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성심 -하느님 중심의 삶-2021.6.12. 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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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2. 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61,9-11 루카2,41-51

 

 

 

성모 성심

-하느님 중심의 삶-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새벽 독서기도중 기분좋게 계속된 시편 136장 26절까지 매절 반복된 후렴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을 체험해가면서 주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어머니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 삶의 영원한 모델인 성모님의 성심 기념일입니다.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대한 신심은 17세기 성 요한 에우데스에 의해 시작되고 이어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파티마 성모 발현 25주년 때 세계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전 교회가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1969년 이래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의 성심을 기념하게 됩니다. 아침 성모 축일 찬미가도 깊고 아름다웠습니다.

 

-“하와가 죄지어 잃은 모든 것, 성모는 성자로 회복하시고

고통에 우는이 천국들도록, 당신은 하늘문 여시었도다.

 

성모는 어좌로 나아가는 문, 눈부신 하늘의 문이시로다

속량된 백성아 찬양들 하라, 동정녀 낳으신 영원한 생명”-

 

6월 예수성심성월중 어제의 예수 성심 대축일에 이어 오늘은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흡사 9월 순교자성월중 성 십자가 현양 축일(9.14)에 이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15)의 배치와 같습니다. 아드님 예수와 어머님 마리아가 얼마나 깊은 사랑 관계에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마침 며칠전 읽었던 일간신문 컬럼 일부도 생각납니다. ‘초록이 넘쳐나는 6월이면 한국전쟁의 상흔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에는 잊고 지내던 군가들이 생각난다. 군대 경험이 있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가장 감동적인 군가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 마음’이다. 고된 훈련 중간의 휴식 시간에 조교들이 ‘노래 일발 장전’을 외치며 이 노래를 시켰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에 이르면 모든 훈련병들이 통곡을 하였다. 그야말로 모든 사나이를 울리던 노래였다.’

 

예수님과 성모님과의 관계는 그대로 우리와 또 다른 성모님이신 우리 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나게 합니다. ‘한생을 주님 위해’ 라는 성모 성가(248장)도 생각납니다.

 

“한 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드님이 가신길 함께 걸으셨네

어머니 마음 항상 아들에게 있고 예수님 계신 곳에 늘 함께 하셨네.”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성모님의 삶을 보고 배우셨음이 분명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통한 거룩하고 순수한 마음, 성심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온마음을 다해 사랑하셨던 성모님이셨고 아드님 예수님도 타고난 하느님 사랑에 더해 성모님의 하느님 사랑을 보고 배우셨음이 분명합니다.

 

사랑의 열정과 순수는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의 우선적 자질이 열정과 순수입니다. 열정이 있을 때 순수요, 순수한 마음에서 샘솟은 사랑의 열정입니다. 참으로 죄가 없어서 순수가 아니라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임을 깨닫습니다. 죄책감에 아파하기보다는 더욱 주님을 사랑함이 지혜로운 해결책입니다.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찬미로 표현됩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사랑의 찬미가 예수성심을, 성모성심을 닮게 합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평생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우리를 부단히 정화하고 성화하여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게 하는 하느님 찬미요, 이 하느님 찬미의 삶이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줍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아름다운 고백은 성모님은 물론 우리 모두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찬미하는 영혼들에게 선사되는 하느님의 한량없는 은총을 상징합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인 사무엘 상권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 하느님 찬미는 그대로 마리아 성모님의 노래를 연상케 합니다.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노나이다.”

 

바로 찬미의 기쁨이, 찬미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정화하고 성화하여 날로 예수성심을, 성모성심을 닮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소년시절 예화를 대하면서도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얼마나 하느님 중심으로 일치를 이룬 성가정인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에 축제 관습에 따라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대로 일상화된 신앙의 성가정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복음의 첫 구절입니다. 이어 잃어 버렸던 아드님 예수를 성전에서 찾아낸 성모님과 예수님의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왜 저를 찾았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미 아버지의 집인 성전은 예수님 삶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음을 봅니다. 새삼 하느님 중심의 삶에 가시적 성전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성모님은 충격과 더불어 깊은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던 듯 합니다. 두분은 모자지간이지만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서 참 좋은 영적도반이기도 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참 아름다운 성가정의 분위기입니다. 하느님 중심 삶의 진위는 순종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성모님 역시 순종과 인내의 믿음으로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깊이 새겼음이 분명합니다. 위대한 영혼의 특징은 담아두는 능력에 있다 합니다. 순종으로 끝까지 담아 두고 되새기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닫습니다. 이런 마음은 조건반사적 감정적 ‘반응’이 아닌 인격적 응답을 합니다. 이렇게 담아두고 되새길 때, 부패인생이 아니 향기로운 발효인생이 됩니다. 

 

문득 어제의 깨달음이 생각납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은 ‘흐르는 물과 바위’ 같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내면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며 우리 또한 이렇게 된다면 참 이상적이라 생각됩니다. 아픈 상처의 부정적 추억들은 즉시 흐르는 물에 새기고, 고맙고 좋은 아름다운 긍정적 추억들은 마음의 바위에 새겨 두는 것입니다. 이래야 마음의 건강, 몸의 건강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현실은 대부분 이와 반대로 전개되는 듯 보입니다. 감사의 좋은 긍정적 추억들은 흐르는 물에 새겨 말끔히 잊어 버리고, 아픈 상처의 추억들은 마음의 바위에 새겨 끊임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모 성심의 마음으로 바꿔주시고, 부정적 추억들은 흐르는 물같은 마음에 새기고 좋고 아름다운 추억들은 바위같은 마음에 새기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름다운 본기도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하느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마음 속에 성령의 거처를 마련하셨으니,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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