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8.월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130-202) 기념일
창세18,16-33 마태8,18-22
예수님 제자직弟子職의 조건
-꿈, 사랑, 추종, 기도-
오늘 우리는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이름 뜻처럼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헌신한 목자요 교부로서 일생을 바친 참으로 예수님을 충실히 따랐던 성인입니다. 성인은 1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지미르) 출신으로 스승인 성 폴리카르포의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 받았으며 프랑스 리옹의 2대 주교로 프랑스 지방에 널리 퍼진 영지주의 이단과도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면서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한 2세기 대표적인 호부교부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성인은 리옹 교구가 번성하고 이단의 기세도 꺾일 무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때 202년경 장렬히 순교의 대열에 참여합니다. 성인의 대표적 저작 ‘이단논박’이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라 하셨지 나를 믿어라, 나를 사랑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 어제 교황님의 통찰에서 좋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요엘서 3장 1절,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라는 구절을 근거로 하신 말씀입니다.
“세계의 미래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계약에 의존합니다. 젊은이가 없다면 노인들의 꿈이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겠는지요? 노인들은 계속 꿈꾸어야하며 그 꿈은 정의의 꿈, 평화의 꿈, 연대의 꿈, 결국은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바로 이런 꿈은 새로운 비전을 지닌 젊은이들을 통해 실현 가능합니다. 꿈들은 기억과 더불어 직조織造됩니다(Dreams are intertwined with memory). 노인들은 살아있는 기억들을 지키고 젊은이들과 나누는 것이 노인들의 참된 사명입니다. 기억없이는 결코 삶은 건축될 수 없고, 기반없이는 우리는 결코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삶의 기초는 기억입니다. 꿈과 기억, 그리고 기도가 중요합니다. 노인들의 기도는 세상을 지켜주고, 어지러운 세상의 어떤 활동보다도 더많은 효과적인 도움이 됩니다.”
꿈과 기억, 기도 세 요소가 노인들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얼마나 결정적 요소들인지 깨닫습니다. 기도의 삶안에서 꿈과 기억으로 직조織造되는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꿈의 날실이 없으면 기억의 씨실도 사라집니다. 꿈과 기억은 함께 갑니다. 꿈을 잃으면 기억도 잃어버려 치매에 걸리기 십중팔구입니다.
생생한 꿈에 생생한 기억입니다. 평생 날마다 끊임없는 시편 공동 전례 기도를 통해 ‘찬미의 꿈’과 ‘감사의 기억’이 직조織造되어 아름답고 건강한 삶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는 그날까지 ‘꿈꾸는 인생’에 ‘감사와 사랑의 기억’ 가득한 인생이어야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교황님의 강론에 제 묵상을 곁들였습니다.
바로 이에 대한 참 좋은 상징적 모범이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입니다. 99세의 고령에 이렇게 정정할 수 있음은 그의 꿈과 기억, 그리고 기도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꿈과 사랑의 기억이 함축된 간절한 기도가 바로 오늘 창세기입니다. 늘 하느님 꿈을 실현하며 살았기에 이런 고령에도 소돔을 위한 하느님과 소통의 간절한 기도요, 그가 얼마나 하느님과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에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한 기도의 노력이 참으로 집요하고 눈물겹습니다. 의인 쉰명에서 시작해서 깎고 깎은 끝에 의인 열명으로 합의를 봅니다만 우리는 그 결과를 압니다. 소돔은 말 그대로 파멸되니 의인 단 열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참으로 분발케 하는 오늘 창세기의 내용입니다. 참으로 의인 한 분,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따라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 의인으로 살 수 있겠는지요?
첫째, 꿈입니다.
성서의 모든 인물들이 꿈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하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정의의 꿈, 평화의 꿈, 찬미의 꿈 등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평생 꿈도 하늘 나라였고 그 꿈과 비전의 실현에 전력투구했던 삶입니다. 꿈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집니다. 찬미의 꿈에 감사의 기억으로 직조되는 우리 인생입니다. 늘 생생한 하늘 나라의 꿈을, 비전을, 희망을 지녀야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하늘 나라 꿈에 대한 사랑, 이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통해 부단히 축적되는 사랑과 감사의 기억들이요 세상 것들로 부터의 이탈의 자유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전형적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이런 완전 무소유의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참으로 세상 무엇에도 매임이 없는 대자유인 예수님이십니다. 말 그대로 정처定處없는, 하느님만이, 하늘 나라만이 예수님의 유일한 정주처였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을 떠나 사막에 가지 않아도 세상 한복판에서도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 것들로부터 이탈할수록 내적 사막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봅니다.
셋째, 추종追從입니다.
주님 사랑은 주님을 따르는 추종으로 표현됩니다. 주님 역시 당신을 따를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문자 그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엄중하고 중대한지 깨닫게 하려는 충격요법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기도입니다.
꿈과 사랑, 추종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끊임없이 바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궁극의 답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깨어 살게 하고, 생생한 꿈을, 생생한 사랑을, 생생한 기억을 지니게 하며, 자유로운 이탈의 삶과 더불어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게 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더불어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인생 여정을 상징하는 산티아고 순례시 1.목표, 2.이정표, 3.도반의 세 요소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결정적 요소가 4.기도임을 깊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따르는 인생 순례 여정중 날마다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미사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전례 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찬미의 ‘꿈’과 사랑과 감사의 ‘기억’으로 직조된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