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적 삶, 파스카의 삶, 정주의 삶 -한결같은 삶-2021.5.3.월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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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3.월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1코린15,1-8 요한14,6-14

 

 

 

순교적 삶, 파스카의 삶, 정주의 삶

-한결같은 삶-

 

 

 

오늘은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구체적으로 순교축일입니다. 필립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도이고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로 ‘작은 야고보’라 불리는 분으로 신약성경 ‘야고보 서간’을 쓴 사도입니다. 새벽 성무일도 독서기도시 찬미가 한 연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장하다 복되옵신 두분 사도여, 피흘려 우리 주님 증거했으니

희망과 신앙의 힘 우리도 지녀, 본향을 향해 달려가게 하소서.”

 

오늘 두 사도의 축일이 각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난 4.4일 부활 대축일이후 거의 한달만에 흰색 제의를 입다가 처음으로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입니다. 새삼 순교적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어서만 순교가 아니라 이미 살아서 순교적 삶을 살고 있는 순교자들의 후예인 우리 수도자들이요 수도자들은 물론 무수한 신자분들이 순교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재미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 사랑 때문에 강한 책임감, 의무감으로 살아감이 바로 순교적 삶입니다.

 

며칠전의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불편한 몸과 마음을 지닌채로 성전 좌석에 앉는 순간, “아, 하루하루가, 매일매일이 순교의 죽음이자 부활이구나! 파스카 신비의 삶이구나!”하는 고백같은 말마디였습니다. 순교적 삶은 날마다 죽고 새롭게 시작하는 부활의 삶이요 파스카의 삶입니다. 바로 우리 정주의 삶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순교적 삶, 파스카의 삶입니다. 얼마전 참 힘든 세상, 좌절중에도 믿음으로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한결같이 사는 분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도 잊지 못합니다.

 

“늘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건강히 계셔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부님!”

 

비단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여기 늘 거기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정주의 삶, 파스카의 삶,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을 고마워합니다. 한결같은 그 자리의 불암산도 자연경관도 요셉상도 예수성심상도 보이지 않는 위로와 힘을 주는 정주의 표상表象들입니다. 요즘 요셉상 곁에는 붉게 타오르는 연산홍이 한창입니다. 얼마전 인용했던 21년전 시가 생각납니다.

 

“말없이

고요해도

가슴은

타오르는 불이다

 

요셉상옆

붉게 

타오르는

연산홍!”-2000.5.10

 

겉은 고요해도 내면은 사랑의 불로 붉게 타오르는 살아 있는 순교 성인같은 성 요셉을 묘사한 글입니다. 정주의 삶이 순교적 삶임은 이미 베네딕도 성인도 규칙서 머리말 말미에서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결점을 고치거나 애덕을 보존하기 위하여 공정한 이치에 맞게 다소 엄격한 점이 있더라도, 즉시 놀래어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말아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성규;머리47-50)

 

참 아름답고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순교적 삶은 그대로 파스카의 삶과 정주의 삶에 직결됨을 봅니다. 이런 순교적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덕목이 항구한 인내력이요 끝까지 견디며 인내할 때 영적전쟁에 승리요 구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일년마다 출간하는 베네딕도회 ‘코이노니아’ 영성잡지에 기고한 내용중 ‘정주와 환대, 수도자다운 생활, 일과표의 궤도에 따른 삶’에 대한 일부 내용을 나눕니다. 길다싶지만 영성생활에 본질적인 부분이라 인용합니다.

 

“베네딕도회 삶은 언제나 늘 거기 그 자리에 산처럼, 나무처럼 하느님 중심에 자리 잡은 한결같은 정주의 공동생활이다. 정주생활을 하기에 비로소 수도가정이 되고 환대의 장이 되기도 한다. 환대의 집에서 환대의 사람이 되어 찾아 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함으로 자연스럽게 환대를 통한 선교활동이 이뤄진다. 요즘은 수도영성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코로나 사태는 정주영성을 심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며,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 정주영성의 공부는 내적 삶에 깊이를 더해 줄 수 있다.

 

정주는 안주가 아니다. 밖으로는 산같은 정주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같은 삶이요 바로 이것이 수도자다운 삶의 두 번째 서원이 의도하는 바다. 이처럼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내적 삶일 때 언제나 새 하늘, 새 땅의 하늘 나라 공동체의 실현이다. 바로 이런 ‘더불어together’ 내적 여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일과표의 궤도에 따른 삶이다. 기도와 공부(성독)와 노동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일과표다. 코로나는 바로 이런 본질적 삶에 충실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다.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 쉬운 코로나 시대에 참 적절한 수행이다.

 

비단 수도원뿐 아니라 나름대로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일과표는 필수이다. 감정따라, 기분따라, 마음따라 살지 않고, 일과표의 궤도 따라 질서있게 살도록 하자.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하다보면 떠났던 마음도 되돌아 오고, 영적탄력도 유지되어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며, ‘일상의 늪’에도 빠지지 않는다. 일과표는 삶의 ‘안전 그물망’과도 같다.

 

베네딕도회 영성은 비상하지도 유별나지도 않고 평범한 순교적 삶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유행을 타지 않는 검정색 옷 같은 영성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수도영성의 심화가 얼마나 본질적이요 결정적인지 깨닫는다. 코로나 사태에 당황할 것이 아니라 일과표의 궤도에 충실한 한결같은 삶이 내적깊이의 성공적 인생여정을 이뤄줄 것이다.”

 

가끔 가사를 바꿔 부르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풍미했던 김민기가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 태어나 수도원에 수도자 되어 

꽃피고 눈내리길 어언 40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수도원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검은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이 강산'은 '수도원'으로, '군인'은 '수도자'로, '30년'은 '40년'으로, '푸른옷'은 수도복 '검은옷'으로 바꿔 부르곤 합니다. 주님의 전사인 수도자이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가사에 곡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전사로써 순교적 삶의 영적전쟁에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요? 파스카의 예수님을 체험하면서 일치를 깊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파스카 예수님과 사랑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한결같은 순교적 승리의 삶입니다. 바로 다음 주님의 복음 서두 말씀이 결정적 답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순교적 삶에 지표가 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애오라지 한결같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파스카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결코 세상의 거짓 길, 죽음 길의 유혹에 한 눈 팔다 탈선하지 않고, 주님을 향해 주님을 따라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참된 길인 주님 방향을 몰라, 잊어버려, 잃어버려 뿌리없이 표류하는 혼란 중에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새삼 파스카 예수님과의 끊임없는 일치체험과 파스카 예수님에 대한 끊임없는 평생공부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모두가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체험한 사도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 바오로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아, 이렇게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과의 결정적 만남의 일치 체험이 바로 사도들을 기꺼히 자발적 사랑의 순교로 이끌었음을 봅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란 순교복자수녀원 진천 무아의 집 성전 계단 벽에 걸려 있던 액자의 말마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로 주님과 하나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 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은 순교적 삶을 살게 합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3-14).

 

끝으로 오늘 미사중 아름다운 본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해마다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을 기꺼이 지내게 하셨으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하느님을 뵈옵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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