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觀想과 신비神祕의 삶 -개안開眼과 경청敬聽-2021.6.19.토요일 성 로무알도 아빠스(951-1027)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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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19.토요일 성 로무알도 아빠스(951-1027) 기념일 

2코린12,1-10 마태6,24-34

 

 

 

관상觀想과 신비神祕의 삶

-개안開眼과 경청敬聽-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화답송 시편이 너무 좋습니다. 어제도 참 각별했던 느낌의 하루였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어제의 강론 주제를 참 많이 생각했던 날이었습니다. 새삼 얼마나 중요한 본질적인 영적 삶의 요소인지 깨닫습니다. 하늘을 잊고 사는 대부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루 몇 번이나 하늘을 바라 보시는 지요? 밤 하늘의 별을 바라 본 적은 있으신지요? 아마 제가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에 33년 동안 정주하면서 날마다 하루에도 수없이 가장 많이 바라본 것이 불암산과 배경의 하늘일 것이고 앞으로 살아있는 그날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눈들어 하늘 보라고, 하늘 보며 하느님 생각하라고, 하느님 사랑하라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늘 두려운 줄 알고 살라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라고, 늘 하늘 보며 살라고, 늘 눈 들면 어디서나 늘 하늘입니다. 문득 참으로 실천하고 싶은 ‘5늘’이 생각납니다.

 

  1. 늘 기도하십시오.
  2. 늘 회개하십시오.
  3. 늘 깨어있으십시오.
  4. 늘 기뻐하십시오.
  5. 늘 감사하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5늘’을 사는 이들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드러내는 ‘5늘’이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강론중 다시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사실 강론 완성후 새벽 수도원 경내를 묵주기도 20단 바치며 산책중 떠오른 생각입니다. 강론을 다 썼어도 후에 떠오른 생각들은 성령의 은총이라 믿고 삽입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제가 밤마다 밤 일찍 일어나 강론을 쓰는 시간 역시 하늘에 보물을, 신망애信望愛 보물을 쌓는 시간입니다. 이 강론을 읽으며 묵상하는 일을 하는 분들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시간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의 배즙을 팔아 주는 일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사실 배즙 판매 담당자에게 배즙을 팔아 준 분들의 명단을 받아 다음 날은 꼭 감사하는 마음으로 합동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하느님 향한 신망애의 표현인 이웃을 배려하여 ‘돌보고, 주고, 돕고, 나누고, 버팀목이 되어 주고’ 하는 모든 선행과 자선의 수행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보물을 쌓을 기회는 늘 차고 넘칩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을 자리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자리, 하늘길이요 하늘문입니다.”

 

꼭 다시 나누고 싶어 인용했습니다. 어제 갑작스럽게 외출했다가 점심에 혼자 식사하니 참 자유롭고 넉넉하고 편안하여 좋았습니다. 늘 함께 식사하다 보니 이렇게 혼자 식사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아, 이래서 홀로와 함께가 균형잡힌 생활을 강조하는 구나!’ 새롭게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 분도 수도자들은 ‘성 로무알도 아빠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10-11세기에 그 파란만장한 삶의 역사중에도 무려 77세를 살았으니 새삼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임을 깨닫습니다. 성인은 공주생활과 은수생활을 결합시킨 분입니다. 수도원 공동체 안에 은수 수도자들을 품고 살면서 ‘고독과 친교’, ‘봉쇄와 개방’, ‘홀로 외로이와 여럿이 함께’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던 수도자였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분도 수도공동체 형제들을 밖에서 보면 ‘함께’의 공주수도자들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들어와 보면 ‘홀로’의 은수수도자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홀로의 고독이 없으면 삶은 천박淺薄해지고 함께의 연대가 없으면 고립단절로 괴물怪物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홀로와 함께의 균형과 조화중에 깊어지는 성숙된 삶에 형제애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은 주님 안에서 제자리를 지켜내는, 거리를 견뎌내는 고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지켜냄과 견뎌냄의 고독중에 순화되는 사랑, 깊어지는 사랑, 하나되는 사랑입니다.

