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21.부활 제7주간 금요일 사도25,13ㄴ-21 요한21,15-19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지금 여기가 구원의 꽃자리 천국天國이다-
며칠전 산전수전 온갖 고통 다 겪고 면담고백성사시 꽃처럼 앉아 있던 자매에게 확신에 넘쳐 드린 위로와 격려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부터 천국의 삶을 사십시오. 그 힘든 생지옥같고 연옥같은 수십년의 세월을 참 장하게 믿음으로 통과하셨습니다.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기적’입니다. 그대로 보속의 삶이었습니다. 참 어려운 굽이굽이 산전수전 고난의 고비들을 다 넘었습니다. 이제부터 꽃처럼 감사와 기쁨 가득한 천국의 삶을 사십시오.”
새벽에 일어나 카톡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전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입니다. 대단한 언변으로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선교사가 아니라, 기쁨에 가득 찬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사입니다.”
‘기쁨에 가득 찬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사의 삶’은 그대로 ‘하느님의 꽃’ 같은 삶입니다.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한 ‘파스카의 봄꽃’들에 이어 수도원 곳곳에서 계속 피고 지는 다양하고 무수한 꽃들의 화사한 행렬입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곳에 몇 달간 계속 피고 지는 샛노란 애기똥풀꽃을 보며 어제 써놓은 ‘구원의 꽃자리’ 란 시입니다. 노오란 애기똥풀꽃의 꽃말,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참 아름답습니다.
-“볼품없이 초라한 버려진 땅, 자리 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내려다 보시면, 볼 수 있으면 행복이다
누가 보아 주든 말든, 알아 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때되면 꽃처럼 활짝 피어나, 주변을 환히 밝힌다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구원의 꽃자리 천국天國이다”-
그대로 우리 정주의 수도공동체 형제들을 닮은 꽃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꽃다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까요? 문득 어제 읽으며 메모한 글도 생각납니다.
“헤르만 헷세는 자신이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만은 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바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무상無常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충고한다. 예를 들면 열흘 동안 화병에 꽃힌 채 시들어가는 백일홍 관찰하기, 그 잎의 뒷면도 세세히 들여다 보기,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장미의 모습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응시하기, 그렇게 해서 삶의 무상함에 대해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하여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그대로 삶의 관상적 측면에 주목하라는 충고입니다. 사랑의 관상觀想, 관상의 아름다움입니다. 어떻게 하면 각자 주어진 정주의 자리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관상적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사람마다 자리는 다 다를 것이나 그 방법은 단 하나 똑같습니다. 바로 답은 사랑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세 번 거푸 주고 받은 물음과 답이 바로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알려줍니다. 삶의 자리는 다 달라도 모두에게 공통된 진리를 보여줍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세 번 당신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매번 똑같이 당신께 대한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종전처럼 자신을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질문하시는 주님께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아신다고 겸손히 대답합니다. 베드로의 정화된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입니다. 어제 읽은 유명했던 여배우 윤정희 데레사의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 요셉 마리의 인터뷰중 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많은 사람이 진정한 음악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 오면,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하죠. ‘음악은 마음의 순수한 상태’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예, 주님을 사랑합니다!” 답은 이 하나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비로소 마음의 순수요 꽃같은 삶입니다. 사랑과 순수는 함께 갑니다. 요즘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새하얀 찔레꽃(꽃말;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독)들이 ‘마음의 순결’을 상징하는 듯 참 반갑습니다.
이어지는 베드로를 향한 말씀이 구체적 당신 사랑의 처방을 알려 줍니다. 세 차례나 매번 대동소이합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내 양떼인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형제들만 아니라 함께 하는 모든 피조물 형제들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분명 생태적 회개의 사랑까지 염두에 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모범이 성 프란치스코요 이 성인을 많이도 닮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말씀이 예수님 사랑에 대한 결정적 행위의 응답을 촉구합니다.
“나를 따라라.”
‘나를 믿어라’. ‘나를 사랑하라’ 하지 않으시고 ‘나를 따라라’ 하십니다. 이웃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되는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이제 제1독서 사도행전도 거의 막바지입니다. 복음의 베드로와 사도행전의 바오로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베드로처럼 바오로에게도 순교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케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는 바오로의 삶에서 사도의 한결같은 주님 사랑을 확인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이 당신을,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며 당신을 잘 따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다음의 공동고백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