안에 하나임을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성체를 받아 모시며 주님의 한 지체임을, 한 형제임을 깨닫는 우리들입니다.

 

둘째, 우리는 다양합니다.

공동체의 다양함이 축복이자 부요입니다. 획일화의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사랑의 일치입니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로 서로 다름을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모두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그대로 5월 신록의 나무들 같고 꽃같습니다. 신록의 색깔도 다 다르고 꽃들도 다 다릅니다. 꽃의 크기, 모습, 색깔, 향기가 다 다르듯 사람도 똑같습니다. 꽃같은 인생, 꽃처럼 고유의 크기와 모습, 색깔과 향기로 참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이런 더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공존공생, 상호보완의 공동체 삶이 바로 하늘나라의 실현입니다. 이런 다양한 형제들이 하나 되어 갈수록 점차 공동체를 통해 또렷이 드러나는 참 포도나무 예수님 모습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일이 없도록 항상 공동체의 큰 그림을 통해 예수님 얼굴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바로 제1독서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공동체가 그 다양성의 모범입니다. 바르나바, 사울을 비롯한 제자들이 다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 참 아름다운 형제애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형제들이 곤경중인 사울을 보호하는 배려의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이런 사도들의 참 포도나무 예수님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참 풍요롭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셋째, 우리는 하나 안에 머물러 열매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머무르다는 말이 오늘 복음에 무려 8회 나옵니다. 늘 공동체 안에, 주님 안에 머물러 시냇가에 뿌리 내린 나무처럼, 관계의 뿌리, 믿음의 뿌리, 사랑의 뿌리 를 깊이 깊이 내리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공동체 안에, 예수님 안에 정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중심에 머물러 깊이 뿌리내리는 정주의 삶이 없어 그리도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깊이 믿음의 뿌리 내리고 살 때 안정과 평화에 감사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간곡한, 금과옥조의 말씀이 그대로 진리입니다. 그대로 참 삶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리리라.”

 

이래야 비로소 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은 우리 안에 머무르는 상호내주의 일치는 바로 사랑의 일치를 뜻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떠나 뿌리없이 잘린 가지처럼 가짜의 헛된, 유령같은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지요! 주님이 아닌 엉뚱한 세상에 머물러 살기에 끊임없는 불안에 두려움입니다.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를 이루며 참으로 살아갈 때 그대로 소원 성취의 삶이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정말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몰라서 불평 원망이지 주님을 알면 찬미와 감사뿐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지 않아 스스로 자초한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를 때 구원이요 주님을 떠날 때 심판이니 구원과 심판은 선택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과 상호내주의 사랑의 일치, 관상의 일치는 자연스럽게 이웃사랑의 열매를 통해 표현되고 검증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을 촉구합니다. 그대로 우리 모두를 향한 간곡한 호소입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기적 탁한 맹목적 욕망의 늪 같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애착의 끈적끈적한 불순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 수도자들이 실행하는 아가페 깨끗한 형제적 사랑입니다.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감과 연민의 무사無私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집착하지 않는 사랑, 생명을 주는 아가페 깨끗한 사랑입니다. 바로 다음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 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의 사랑은 그대로 깨끗하고 무사한 형제사랑으로 표현되고 이런 형제사랑의 실천은 주님과 상호내주의 사랑을 더욱 깊이함을 봅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참 삶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결국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꽃 사랑은 열매 사랑으로 드러나야 비로소 참 사랑, 참 삶임을 입증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사랑의 열매, 구원의 열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굳건히 하시고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사랑의 열매 풍성한 진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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