 

어제는 또 휴대폰의 무게와 덫을 새롭게 체험한 날이기도 합니다. 삶의 닻이자 돛이자 덫처럼 필수품이 된 휴대폰입니다. 이제 제 강론은 제 삶의 닻이자 돛이자 복된 덫이 된 느낌이 듭니다. 공동체 역시 닻이자 돛이요 복된 덫입니다.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인해 친필 글씨들이 사라진지도 오래입니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인데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울을 잃은 느낌입니다. 사색의 자리에는 검색이 대체되고, 내비게이션은 물론 모두가 손쉽고 편리하고 신속하게 찾을 수 있어 기억할 일도 없으니 기억력도 사고력도 약해지니 과연 인간에게 좋은 진보인지,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지는 않은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휴대폰이 고해성사했습니다!”

 

용량이 넘쳐 카톡을 말끔히 비워 정리해 준 도반 사제의 말을 잊지 못합니다. 그동안 용량이 거의 다했다는 경고를 듣다가 방문한 도반 사제에게 부탁하여 비워내니 참 홀가분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후 시간 내내 잠들기까지 카톡도 끊고 전화도 끊고 참 고즈넉하고 홀가분한 분위기에서 지냈습니다. 언뜻 아예 휴대폰없이 살면 얼마나 단순하고 여유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간혹 휴대폰 없이, 친필 글씨를 고수하는 이들도 있지만 고립단절의 불통으로 그렇게 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휴대폰뿐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용량 넘치게 바쁘게 살아갑니다. 참으로 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넓이만 있고 깊이가 없는, 활동만 있고 관상이 없는 천박한 삶같습니다. 편리하고 신속하면 삶도 더 여유있고 넉넉해야 할 텐데 날로 복잡하고 무거워지고 바빠지는 삶입니다. 참으로 삶의 관상적, 신비적 차원을 회복해야 할 때같습니다. 이래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절박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랑의 관상, 사랑의 신비입니다. 결코 비상한 관상이 신비가 아닙니다. 참으로 인간답게 하는 관상과 신비의 차원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바로 관상가의, 신비가의 삶이고 그 결정적 모범이 예수님이자 바오로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이었기에 주님의 은총으로 무지의 눈은 활짝 열려 실재를 직시할 수 있었고 활짝 열린 마음의 귀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 올인했던 관상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양자택일이 아닌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재물을 비롯한 모두는 후순위로 두란 말씀입니다.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도 분명한 우선 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신비가의 면목은 이어지는 ‘걱정하지 마라’는 복음에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살아 있는 것은 오늘 지금 여기이니 마음의 눈, 사랑의 눈, 믿음의 눈 활짝 열고 실재를 직시하며 참으로 하느님을 신뢰하여 모든 걱정을 그분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못살면, 하느님을 못 만나면, 어디서도 행복을 못살고 하느님을 못만납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구원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신비가 예수님의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족하다.”

 

본질적인 하느님 찾는 일에 충실하면 부수적인 것들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무지에 눈 멀어 과거에 아파하고 미래에 두려워하며 현재를 낭비하며 사는 어리석은 이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전념하는 삶이 신비가의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코린토 2서에서 신비가로서의 바오로의 모습이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평생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 전념했기에 이런 은총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활짝 열린 눈으로 보고 활짝 열린 귀로 들은 주님께서 알려주신 환시와 계시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참으로 이런 신비체험은 자기를 아는 겸손으로 드러나며 이는 동시에 내적 힘의 원천임을 깨닫게 됩니다. 후반부의 고백이 감동적이며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깨우침을 줍니다. 그대로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싶은 구절입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 내면의 진실이 다 드러납니다. 천하무적, 백절불굴의 주님의 전사로서의 비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시간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은총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수행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영성체송 시편이 참 좋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눈만 열리면, 오늘 지금 여기 하늘에 보물을 쌓아가며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는 집이 바로 주님의 집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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