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5.금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30,1-5 에페4,29-5,2 마태18,19ㄴ-22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길
-기도, 회개, 용서-
"네 근심 걱정을 주님꼐 맡겨 드려라, 당신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리게 버려둘리 없으리라."(시편55,23)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51,12)
새벽성무일도시 마음에 와닿은 주옥같은 시편성구입니다. 오늘은 6.25사변 발발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세계에서 참 힘든 일이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의 남북통일일 것입니다. 정말 남북통일이 된다면 세기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세계적으로, 세기적으로 남북통일이라는 위대한 과제를 부여받고 있는 우리 한민족입니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오랫동안 널리 불려졌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오늘은 오랜만에 산책중 한 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불러 봐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이 살길은 남북통일뿐이 없습니다. 남북통일 없이는 기형적 발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분단상황에서 남북이 이룬, 특히 남한이 이룬 현실은 참으로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단해요 대한민국, 훌륭해요 대한민국, 감사해요 대한민국, 칭찬해요 대한민국, 지하철 역에서 본 글귀도 참 고무적이었습니다. 역경중에도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참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저력으로 언젠가는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이루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통일에 우선적이 것이 평화공존입니다. 통일이 우선이 아니라 남북의 평화공존이 우선입니다. 평화가 지상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좋은 전쟁 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습니다. 마침 문대통령 ‘타임’인터뷰 내용중 일부 기사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시간이 나에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지금은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취약한 평화“라고 말했다. 코로나 19백신 지원등 다방면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손짓하고 있지만, 1년도 남지 않은 임기가 끝나면 과거와 같은 전쟁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타임>은 ”문대통령 스스로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아마 아무도 이를 할 수 없다는 암울한 사실을 알려준게 문대통령이 남기는 유산일 것“이라고 짚었다.’-
대통령의 우선적 책무가 평화의 유지입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평화의 유지와 증진보다 더 중요한 책무는 없습니다. 참으로 문대통령 남은 임기중 한반도의 획기적 평화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남북의 전쟁은 서로 자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기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북도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치 앞도 못보는 우리들이지만 하느님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 평화공존을 위해 지혜와 노력을 다 기울여야겠지만 참으로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물론 우리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평화공존을 위해 해야 우리 믿는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도가 답입니다.
개인은 물론 모두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호흡하듯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쟁 또한 무지의 두려움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을 밝히는 하느님의 빛, 기도의 빛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문득 엊그제 조선일보 1면 톱기사와 어제 경향신문 큰 제목도 사진에 담았습니다.
“지구 재앙 막을 시간, 겨우 30년 남았다!”
”리프킨 ‘지구에겐 면도날만큼의 시간만 남았다!”
남북통일보다도, 남북의 화해와 일치보다도 발앞에 떨어진 불이 지구상 인류 존속의 위기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서도 기도와 더불어 혁명적 결단의 실천이 당장 실시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겸허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것도 기도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개인기도는 물론 공동기도 역시 더불어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가정공동체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부부만이라도 가정 공동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참 소원 성취에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둘째, 회개가 답입니다.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회개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숨쉬듯이 기도하듯 숨쉬듯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회개는 함께 갑니다. 기도는 곧장 회개로 이어지고 회개는 이어 겸손으로 꽃피어 납니다. 회개의 진정성은 겸손으로 입증됩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해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 신비의 삶도 실현됩니다. 역시 인간의 고질병인 무지와 허무에 대한 근원적 처방의 치유도 회개뿐입니다.
궁즉통(窮則通), 절박한 쪽이 이깁니다. 참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한두번이 아니라 평생 죽을 때 까지 기도의 전사, 회개의 전사, 주님의 전사답게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 또한 날마다 목숨을 걸고 쓰는 강론입니다.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바오로의 권고가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참 좋은 회개의 열매를 위해 꼭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참 통쾌한 회개의 구체적 방법입니다. 말로의 상처와 간접적 살인도 치명적입니다. 무지의 병에서 기인한 온갖 부정적 감정의 치유에 회개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신명기의 모세 역시 회개를 촉구합니다. 저주가 아닌 축복을 택하는 지름길이 회개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은 운명이 됩니다. 바로 이 습관-성격-운명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 바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갈림없는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으로 살게 해 주는 회개의 은총입니다.
셋째, 용서가 답입니다.
개인은 물론 공동체적 용서도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선 살기 위해 용서가 필수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칩니다. 용서가 되지 않으면 용서의 지향을 분명히 하면 주님께서 은총으로 도와 주시어 용서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는, 무한한 용서를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은 바오로 사도 역시 용서를 강조합니다. 회개해서 용서지만 반대로 용서의 사랑이 회개를 촉발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야 한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용서의 영원한 롤모델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끊임없는 용서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도 가까이 구체적 현실, 내 삶의 자리에서 실현됩니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끊한(끊임없는, 한결같은)3’의 수행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기도의 여정, 회개의 여정, 용서의 여정에 항구함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처방입니다. 어제 마침 동방 가톨릭 교회의 마이클 요한네스 킴 부제님으로부터 성 프란치스코 이콘과 메시지를 선물받았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늘 반가이 환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 작은 선물이 신부님의 수도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 회개의 사람, 용서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서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