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고별사告別辭 -예수님, 바오로, 나(?)-2021.5.18.부활 제7주간 화요일(5.18민주화운동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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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18.부활 제7주간 화요일(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사도20,17-27 요한17,1-11ㄴ

 

 

 

참 아름다운 고별사告別辭

-예수님, 바오로, 나(?)-

 

 

 

“내 영혼은 밤에도 당신을 사모하오며, 아침에도 내 마음 당신을 그리나이다.”(이사26,9ㄱ)

 

아침 성무일도시 이사야 찬미가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 마음 주님을 그리며 이 아름다운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文豪, 도스토엡스키는 자신의 작품 <백치>를 통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그 대상의 아름다움보다는 대상에 대한 인식의 아름다움에서 피어난다’합니다. 객관적 아름다움이기 보다는 아름다운 사람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아름다운 책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주문한 유명인사의 책에 저자의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오는 바람의 말을 2021년 봄 마종기” 란 담백한 친필 싸인이 있는 책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바로 유명한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의 장남인 마종기(라우렌시오) 시인의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이란 산문집이었습니다.

 

잘 들여다 보면 꽃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대로입니다. 마종기 라우렌시오 시인, 정말 아름다운 영혼의 사람이었습니다. 시인은 ‘내 시가 놀이적인 측면과 구원의 측면이 있다고 말해 주어서 잠시 감동했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니까!’고백합니다. 문학 뿐만 아니라 글이든 말이든 삶이든 놀이적인 측면과 구원의 측면이, 즉 놀이와 기도가 하나된 삶이라면 정말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짧은 인생 아름답게 살려면 “놀아라”, “기도하라”는 말마디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런 상황에서 집안 최고 장수長壽의 어른이신, 또 장차 당신의 장례미사를 부탁하신 사도 요한 사촌형님의 100세 생신(백수연) 기념, 조촐한 식사에 초대 받아 참석했고, 후에 바오로 조카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도 매우 기뻐하셨어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기도합니다.” 식사전 잠시 영대를 하고 갖고 간 ‘축복예식서’를 보고 축복식도 했습니다. 몇분 안되는 사촌 형들이 80대의 고령으로 몸이 불편해 아무도 오지 못했고 참석한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00세 사촌 형님의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풍모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종필씨 공주고보 선배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분이며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한 후 90대까지 프로 경지의 그림을 그리셨던 분입니다. 그림의 특징도 60대 이후 90대까지 세 화첩이 특징적으로 선명히 구분됨도 잊지 못합니다. 어둡고 무거웠던 그림들이 갈수록 밝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점차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밝고 아름다워지는 영혼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제가 즐겨 잘 들여다 보는 책이 자전적 이야기 책들입니다. 예전에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거울같은 글을 통해 내 자신을 들여다 봅니다. 부러워 모방하기 보다는 참으로 꽃처럼 아름답게 내 고유의 모양, 크기, 색깔, 향기로 살 수 있도록 잘 돌보고 보살펴야 겠다는 자각을 새로이 하며 배우는 겸손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하면 예수님과 바오로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독보적인 아름다운 분들임을 오늘 말씀이 입증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고별기도와 제1독서 사도행전의 바오로의 고별인사가 아름다움의 절정이며 감동을 선사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여정에 앞서 우선 당신 자신과 제자들을 위한 기도로 고별사를 시작합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별사인지요! 온통 아버지의 영광을 중심한, 목표한 삶이었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고별사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요약인 아름다운 고별사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아름다운 고별사를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바오로의 고별인사 역시 구구절절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요! 고별사의 거울을 통해 바오로의 산전수전의 삶과 주님께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일부만 인용합니다. 내일까지 가야 고별사도 끝납니다. 예루살렘 상경을 앞둔 바오로의 고별사가 그대로 예수님과 판박이라 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받은 거룩한 직무의 책임을 다함이 그대로 진실이자 사랑, 생명이자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직무의 책임이요, 예수님 사랑에 목숨을 내놓은 바오로입니다. 순교의 죽음을 앞두고 주님 위한 사랑에 최선을 다했던 치열한 삶이 그대로 드러난 바오로의 장엄한 고별사입니다. 역시 우리 각자의 삶을, 또 우리 고별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믿는 이마다 삶의 종착지에 이르렀을 때 유언같은 고별기도나 고별사도 다 다를 것입니다. 참으로 한 번뿐이 없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같은 삶, 생각없이 되는 대로 살것이 아니라, 늘 아름다운 고별사를 염두에 두고 아름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41주년이 되는 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봐야 하겠습니다. 삶자체가 고별사가 되었던 희생된 분들에게 천국에서의 안식의 은총을 간청하며, 남은 유족들에게도 주님의 각별한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간청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고별사告別辭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은 날마다 찬미받으소서. 우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 구원이시다. 우리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 주 하느님께 있네.”(시편68,20-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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