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 살기 -바라보라, 기다리라, 최선을 다하라-2021.6.13.연중 제11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6.13.연중 제11주일                                                      에제17,22-24 2코린5,6-10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 살기

-바라보라, 기다리라, 최선을 다하라-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같다”로 시작되는 오늘 복음입니다. 매일미사책 청원기도 도입부분과 매듭 부분도 은혜롭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하느님 나라가 이땅에 뿌려져 자라고, 우리가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게 감사드리며,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청합시다”에 이어 

 

“모든 순간에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구원을 위해 애쓰는 자녀들의 바람을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청원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평생 화두이자 꿈이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역시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 희망 역시 하느님 나라입니다. 늘 되뇌어도 좋은 제 즐겨 바치는 ‘예닮기도’ 한 연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화답송 후렴 시편성구도 좋습니다.

 

“주님, 당신을 찬미하오니 좋기도 하옵니다.”

 

주님은,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거기 그 자리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멀리 밖에 있는, 언젠가 어디 있을, 또 죽어서 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내야 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눈만 열리면 선물처럼 주어진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어지는 화답송 시편도 고무적입니다.

 

“의인은 야자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향백나무처럼 자라나리라. 주님의 집에 심겨, 우리 하느님의 앞뜰에서 우거지리라.”

 

“의인은 늙어서도 열매 맺고, 물이 올라 싱싱하리라. 불의가 없는 나의 반석, 주님이 올곧으심을 널리 알리리라.”

 

이런 의인이 성인입니다. 의인이, 성인이 없다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의인이, 성인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의인을 통해, 성인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자 하는 청정욕淸淨慾의 열망은 언제나 좋습니다. 우리 누구나 성인이, 의인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고유의 인생,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한 인생입니다. 왜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옆에 놔두고 나를 잃고 무지의 지옥에서 헛것같은, 유령같은 인생을 살아갑니까? 하느님의 나라는 발견이자 선택이요 그 나라를 살아감은 우리의 평생과제입니다. 이제 누구나 성인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바라보라!”입니다.

관상의 눈을, 믿음의 눈을 지니고 주변을 사랑으로 응시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이런 눈을 지니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한결같은 수행공부가 전제됩니다. 예수님 공부, 예수님 살기의 수행입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성경독서와 기도 수행을 통해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 바오로 사도가 이의 모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관상의 눈이 활짝 열린 예수님은 저절로 자라나는 씨를 통해, 겨자씨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합니다.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구원과 창조의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챕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나라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성지聖地를 찾아 나갈 것 없습니다. 하느님 계신 지금 여기가 진짜 에버랜드 하느님의 나라요 성지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 역시 눈이 활짝 열려 하느님의 나라 비전을 내다보며 감격에 벅차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나라 꿈을 현실화하여 살아내는 에제키엘입니다.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에 깃들이리라.---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참으로 관상의 눈, 사랑의 눈, 믿음의 눈으로 소리없이 침묵의 고요중에 펼쳐지는, 전개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일하시기에 이렇게 존속되는 세상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았던 사도요 다음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떠나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까? 주님 하시는 일을 늘 묵묵히 관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 희망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절로 “살 줄 몰라 불행의 지옥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의 천국입니다”란 고백이 나옵니다.

 

둘째, “기다리라!”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가 승리합니다. 기다림의 인내, 기다림의 겸손, 기다림의 사랑, 기다림의 희망, 기다림의 지혜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 넘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는 자는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때가 될 때 까지 기다립니다. 분도 성인도 형제들의 약점을 교정하라 하지 않고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뎌내라 했습니다. 그러니 때가 되면 저절로 될 것을 건들여 망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연 그대로 놔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에 간섭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것입니다. 건들이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 둘은 평화로운 공동체 공존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하느님의 나라 비유도 이런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눈 활짝 열고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자씨의 비유도 대동소이합니다. 기다리라는 것은 무리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 나라의 기적이요 신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사랑의 기적, 사랑의 신비를 깨달아 알 때 놀라움에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입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의 신비체험을 통해 정화되고 성화되는 영혼들입니다. 실용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의 즉 쉽고 빠르고 편리한 인스탄트 문화에 중독되어가면서 이런 관상의 신비감각을 잃고 본능적 욕망의 동물로 전락되어감이 오늘날의 비극입니다. 

 

셋째, “최선을 다하라!”입니다.

‘바라보라’, ‘기다려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무관심, 무책임의 방치나 방관이 아닙니다. 곧이어 최선을 다하는 응답이 따라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습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일하라’ 했습니다. 잘 바라보며, 기다리며 주님 하시는 일에 잘 협력하는 것입니다. 주님 시중을 잘 들며 섬기면 됩니다. 하느님이 목자지 우리가 목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자 양떼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아 잘 협력하는 것입니다. 

 

농사 원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냥 놔두면 채소밭은 잡초밭이 되어 버립니다. 배열매들이 아깝다 적과하지 않으면 모두 돌배가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께 맡겨둔다 하여 거름주지 않고 농약이나 영양제 효소 주지 않으면 기세 좋게 자라든 배나무도 병충해에 막심한 피해를 입습니다. 80% 하느님 농부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20%는 사람 농부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돌보고 가꿔야 합니다. 우리 삶의 농사 원리도 똑같습니다.

 

진짜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다 합니다. 하느님 주신 선물의 땅을 옥토로 바꿔 유지하는 것이 농부에 달렸듯이, 주님의 참 좋은 우리 인생 선물을 옥토 인생으로 바꾸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수행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나라는 선물임과 동시에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가야 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잘 바라보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수행의 노력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다음 영성체송도 은혜롭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이미 소원은 성취되어 오늘 지금 여기 주님의 집, 하느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